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극우교과서 "한반도는 흉기, 위험한 칼은 제거돼야"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19] 누구를 위한 '역사전쟁'인가 (下④)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죄의식을 가질 필요 없다." 이즈음 일본의 극우파들이 모인 자리에서 튀어나오는 소리가 '우리가 뭘 잘못 했느냐'는 것이다. 1995년 일본 패전 50주년을 맞아 사회당 출신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지난날 침략전쟁과 전쟁범죄에 사죄의 뜻을 나타냈었다. 그 뒤로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일본은 보수 우경화 흐름을 보여 왔다.

역사교과서엔 전쟁범죄를 지우고 과거사를 미화하는 내용들이 늘어났다. 이로 말미암아 동아시아 국가들과 일본 사이엔 이른바 '역사전쟁'이 벌어져 왔다. 특히 문제는 지난날의 전쟁범죄를 부인·축소·왜곡하는 일본 극우파들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가리켜 역사전쟁의 선봉에서 선 전사(戰士)로 자부한다.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벌이던 시절의 일본을 정당화하면서, 오늘의 일본 사람들이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일본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나쁜 일을 했다고 일본인이 먼저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쁜 일을 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일본은 좋은 일도 했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고식적인 말투를 그만 두자. 우리는 아무것도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니시오 간지, <국민의 역사> 산케이신문, 1999, 720쪽).

"우리들은 역사의 필연으로서 일어난 먼 과거의 일에 대해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다. 사죄할 필요도 없다. 잠자코 있어야 한다"(같은 책, 722쪽).

위 글은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논객인 니시오 간지(西尾幹二, 1935년생)가 1999년에 낸 <국민의 역사>에서 옮겨왔다. 도쿄대 독문과를 나온 니시오는 전문적인 역사연구자는 아니다. 지난날 일본 국왕이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제국주의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국수주의자로, 일본 언론에 자주 얼굴을 비치는 극우 보수 논객이다. 일본 군국주의 시절을 찬양하는 이 책은 책 제목과는 달리 '국민은 없고 일왕만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일본의 보수언론사인 산케이신문사에서 찍어낸 이 책은 분량이 774쪽으로 두껍다. 일반 독자들은 책의 두께에 질려 책을 집었다가 놓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산케이가 열심히 홍보를 해댄 덕분에 수십만 부가 팔렸다고 선전된다. 구시대의 향수를 지닌 일본 독서층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하지만 산케이신문사의 인위적인 판매부수 띄우기 의혹도 있다. 니시오 간지가 회장으로 있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약칭 '새역모'의 전국 지부에서 무료로 나눠줬다고 알려진다('새역모'에 대해선 곧 이어 살펴본다).

"침략전쟁이 아니라 자위(自衛) 전쟁이었다"

니시오가 이 책에서 일본의 가혹했던 식민지 지배와 수탈, 침략전쟁과 그에 따른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쟁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것'이라는 궤변도 보인다. 그가 내건 주장들은 구절 하나하나마다 대담하다 못해 뻔뻔스럽기까지 하다. "과거사에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말이 대표적인 보기다.

지난날 일제가 벌인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침략전쟁으로 낙인 낙인찍고 일본군국주의자들을 전쟁범죄자로 비판하는 사관을 흔히 '도쿄재판사관'(줄여 '도쿄사관')이라 일컫는다. 일본 패전 뒤 열렸던 도쿄전범재판에서는 20세기 전반기 일본을 '전쟁범죄를 저지른 침략국'이라 부정적으로 낙인찍고, 일제의 전쟁지도자들을 '전쟁범죄자'로 몰아 단죄했었다. 바로 그러한 상황을 납득할만한 사실로 받아들이는 역사인식이 도쿄사관이다.

니시오를 비롯한 일본의 극우파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무엇보다 '도쿄사관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세기 전반기의 일본군국주의에 대한 향수를 지닌 일본 우익들은 도쿄사관을 '암흑사관'으로 여긴다. 그들의 시각에서는 부정하고 극복해야할 사관이다. 그들은 거듭 주장한다. 일본이 지난날 저질렀던 전쟁범죄의 콤플렉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전범국가의 죄의식에 사로잡힐 이유가 없다고.

