나치 부역자를 우크라 전쟁영웅으로 소개한 캐나다…"매우 당황스런 일"

여야 가릴 것 없이 한목소리 비판 가운데 트뤼도 "러시아 선전 거부하고 우크라이나 계속 지지해야"

캐나다 하원의회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의회 방문에 맞춰 나치 부역자인 우크라이나인을 영웅으로 소개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이에 대해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라면서도 러시아의 선전에 넘어가면 안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25일(이하 현지시각) 캐나다 공영방송 CBC에 따르면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를 위해 싸웠던 우크라이나인을 의회에 초청한 것을 두고 "캐나다 의회와 더 나아가 모든 캐나다인들에게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라며 "이런 일이 발생한 것에 매우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러시아가 이번 일을 거짓 선전에 활용할 것이라며 "우리 모두 러시아의 잘못된 정보를 거부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확고하고 확실한 지지를 계속하는 것이 정말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앞서 22일 캐나다 하원은 젤렌스키 방문 당시 '야로슬라프 훈카'라는 이름의 98세 퇴역 군인을 초대했다. 이번 일을 주도한 앤서니 로타 하원의장은 훈카를 두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에 대항해 우크라이나 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이며 전쟁 영웅"이라고 한껏 추켜세웠고 트뤼도 총리를 비롯해 젤렌스키 대통령 등 주요 인사들이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 22일(현지시각) 캐나다 하원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 방문 당시 '야로슬라프 훈카'라는 이름의 98세 퇴역 군인을 초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영웅으로 소개한 이 인물은 이후 나치 부역자로 확인됐다. 사진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쥐스탱 트뤼도(오른쪽) 캐나다 총리가 훈카에 박수를 보내는 모습. ⓒAP=연합뉴스

그런데 훈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군인으로 복무했다는 사실이 이후 확인됐다. 방송은 훈카가 나치가 지휘하는 우크라이나 민족으로 구성된 제14사단인 '갈리시아 사단'의 대원으로 활동했으며, 구체적으로는 무장친위대 사단에서 복무했다고 보도했다.

이 사단에 속한 대원들은 폴란드인, 유대인, 벨라루스인 등의 민간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범죄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지 않았다. 또 1945년 서부 연합군에 항복하기 전까지 제1우크라이나사단으로 개칭되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인물에 대해 캐나다 의회가 박수를 치면서 영웅 대접을 한 것을 두고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의 원내대표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방송에 따르면 카리나 굴드 자유당 원내대표는 이번 일로 깊은 상처를 받았다면서 "가족 대부분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비르케나우)에 들어갔고 할아버지와 그의 형만 나올 수 있었다"며 "이 불행한 상황이 캐나다 의회와 캐나다에게 매우 당혹스러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야당인 보수당 대표 피에르 포일리에브르는 총리실에서 하원의장이 작성한 내빈 명단을 검토했어야 한다며 쥐스탱 트뤼도 총리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뤼도 총리가 야당의 질문을 받지 않고있다면서 "캐나다인들은 자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난 일들에 대해 결코 책임을 지지 않는 총리에게 넌더리가 났다"며 "지속적인 국제적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국면이라며 현 상황을 진단했다.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하원의장을 지냈던 보수당의 앤드루 시어 의원 역시 자유당 정부가 젤렌스키의 연설에 참석한 사람을 더 잘 조사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야당인 퀘벡블록과 신민주당은 로타 의장의 사과로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다만 굴드 원내대표는 이 상황이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도 매우 당혹스러웠다"면서 이번 일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정당성 및 명분 문제로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애썼다.

또 그는 로타 의장에게 "이것(훈카 초청)은 당신의 제안이었다"며 "캐나다 정부는 이 사람이 오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해 트뤼도 정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차단했다.

로타 의장은 24일 성명을 통해 훈카에 대해 "이후 더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고, 내 결정을 후회했다"며 "이 계획은 전적으로 내가 한 것이다. 캐나다와 전 세계의 유대인 사회에 깊은 사과를 전하고 싶다. 내 행동에 대한 모든 책임을 인정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나치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러시아 측은 이번 사건에 대해 맹비난하고 나서면서 전쟁 명분을 강화하는 구실로 활용하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24일 하원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을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캐나다를 포함한 많은 서구 국가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누가 싸웠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젊은 세대를 키웠다. 그들은 파시즘의 위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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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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