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에 사는 김천수(72) 씨는 34년째 노인복지시설과 마을 경로당 등을 돌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또 장애인 출퇴근 차량 지원 등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김 씨는 쉬지 않고 한 달 내 일해 200여만 원을 번다. 수년 전 어머니 수술비가 없어서 빌린 돈 이자를 내고 나면 생활비도 부족한 형편이다.아흔을 넘긴 어머니에, 장애가 있는 세 아들까지 있는 김씨가 봉사활동을 멈추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김 씨를 만나 봉사에 앞장서게 된 이유와 그동안의 활동에 대해 들어봤다. / 편집자
프레시안: 봉사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김천수: 38살이 됐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노인복지시설에 계시다 돌아가셨는데, 뒤늦게 소식이 닿아 가보니 시설 원장님이 그동안 돌봐주셨다고 하더라. 시설에서 내준 땅에 아버지를 묻고 돌아오는 길에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프레시안: 대부분 일해서 번 돈으로 봉사활동을 한다고 들었다.
김천수: 확실한 건 내가 여유가 있어서는 아니라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공장 일과 도살장 잡일을 하면서 번 돈으로 봉사를 했다. 지금은 폐지 줍고 고철을 주워 판 돈으로 봉사를 한다. 사정을 아는 지인들이 가끔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들도 대부분 여유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봉사단체나 기관에 속해 일한 게 아니고 그냥 봉사가 좋아서 개인적으로 활동을 하다 보니, 누군가에게 좀 도와 달라는 소리를 못 한 것 뿐이다.
프레시안: 그동안 어떤 봉사활동을 주로 했나.
김천수: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봉사가 많았다. 노인복지시설을 돌며 효도잔치를 벌였다. 그동안 얼마나 했는지는 세기가 어렵다. 노인정이나 경로당 같은 곳에 쌀과 부식을 대는 봉사도 했고, 장애인 출퇴근 차량 지원이나 심부름을 해주는 봉사도 했다. 그렇게 다니는 곳이 130여 곳 정도 된다.
프레시안: 어머니의 도움이 컸다고 들었다.
김천수: 어머니가 아프시기 전까지 작은 정육점을 하시며 많이 도와주셨다. 어머니가 없었다면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어머니가 거동이 불편하신데 정작 내 어머니는 돌보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언제나 응원해 주시는 어머니가 있어 계속 이 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프레시안: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천수: 소수이기는 하지만 가끔 ‘돈 많아서 저러고 산다’, ‘상에 욕심이 있어 저런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돈 많고, 상도 많이 받으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돈 많다고 상에 욕심이 있다고 봉사하는 건 아니다. 봉사하면 행복해진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봉사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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