그들의 시각에선 지난날 침략전쟁은 일본을 외국의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자위(自衛)전쟁'이다. 따라서 일본을 전범국가로 낙인찍은 도쿄사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사를 다시 바라보자는 역사수정주의(정확히 말해서 역사부정주의)에 바탕해 이른바 '자유주의사관'을 내세운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막는 지금의 평화헌법을 개정해 '예전처럼 마음대로 전쟁을 벌일 수 있는 자유'를 되찾고 21세기를 '새롭고 강한 일본의 세기'로 바꾸자는 주장이다.

"역사 폄하하는 일본인은 역사전쟁 못 이긴다"

2021년 니시오는 극우 연구자들로 이뤄진 '현대사연구회'와 함께 <스스로 역사를 폄하하는 일본인>이란 책을 냈다. 여기서 니시오는 '역사전쟁의 형태로 차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책 제목처럼  '스스로 역사를 폄하하는 일본인은 이 역사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지난날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반성적으로 돌아보자는 자성(自省)사관을 자학(自虐)사관이라 비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전쟁에서 이기는 길은 무엇일까. 니시오의 주장에 따르면, 맥아더 장군의 일본 점령 아래서 벌어졌던 도쿄전범재판이 일본인들에게 강요했던 '일본은 전범국가'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일본 극우파들은 지난날 일본이 벌였던 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전쟁에 휘말린 자위(조국방어) 전쟁이었다고 여긴다. 그런데 역사교과서에 '침략전쟁'으로 잘못 선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서 독자 여러분이 꼭 인식을 다시 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근대 일본 전쟁에 대한 평가이다. 그것은 공인 역사교과서 내용과는 반대이다. 지난 전쟁은 일본이 주도하여 일으킨 전쟁이 아니다. 일본은 어쩔 수 없이 전쟁에 휘말렸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 시대에는 고립을 지키고 있을 수 없었다. 세계를 외면했다면 틀림없이 일본 민족은 열강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열강의 위협으로부터 일본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았다](西尾幹二+現代史研究会, <스스로 역사를 폄하하는 일본인> 徳間書店, 2021, 서문).

니시오를 비롯한 일본 극우파들은 주장한다. '일본은 악이고 연합군은 선하다는 선악이원론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종군위안부 문제와 난징학살(그의 용어로는 '난징사건')이 자꾸만 논란이 되는 것은 '한국과 중국이 펴는 선전전에서 일본이 지고 있기 때문'이라 우긴다. 그 때문에 '일본인들 자신이 속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 전쟁지도부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았다'고 존경심마저 나타낸다.

▲ 본 극우파들은 군국주의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새 역사교과서를 통해 전쟁범죄로 얼룩진 과거사를 지우고 싶어 한다. 그들이 여는 집회엔 어김없이 욱일기가 보인다. ⒸAbasaa

자민당 역사검토위원회, "난징학살, '위안부' 등은 날조됐다"

따지고 보면, 일본의 교과서 왜곡 움직임의 가장 큰 책임은 집권세력인 자민당이 져야 한다. 지금부터 꼭 30년 전인 1993년 8월 자민당은 '역사검토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교과서 왜곡의 횃불을 들어올렸다. 역사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2년 뒤인 1995년 8월 위원회의 총괄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주장을 담고 있다.

△대동아전쟁(아시아태평양전쟁의 극우적 표현)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자존자위의 전쟁이며 아시아 해방전쟁이었고 △난징학살, '위안부' 등의 가해는 날조이며 일본은 전쟁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현행 일본교과서는 있지도 않은 침략이나 가해를 쓰고 있어 새로운 교과서가 필요하고 △위와 같은 역사인식을 일본국민의 공통인식, 상식으로 바꾸기 위해선 학자들로 하여금 국민운동을 전개하게 할 필요가 있다(타와라 요시후미, <철저검증 위험한 교과서> 역사넷, 2001, 69쪽 요약).

이 보고서는 '위안부' 성노예나 난징학살을 부정하는 역사수정주의에 따라 교과서에서도 일본 전쟁범죄 잔혹사를 지워내려는 시도나 다름없다. 자민당 역사검토위원회가 제안한 '학자들의 국민운동'에 동조하는 연구자들이 모여 만든 것이 이름도 그럴듯한 '자유주의사관연구회'다. 연구회 주요 구성원들은 전쟁범죄로 얼룩진 일본의 과거사를 부끄럽게 여기는 양심적인 학자들을 겨냥해 '자학사관을 지녔다' 또는 '도쿄사관을 지녔다'고 몰아세우던 극우 연구자들로 채워졌다.

