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법 2조, 3조 개정은 하청노동자 노동3권 실질적 보장의 시작일 뿐

[기고] 노동자 건강권 보장을 위한 노조법 2,3조 개정 ④

'노란봉투법'으로 알려진 노조법 2조, 3조 개정안은 현재 협소하게 정의되어 있는 노동자와 사용자의 정의를 현실에 맞게끔 넓히고, 진짜 사장인 원청의 교섭 의무를 지웁니다.(2조) 더불어 쟁의행위 범위를 확대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손해배상청구를 금지(3조)하는 것을 핵심으로 합니다. 하지만 지난 8월 21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노조법 2조, 3조 개정안을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노동조합은 고용과 임금을 넘어 산재 은폐를 막고, 안전보건 조치를 요구하며, 예방과 보상 측면에서 노동환경 개선과 건강권 보장을 위한 역할을 합니다. 다양한 노동안전보건 활동 사례를 통해 노조법 2조, 3조 개정의 의미와 필요성을 짚어봅니다. 편집자 주

한국 조선업 직접생산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5만여 명의 하청노동자들에게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기본 권리, 노동3권은 법전에만 있고 현실에는 없는 권리였다. 체불된 임금을 달라고 하거나, 일하다 다쳐서 산재신청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후 취업을 거부당하는 '블랙리스트'가 공공연한 조선소에서, 하청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은 블랙리스트 가장 앞줄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조선소 하청노동자에게 '단결권'은 노동자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가 아니라, 해고 등 온갖 불이익을 기꺼이 감내할 의지가 있는 소수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권리였다.

2016년 이후 조선업에 불황이 불어닥치자 하청노동자는 대량해고 되었다. 13만 명이 넘던 하청노동자 중 7만 명 이상이 조선소에서 쫓겨났다. 해고되지 않고 살아남은 하청노동자의 실질임금은 30% 이상 삭감되고 하락했다. 결국, 생존의 벼랑에 선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에 나섰다. 2019년 대우조선해양 파워노동자 파업을 시작으로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대중투쟁이 터져 나왔다.

2021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는 원청과 하청업체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마치 조선시대 민란처럼 견디다 못해 폭발했다 이내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노동자처럼 단체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노사관계를 정착시켜 매년 조금씩 임금과 복지와 고용을 향상시키려 한 것이다. 그러나 헌법이 보장하는 '단체교섭권'이 하청노동자에게는 허울뿐이란 사실을 깨달아야만 했다.

하청노동자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원청은 하청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을 거부했다. 원청 정규직노동자와 같은 작업복을 입고, 원청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해서, 같은 식당에서 똑같은 밥 먹으며, 원청 조선소에서 일하며 원청의 배를 만들지만, 원청과 하청노동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 단체교섭 거부의 이유였다. 한편, 단체교섭에 나온 하청업체 대표들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수십 개 하청업체와 수백 번 단체교섭을 했지만, 노동조합의 요구안 중 단 한 개 조항도 합의할 수 없었다.

2022년 여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은 마침내 '파업권'을 얻었고 일손을 멈췄다. 그러나 헌법이 보장하는 파업권이 그렇게 쉽게 불법이 될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하청노동자의 파업으로 중단된 작업에 원청은 하청업체가 물량을 반납했다며 정규직노동자를 투입했다. 자신의 파업권을 지키기 위해 정규직노동자 투입을 막아서면 그건 불법이 됐다. 하청노동자 파업을 파괴하기 위해 원청은 아예 더 노골적인 폭력을 동원했다. 정규직 관리자 200~300명을 동원해 버스에 태우고 다니며 하청노동자 파업농성장을 때려 부수고, 기물을 파괴하고, 하청노동자에게 얼음물병을 던지고 소화기를 분사했다. 하청노동자를 바퀴벌레라고 부르며 박멸하자고 소리높여 외쳤다.

ⓒ이김춘택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독(도크) 화물창 바닥에 스스로 용접한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원청의 폭력으로부터 조합원을 지키기 위해, 파업을 유지하기 위해 하청노동자는 자신의 몸을 스스로 창살에 가두었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절규했다. 그러자 하청노동자 파업은 더욱 확실한 불법으로 낙인찍혔고, 대통령이 나섰다. 노동부장관과 행안부장관과 법무부장관이 나섰고, 경찰특공대가 나섰다. 그리고 법원이 나섰다. 8천억 원 손해니 1조 원 손해니 떠들었던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이 밝혀졌으나, 대우조선해양은 그리고 대우조선해양을 헐값이 사들은 한화오션은 하청노동조합 지도부에 대한 470억 원 손해배상소송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9월 25일 첫 재판을 앞두고 있어 아직 47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의 사법적 멍에와 족쇄가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아직 실감하지 못할 뿐이다.

이렇듯 2022년 여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투쟁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이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에게는 나만 껍데기뿐이라는 현실을 절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투쟁은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조합법 2조, 3조 개정의 불씨를 다시 살려냈다.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못하는 노동조합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비정규직노동자는 노동조합에 가입하기도 어렵고, 하청업체와의 단체교섭은 내용 없는 형식뿐이고, 파업투쟁은 곧 불법으로 내몰리고, 돌아오는 것은 수백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이라는 현실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노동조합법 2조, 3조 개정안이 천신만고 끝에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어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8월 국회에서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처리하지 않기로 합의해 여전히 기약 없는 기다림이 계속되고 있다. 사실 본회의에 상정된 노동조합법 개정안은 '노동3권의 실질적 보장'이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의 매우 미흡한 내용이다. 본회의에 상정된 노동조합법이 통과되더라도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의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여전히 보장되지 않으며 오로지 노동조합 탄압이 목적인 수백억 손해배상소송도 막을 수 없다. 다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작은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마저 좌고우면하며 시간만 끌고 있으니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의 노동으로부터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원청이 실질적인 사용자라는 사실은 이제 더이상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진실이다. 노동위원회와 법원에서 거듭 원청을 실질적인 사용자로 인정하는 판정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시대적 진실의 반영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국회가 나서서 제 할 일을 해야 한다. 언제까지 이 같은 시대적 진실을 외면하고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의 노동3권을 내팽개쳐둘 것인가.

작년 여름 대우조선해양 1도크 파업현장을 찾아온 많은 국회의원들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작년 겨울 30일 동안 진행된 국회 앞 단식농성장을 찾아온 국회의원들이 했던 말도 기억하고 있다. 이제는 그 말과 약속을 지켜야 할 때다. 더는 시간 끌지 말고 국회는, 민주당은 노동조합법 2조, 3조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켜야 한다.

ⓒ이김춘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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