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실린, 항암제, 보톡스, 비아그라의 '전쟁 기여도'는?

[프레시안 books] 키스 베로니즈 <약국 안의 세계사>

미국 작가이자 화학자인 키스 베로니즈의 근간 <약국 안의 세계사>(동녘 펴냄)는 질병에 맞서온 인류의 기나긴 투쟁사와 세계사의 흐름이 겹쳐지는 교차점들을 조명한 책이다.

베로니즈는 인류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과, 아직도 매년 수십 만 명을 희생시키고 있는 질병인 말라리아의 치료제 퀴닌, 최초의 항암제 '질소 머스터드' 등이 개발(때로는 '발견')되고 사용된 역사적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예컨대 페니실린 개발이 연구에 지친 알렉산더 플레밍의 휴가와 그가 휴가 기간 실험실에 방치해 둔 배양 배지에 피어난 푸른곰팡이 덕분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인류가 페니실린의 혜택을 보게 한 것은 플레밍뿐 아니라, 최초 발견자도 실패한 이 약품의 상용화를 끈질긴 연구로 이뤄낸 하워드 플로리와 에른스트 체인의 공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그보다 덜 알려져 있다.

특히 플로리는 "2차대전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이라도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약물을 혼자 독점하는 건 비윤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페니실린은 "누구도 특허를 얻지 못했다." 감동적인 이야기다. 1945년 노벨상위원회는 페니실린 발견의 공로를 플레망, 플로리, 체인에게 돌리며 이들 3인에게 공동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여했다.

플로리가 페니실린 양산 기술의 특허 신청을 하지 않았던 한 배경이 되기도 했던 2차 세계대전은, 개발 초기 전지구적 생산량이 겨우 환자 2명에게 사용할 정량인 '2숟가락 분량'에 불과했던 페니실린이 급속하게 대량 생산되는 계기가 됐다. 부상자가 넘쳐나는 전쟁터에서 항생제인 페니실린의 가치가 어떠했을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미국 전시물자관리위원회는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수행하기 전 230만 명 분의 페니실린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 1945년 1월 미국은 400만 명분의 페니실린을 얻을 수 있었다." (책 34~35쪽)

항공기와 로켓, 자동차 등 많은 과학문명이 전쟁을 요람으로 탄생되고 성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약품들 또한 그랬다. 비단 페니실린만의 얘기는 아니다.

페니실린이 2차대전에서 활약했다면, 말라리아 치료제 퀴닌은 미국 남북전쟁에서 "전투를 이기고 지는 문제와 직결돼 있었다." 2차대전에서도 미국의 태평양 전선, 즉 대일본전에서 퀴닌은 덥고 습한 환경에서 전쟁을 치러야 했던 미군의 필수품이었다. 그래서 "당시 미국에게는 키나 나무 (확보) 미션이 맨해튼 프로젝트만큼이나 중요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책 57쪽)

키나 나무는 껍질에 퀴닌을 다량 함유한 남미 원산의 식물이다. 말라리아에 감염되기 위해서는 적혈구 교환이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모기에 의해서만 전염되며, 물이나 공기는 말라리아 전염의 매개체가 될 수 없다. 이런 제한적인 감염 방식에도 불구하고 말라리아는 20세기 동안 무려 1.5억에서 3억 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21세기에는? 2018년 한 해 동안 말라리아 감염자는 2억2800명, 사망자는 40만5000명이다. 유엔의 '글로벌 펀드'가 왜 '에이즈·결핵·말라리아'라는 3개의 질병을 겨냥한 것인지 새삼 알게 해준다.

말라리아에 대한 인류의 투쟁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국과 인도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감염 경로가 밝혀진 것은 1989년 영국의 로널드 로스에 의해서였고, 로스는 이 공로로 3년 후인 1902년도 노벨상을 받았다.

말라리아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는, 말라리아로 고통받은 유라시아 대륙의 선조들에게는 통탄스럽게도, '신대륙'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의 산골짜기에 있었다. 페루의 산 속에 있던 키나 나무의 껍질은 이후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가 말라리아 치료제가 된다.

퀴닌은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로 영토를 넓힐 때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말라리아는 노예제가 탄생할 수 있는 경제적기반을 만들었다"(찰스 만, 1493)라면, 말라리아 치료제는 제국주의의 의학적 기반을 형성했다. 실제로 지금도 '선진국' 국민들이 아프리카·남미 등 '제3세계'로 여행을 간다면, 그의 주치의는 그에게 예방의학 차원애서 말라리아 예방약을 처방할 것이다.

의외로 퀴닌은 말라리아로 인한 고통이나 감염 위협에 시달리지 않고 있는, 건강한 술꾼들에게도 친숙한 맛일 것이다. 칵테일 재료로 널리 쓰이는 '토닉워터'에는 쓴맛이 나게 하는 조미료로 저분자 퀴닌이 소량(미국 FDA 승인을 받은 양은 1리터당 83밀리그램) 들어있다고 한다. 다만 한국에서는 퀴닌이 함유되면 의약외품으로 분류되기에 퀴닌 대신 '퀴닌향'이 들어 있다.

페니실린이나 퀴닌과는 달리, 당초에는 약이 아닌 독으로 알려지거나 만들어진 물질이 의약품이 된 역설적 사례도 있다.

1차 세계대전에서부터 화학무기로 사용된 겨자 가스, 군대에서 '수포 작용제'라고 불리는 이 '머스터드 가스'는 이후 인류 최초의 암 치료 화학요법에 사용된 '질소 머스터드'로 거듭났다.