1997년 1월 이들 극우세력이 주축이 돼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약칭 새역모)을 출범시켰다. '새역모'는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준다는 비판을 받았던 <새로운 역사교과서>(후소샤, 2001)를 만든 산파역이다. 글 앞에서 살펴본 극우 논객 니시오 간지가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교과서의 대표필자로 이름을 올렸다(니시오가 쓴 <국민의 역사>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보다 2년 앞서 일종의 '대안 교과서'랍시고 나온 셈이다. 하지만 '교과서'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적절치 않다. 그저 '황국' 시절을 그리워하는 한 개인의 넋두리가 담긴 수필집이다.)

'새역모' 출발과 더불어 일본 정치권에서도 같은 이념적 움직임이 활기를 띠었다. 1997년 극우파들을 포함한 일본의 최대 우익단체인 '일본회의'가 얼굴을 내밀었다. 일본의 현행 헌법(평화헌법)을 고쳐,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일본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정치·경제·문화·종교·예술 등 각계 각층의 보수 우파 인사들이 결집한 국수주의 성향의 조직이다.

'일본회의'와 함께 일본 우익의 '양쪽 수레바퀴'라는 평가를 받는 신도(神道)정치연맹(약칭 신정련, 1969년 발족)도 극우파들에게 큰 힘이 된다. 신정련은 일본 전국의 8만 개가 넘는 신사의 연합체이기에 우익 정치가들에겐 엄청난 표밭이다. '일본회의'와 신도(神道)정치연맹은 학계의 '자유주의사관연구회'와 '새역모'와 마찬가지로 지난날 일본의 전쟁범죄를 부인하는 역사수정주의, 역사부정론에 기울어 있다. 그래서 헌법도 바꾸고 교과서도 바꾸고 싶어 한다. 야스쿠니를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고 군국주의 부활을 바란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교과서 왜곡의 배후는 아베

일본 우익들은 역사교과서 내용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바꾸겠다는 움직임에 '역사 개찬(改撰) 국민운동'이란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놓고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사항은 '일본회의'와 '새역모'가 추진해온 역사 왜곡의 중심엔 2022년 7월 유세장에서 사제총격 2발에 맞아 죽은 아베 신조(1954-2022)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21세기 들어 일본 교과서 왜곡으로 동아시아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든 배후를 따져보면, 무려 9년 동안 총리(2006-2007, 2012-2020)를 지냈던 아베를 빼놓을 수 없다.

아베는 한마디로 21세기 일본의 우경화를 이끈 극우 정치인이다. 2006년 총리가 되자말자 그는 첫 번째 목표로 교육기본법 개정을 밀어붙였다. 패전 뒤 만들어졌던 교육기본법은 '신민(臣民)의 충효'를 내세웠던 '교육 칙어'를 없애고 민주적 시민교육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아베가 무려 60년 만에 바꾼 교육기본법엔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 애국심과 국가주의(국가 이익이나 안보가 개인의 자유나 인권보다 우선한다는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문구들을 담고 있다.

아베가 보였던 극우적 행태는 한둘 아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참배하러 간다'는 명분을 내세워 일본 군국주의의 심장부인 야스쿠니 신사를 들락거렸다. 조선인 강제노동에 따른 희생 (뒤집어 보면 일본의 전쟁범죄) 기억이 짙게 서린 군함도(하시마) 전시시설을 방문한 자리에선 "강제동원 주장은 근거 없는 중상모략"이라고 우기기도 했다.

일본의 패전 70주년을 맞이한 2015년 8월15일에 낸 '종전 70년 담화'에선 아베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억압에 대해선 아예 입에 담지도 하지 않았다. 1995년 패전 50주년을 맞아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통절한 반성과 더불어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전한다'고 지난날 일본의 침략전쟁과 전쟁범죄에 대해 사과 담화를 냈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를 이루었다.

아베는 듣기엔 그럴싸한 '자유주의 사관'(사실상 전쟁범죄로 얼룩진 과거사를 부정하는 '역사수정주의')의 입장을 지녔다. 그런 아베의 눈으로 보면, 무라야마와 같은 정치인들이나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자성(自省)을 촉구하는 역사학자들이 '자학(自虐)사관에 붙잡힌 불쌍한 포로'들이었다.

아베의 정치참모, "역사전쟁 이기려면 천황 중심 역사관 가져야"

죽은 아베 전총리와 떼놓을 수 없는 극우 학자가 한 사람 있다. 나카니시 테루마사(전 교토대 교수, 정치학)이다. 그는 아베의 정책 브레인이자 '외교 스승'이라고까지 일컬어졌던 극우 성향의 정치학자(또는 역사학자)다. 일본의 핵무장을 마다할 이유가 없고,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이 군사대국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강경론자다. 무엇보다 그는 지난날 대일본제국의 향수를 지닌 국수주의자다.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이사로 있으면서, 후소샤의 <새역사교과서> 제작 방향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6년에 펴낸 그의 책 <일본인으로서 이것만은 알아두고 싶은 것>(PHP研究所)에선 "일본인들이 천황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러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헌법 9조가 평화를 지켰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천황'을 일본 문명의 핵심으로 파악함으로써 일본인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되묻지 않으면 안 된다." '천황제가 곧 일본인의 정체성'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왜 일본인들은 전쟁 전을 부정(죄악시)하는가?"

이처럼 나카니시는 역사전쟁의 전사로서 목소리를 높여왔다. 2013년 일본의 보수 월간지 <세이론(正論)>에 그가 기고한 '현대 역사전쟁을 위한 안전보장'이란 글도 위에 폈던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일본인들이 역사전쟁에서 이기려면 올바른 역사인식(역사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글의 일부를 옮겨본다.

[일본인이 오해하는 '역사인식'이야말로 미사일이나 핵무기보다도 훨씬 무서운 위협을 일본에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본인이 본래의 독립주권국가로서의 역사관을 재건하지 않으면 국가의 존립이 위험해진다. 우리 개개인의 역사관이야말로 역사전쟁에서 안전을 보장해주는 최후의 보루다](中西輝政,「現代 '歴史戦争'のための安全保障」<正論> 2013년2월호).

한반도 흉기론, "위험한 단도(短刀)는 제거돼야"

위의 나카시니 테루마사가 이사로, 글 맨 앞에서 살펴본 니시오 간지가 회장을 맡은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2001년 내놓은 것이 문제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사 출판쪽 자회사인 후소샤(扶桑社)가 펴낸 이 책은 니시오를 대표필자로 내세웠다. 기본적으로 일본의 한국 침탈과 식민지지배를 합리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엔 엉터리 지정학에 바탕을 둔 해괴망측한 '한반도 흉기론'까지 나온다.

[동아시아의 지도를 보자. 일본은 유라시아 대륙으로부터 조금 떨어져서 섬에 떠있는 섬나라이다. 이 일본을 향하여 대륙으로부터 가늘고 긴 팔뚝이 돌출되어 있다. 그것이 조선반도이다. 조선반도가 일본에 적대적인 대국의 지배 아래 들어가면 일본을 공격하는 절호의 기지가 되고, 배후지를 갖지 못한 섬나라 일본은 자국의 방위가 곤란하게 된다. 따라서 조선반도는 일본에 끊임없이 들이대어져 있는 흉기가 되기 쉬운 위치관계에 있다](<새역사교과서> 백표지판, 218쪽. 이원순·정재정 편, <일본 역사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 동방미디어, 2002, 91쪽에서 재인용).

어린 학생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지정학적으로 한반도가 일본의 안보를 위협하는 흉기라면 제거해야 (다시 말해서 무력으로 점령해 일본의 식민지로 차지해야) 안심이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심어주기 십상이다. 터무니없는 궤변으로 한반도를 '흉기'로 규정하고, 이 '흉기'를 없애려면 일본이 나서서 한반도를 '제압'하는 것이 논리적 귀결이 된다. 지난날 일본 군국주의의 한반도 침략과 그에 따른 억압과 수탈, 전쟁범죄를 합리화하려는 이런 문장은 위험하고 비뚤어진 역사인식을 심어주기 마련이다.

한반도 흉기론은 일찍부터 일본 국수주의자들이 들먹이던 용어 가운데 하나다. 그들은 (안중근 의사의 총에 맞아 죽은) 이토 히로부미가 그 흉기를 제거했다고 여긴다. 1968년 일본 우방협회(友邦協會)에서 낸 <명치일본의 대한정책>이란 책자는 한반도를 가리켜 '일본을 겨냥한 아주 위험한 단도(短刀)'로 묘사했다. 위험을 없애려면? 거꾸로 일본의 힘으로 조선반도를 세게 누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후소샤 교과서에 나오는 흉기론이 이 책자를 베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같은 맥락이다.