머스터드 가스는 1차 대전 내내 위협적인 무기였는데,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은 독일이 화학무기를 사용할 경우 그에 대한 보복공격 수단으로 머스터드 가스 폭탄 2000발을 제조해 이탈리아의 바리항(港)에 선적해 뒀다. 그러나 독일군의 공격으로 바리항이 불타면서 거꾸로 연합군이 이 머스터드 가스 폭탄의 희생자가 됐는데, 당시 사망자들을 부검해 보니 이들은 백혈구의 성장·증식이 멈춰 있었다고 한다.

바리항 피격 1년 전인 1942년 미국 예일대에서 머스터드 가스의 항암 효과가 발견되긴 했지만, 바리항 피격은 이 물질의 의료적 유용성을 대중에 알린 더 극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다.

머스터드 가스의 사례에서 보듯, 약과 독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쓰느냐에 달려 있다. 1차 대전 당시 화학무기로 쓰인 염소가스는 독일 화학자 프리츠 하버가 개발했는데, 하버는 1918년 암모니아로 비료를 만드는 하버-보슈법을 개발해 식량 생산 문제를 해결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인물이기도 했다.

인체에 가장 치명적인 독극물, 0.05마이크로그램(백만 분의 5그램)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을 만드는 보툴리누스균과 이 균이 생산하는 보툴리눔 독소도 생물학·화학 무기로 개발될 가능성이 늘 우려됐다. 실제로 일본 옴진리교는 1990년과 1994년 두 차례에 걸쳐 보툴리눔 독소 수용액을 살포하는 테러를 저지르려다 미수에 그쳤다. (그 대신 1995년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살포했지만.) 보툴리눔 독소의 무기화 가능성을 우려한 미군은 2차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준비하며 100만 회분의 보툴리눔 독소 해독 키트를 준비하기도 했다.

보툴리눔은 그러나 다소 엉뚱하게도, 전쟁무기가 아니라 주름과 노화에 대항하는 '미용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 보톨리눔 독소를 이용한 약품이 바로 '보톡스'다. 보톡스는 현재 미용 시술의 대표격이지만, 원래 보톨리눔 독소의 의학적 이용은 사시 교정을 위해 안면 근육을 조정하거나 편두통 해소 시술을 위해 이뤄졌다.

책의 일부 에피소드는 책의 제목이 무색하게도 '세계사'라기보다는 '미시사' 혹은 '개인사' 레벨의 이야기만 다루기도 한다.

비아그라와 관련된 부분을 보면, 의외로 발기부전 치료가 고대 그리스·로마의 괴이한 식문화―예컨대 새끼를 많이 낳는 동물인 토끼를 잡아먹거나, 독수리·매의 정액을 마시는 행위―를 넘어 중세-근대에 이르기까지 진지한 연구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게 된다. 심지어 전극을 성기에 고정해 전류를 흘리는 '전기 치료'가 17세기에 이미 시도됐고, 1889년 72세의 프랑스 의사는 동물의 고환에서 추출한 물질을 자기에게 주사로 주입하기도 했다. 이 문제에 대한 남성들의 집착과 열의를 짐작케 한다.

1983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미 비뇨기과 협회 행사에선, 영국 생리학자 자일스 브린들리가 직접 자신의 음경에 주사로 약물을 주입한 결과를 대중 앞에서 선보이려다 큰 소동을 빚었다. 불과 10여 년 후 비아그라가 개발될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브린들리 자신도 절대로 하려 하지 않았을 발표였을 것이다.

당초 화이자가 고혈압과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한 약물 '실데나필'은 실패작이었지만 경제적으로는 가장 성공한 실패작이 됐다. 이 약은 원래의 개발 목적이었던 심장 혈관을 확장시키는 데에는 완전히 실패했지만, 대신 다른 어딘가의 혈관을 확장시키는 데 성공하며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화이자를 돈방석에 앉혔다.

비아그라라는 상품명이 '활력(vitality)'을 뜻하는 말에서 왔다는 점을 밝히면서도 그 '활력'이란 곧 "제약 분야의 창의성으로 이뤄낸 성공"을 뜻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의뭉일까, 아니면 미국인 특유의 조크일까.

다만, 놀랍게도 비아그라도 전쟁에서 활약했다.

CIA가 비아그라를 아프가니스탄 정보원을 설득하는 도구로 사용해 그 지역의 탈레반보다 유리한 지점을 선점했다는 보고서는 많다. CIA는 남부 아프간에서 유난히 미국의 개입을 경계하던 60세 족장이 살던 마을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은 족장이 관리하던 주요 통로에 접근하는 일뿐 아니라 주변 환경에 대한 족장의 지식도 필요로 했다. 족장의 나이로 미루어 짐작컨대 발기부전을 겪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현장 정보원은 족장에게 화이자 로고가 자그마하게 새겨진 얄약 4개를 전해주었다. 다음날 족장은 정보원에게 무한한 충성심을 보였다. (360쪽)

같은 화학구조를 가진 물질이 약으로도 독으로도 활용되듯이, 그 약물 혹은 독물을 활용하는 방법도 그야말로 가지가지라 할 것이다. 1969년 대한약사회의 표어를 상기해 본다. "약 모르고 오용 말고 약 좋다고 남용 말자."

▲키스 베로니즈 <약국 안의 세계사>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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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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