▲ 일본 군국주의 시절을 찬양하면서 전쟁범죄로 얼룩진 과거사를 부인하고, 일본 평화헌법 개정을 바라는 극우 서적들. ⓒ

"일본 승리가 동남아·인도에 독립 꿈 심었다" 한반도는?

일본군이 동남아시아를 쳐들어가면서 포로학대를 비롯한 숱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후소샤 역사교과서의 서술은 다르다. 전쟁범죄는 '전쟁을 이기기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벌어진 행동'이라며 일본의 침략을 합리화하고 있다.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공격 뒤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동남아시아로 쳐들어간 것에 대해 궤변을 늘어놓았다. 마치 그곳 사람들의 독립을 위해 일본이 대신 나서서 백인 지배자들을 몰아낸 '정의로운 아시아 해방전쟁'인양 쓰여 있다.

[수백 년에 걸쳐 백인의 식민지 지배에 시달리던 현지 사람들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승리였다. 일본이 여러 전쟁에서 승리하여 동남아시아와 인도의 대부분 사람들에게 독립이라는 꿈과 용기를 주었다. 일본 정부는 이 전쟁을 '대동아전쟁'이라고 이름 붙였다. 일본의 전쟁 목적은 자존자위와 아시아를 서양의 지배에서 해방시키고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는 것에 있다고 선언했다](한중일3국 공동역사편찬위원회, <미래를 여는 역사> 한겨레신문사, 2005, 232쪽에서 재인용).

일본의 교과서 검정 제도는 4단계를 거친다. 검정신청(1단계의 백표지본)→검정→합격(견본본)→학교 채택 순이다. 위 인용문은 검정 합격 뒤의 견본본이다. 1단계의 백표지본엔 일본의 침략전쟁의 승리로 '독립이라는 꿈과 용기'를 심어준 곳들에 동남아시아와 인도뿐 아니라 아프리카까지 포함돼 있었다. 검정과정에서 아프리카는 '증명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빠졌다. 후소샤 교과서는 이렇게 '식민지 해방가'를 부르면서도 한반도 조선과 타이완을 이미 식민지로 묶어두던 상황에 대해선 말이 없다. 얼마나 이중적이고 자기기만인가.

후소샤 교과서의 집필자도 이런 황당한 궤변을 늘어놓고 있음을 의식해서일까, '역사에 선악을 적용하여 현재의 도덕으로 단죄하는 재판은 그만두자'고 주장한다. 전범국가 일본을 더 이상 비판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 일본 지식인들도 놀라움을 나타낸다. 이오키베 마코토(고베대학교수, 국제정치학)는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만큼 차분하게 쓰인 보통 교과서들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분명히 새롭다'고 했다. 하지만 '교과서를 읽는 (일본)중학생의 피를 들끓게 하고 육신의 흥분을 불러일으키려는 붓놀림'이 경박스럽다고 비판했다(이원순·정재정 편저, 139쪽).

이오키베 교수가 지적했듯이 경박한 서술방식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엉터리 서술내용이다. 문제의 후소샤 교과서엔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쟁범죄를 부인하는 일본 극우들의 주장이 곳곳에 들어있다. 그럼에도 2001년 일본 문부성의 검정을 통과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한국과 중국은 크게 반발했고 일본 국내에서도 논란이 벌어졌다. 검정 과정에서 모두 137곳의 수정의견을 받아들여 조금씩 빼고 고쳤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극우파가 주장하는 기본 맥락은 그대로 담긴 채였다.

겉포장만 다른 극우 교과서들

다행히도 일선 학교에선 이 교과서를 외면했기에 교과서로 채택되진 않았다. 전일본교직원조합(일교조)을 중심으로 한 일선 학교의 교사들이나 학부형들도 극우적인 내용을 담은 후소샤 교과서로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4년 뒤인 2005년 후소샤 교과서는 다시 한 번 검정을 통과했다. 하지만 채택률이 낮기는 마찬가지였다(채택률 0.39%).

내용에 문제가 많고 채택률이 형편없는 후소샤 교과서가 까다로운 검정을 통과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후카야 가쓰미(와세다대학교수, 일본근세사)는 '문부과학성이 후소샤 교과서를 특별히 후원해주었기 때문'이라 지적한다. 아울러 그는 '우파적인 교과서에 대해 유리하게 (정확히는, 봐주기 식으로) 검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일본 정부를 비판한다(<동아시아 역사교과서의 주변국 인식>, 동북아역사재단, 2008, 64쪽).

후소샤 교과서는 검정을 통과한 뒤 몇몇 학교에서 채택됐다. 하지만 채택률이 워낙 낮은 탓에 후소샤는 더 이상의 교과서 발간을 포기했고, 문제의 교과서는 끝내 폐기됐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후소샤는 서점가에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이름도 바꾸지 않은 채 일반 단행본으로 내놓았다. 일본의 보수 우익 독자층을 겨냥한 것이다. 지금껏 적어도 70만 부쯤 판매된 것으로 알려진다.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일본 교육현장에 자리잡는 데 실패한 뒤로, 2010년 전후로 또 다른 출판사(지유샤, 이쿠호오샤) 두 군데에서 극우적 시각을 담은 교과서가 새로 나왔다. 이쿠호오샤(育鵬社)는 '새역모'에서 내부 알력으로 뛰쳐나온 또 다른 극우집단인 '교과서개선의 모임'과 관련된 출판사다. 지유샤(自由社)는 우익잡지 <지유(自由)>를 내는 곳으로 후소샤와 결별한 '새역모' 잔류파와 손잡았다. 특이 사항 하나. 아마존 재팬 웹사이트에 들어가보니, '검정 불합격'된 지유샤판 <새로운 교과서>가 판매 목록에 올라있다. 극우 성향의 일본 독자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지유샤, 이쿠호오샤 둘 다 극우 이념을 지닌 이들이 펴내는 교과서라서, '겉포장만 다른 왜곡 교과서'란 비판을 받는다. 문제는 이들의 채택률은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우경화 흐름 덕이다. 반면에 (지난주 글에서 살펴봤듯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교적 충실하게 교과서 내용에 다루어왔던 니혼쇼세키(日本書籍)의 운명은 달랐다.

"역사전쟁에서 우리가 이겼다!"

전일본교직원조합(일교조)의 지지를 받던 니혼쇼세키의 역사교과서는 한때는 채택률이 매우 높았다. 이를테면, 1997년의 경우 도쿄 23개 구 교육위원회에서 모두 니혼쇼세키 역사교과서를 채택했었다. 하지만 극우파들의 압력으로 (각 지역 교육위원회가 보수 우경화되는 흐름과 맞물려) 채택률이 해마다 줄어들더니 2003년 결국 문을 닫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일본 극우파들은 역사전쟁에서 언젠가는 완승할 것이란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알려진다.

지난 20여 년 동안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을 중심으로 역사개찬운동을 펴온 극우파들은 꾸준히 그들의 목소리를 내왔다. 일본 최대의 우익단체인 '일본회의'와 신도(神道)정치연맹(약칭 신정련)은 큰 힘이 됐다. 일본 군국주의를 미화하고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일본을 전쟁을 할 수 있는 군사강국으로 만들고, 일왕이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라는 우파들은 그들의 주장을 담은 책들을 펴내고 강연회나 학술회의를 열어왔다. 그때마다 산케이신문 같은 우익 언론들이 홍보성 기사로 띄어주는 것은 물론이다.

지구촌 어딜 가나 극단세력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폭력적이지만, 일본 극우파들도 예외가 아니다. 자신들의 생각과는 다른 출판물의 신간 설명회나 시국 강연장에서 몸싸움을 벌이며 소란을 피우기 일쑤다. 평화박물관이나 전쟁자료관 등 일본의 전쟁범죄를 보여주는 전시관 앞에 몰려가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하기도 한다. 한국을 겨냥한 저속한 쌍욕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일본 극우 유튜버들도 역사전쟁의 '넷(net)전사'로서 한몫을 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한 목소리로 외친다. "역사전쟁에서 우리가 이겼다!"

이들이 고맙고도 소중한 해외 자산으로 여기는 집단이 <반일 종족주의>로 대표되는 한국의 '신친일파'다. 다음 주엔 '위안부'와 독도가 사라진 이즈음 일본의 교과서 왜곡 상황, 한국 안에서 벌어진 교과서 역사전쟁의 문제점, 끝으로 한일 사이의 역사전쟁을 끝내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독자들과 함께 살펴보려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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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명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kimsphoto@hanmail.net)는 지난 20여 년간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 세계 20여 개국의 분쟁 현장을 취재해 왔습니다.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중앙일보>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미국 뉴욕시립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국민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22년까지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저서로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오늘의 세계 분쟁> <군대 없는 나라, 전쟁 없는 세상> <시리아전쟁>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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