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 비명계'의 반란? 예상 깬 이탈표 38표로 대혼란 민주당

이재명 대표 취임 이후 최대 위기…거취 압박 요구 높아질 듯

헌정 사상 최초의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결국 부결됐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장담한 '압도적 부결'은 아니었다. 이탈표가 한 자릿수에 그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수십 표가 발생하면서 당은 그야말로 대혼란에 빠졌다.

이날 표결 결과를 두고 당 안에서는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 모두에 대한 경고'라는 해석이 나온다. 당 지도부가 이 대표 사법리스크와 당을 분리 대응하지 않으면서 당을 위기에 몰아넣었다는 비판이 표에 반영됐다는 이야기다. 

또한 이날 투표를 통해 '샤이 비명(非이재명)계'의 존재가 확인됨에 따라, 이 대표에 대한 사퇴론에 더욱 힘이 실릴 예정이다. 이 대표로선 사법적 으로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정치적으로는 당 대표 취임 6개월 만에 최대 위기를 맞이한 셈이다.

李 '표 단속' 소용 없었다..."두려움에 집단적 의사 표시"

국회는 27일 김진표 의장 주재로 본회의를 열고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과 성남FC 의혹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을 진행했다. 결과는 재석 297명 중 찬성 139, 반대 138, 기권 9, 무효 11. 부결이었다. '재석 과반수'인 가결 요건에는 미달됐다.

그러나 이같은 결과는 당초 민주당 지도부가 예상한 그림과는 달랐다. 민주당은 지난주 의원총회를 통해 '체포동의안에 대해 자유 투표로 임하되, 압도적으로 부결시킨다'고 결의한 바 있다. 굳이 당론으로 정하지 않아도 압도적 부결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특히 검찰이 제시한 구속영장 청구서에 범죄 사실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으면서 비(非)이재명계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체포동의안을 가결시킬 명분이 약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본인의 체포동의안 부결 결과를 듣고 있다. 앞서 검찰은 지난 16일 위례 신도시·대장동 개발 특혜와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과 관련,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튿날 검찰에 체포동의 요구서를 보냈다. ⓒ연합뉴스

이에 당 지도부를 포함한 많은 의원이 '압도적 부결'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쳐 왔다. 박홍근 원내대표, 조정식 정책위의장 등은 "검찰의 정치 영장을 압도적으로 부결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전 박주민 의원도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170표 이상은 부결표가 나올 것 같다. 가결표를 던질 사람이 거의 없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확인한 실제 결과는 달랐다. 이날 본회의에 출석한 의원은 무소속 김홍걸 의원과 구속된 정찬민 의원을 제외한 297명. 이 가운데 국민의힘 115명과 정의당 6명, 시대전환 1명이 모두 찬성, 기본소득당 1명과 민주당 성향의 무소속 의원 5명이 모두 반대했을 것으로 가정하면, 민주당 몫 169표 가운데 최대 38표의 이탈표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같은 당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 당시 부결표가 161표 나온 것과 비교되는 수치다.

무기명 방식으로 표결이 진행됐기 때문에 이탈표의 주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간 이 대표에 대한 반대 의견을 공공연하게 피력해온 비명계 의원들일 것이란 추측이 제기된다. 이 대표는 최근 비명계 의원들을 일대일로 만나 영장의 부당함을 직접 설명하는 등 '표 단속'에 나섰지만, 이같은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이날 결과를 두고 비명계로 분류되는 중진 의원은 <프레시안>에 "예상 못한 결과"라며 "이재명 리더십에 크나큰 상처가 났다고 봐야 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대표 한 명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지도부 전체에 대한 경고 내지 심판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모든 상황을 강성으로 끌고 온 데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 초선 의원은 "두려움에 대한 집단적 의사 표시"라고 밝혔다. 지금처럼 이 대표 개인 문제와 당이 한 덩어리로 엮여있는 상황이 내년 총선까지 이어질 경우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 것이란 판단 하에 전략적으로 투표했다는 취지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 지지율이 하락세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도 민주당 의원들의 위기의식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야 접전 양상인 지역구를 둔 한 의원은 앞서 "체포동의안이 넘어오는 상황까지 가면 소신 있는 행동을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샤이 비명계'의 등장은 최근 제기된 이 대표 사퇴론에 더욱 불을 지필 것으로 보인다. 한 재선 의원은 "대표가 압박 받는 상황이 예상보다 빨리 다가왔다"고 했다. 다만 지난주 의원총회에서 "부결하고 나면 대표가 어떤 행동을 할 것"이라고 발언한 설훈 의원은 이날 체포동의안 표결 이후 기자들과 만나 "예상 못했다"면서 말을 아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본인의 체포동의안에 관해 신상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권을 쥐고 있는 친(親)이재명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김용민 의원은 이날 SNS에 "이 대표가 대선을 이겼으면 자기가 가장 공이 크다고 하고 다녔을 사람들이 오늘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라고 당내 반란표를 성토했다.

김 의원은 "무엇이 정의로운지는 배우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정치적 야욕에 눈이 먼 사람에게 보이지 않을 뿐"이라며 "그들이 틀렸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역시 친명계와 가까운 박시영 민주당 정치혁신위원도 "오늘 이후로 '개혁 대 반개혁', '혁신 대 반혁신'의 싸움이 민주당에서 벌어진다"며 "당원들이 나설 때"라고 '화력 지원'을 요청하는 듯한 글을 올렸다.

이날 표결을 계기로 친명과 비명계 간 갈등이 전면화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무효나 기권표를 무작정 '이재명 반대표'로 해석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초선 의원은 "예상보다 많은 이탈표가 나오기는 했으나 무효나 기권도 '체포 동의는 할 수 없다'는 전제라서, 다수의 민주당 의원들은 검찰 수사가 정치적이라는 점에는 뜻을 모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본인의 체포동의안에 관해 투표를 마친 뒤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기 위해 이동하며 한동훈 법무부 장관 옆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이번엔 '부스럭 소리' 없었다...가결 노렸나

한편 이날 본회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였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체포동의안 요청 이유 설명 가운데 '한 방'은 없었다. 한 장관은 지난해 12월 말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 당시에는 '돈 봉투 부스럭거리는 소리' 등을 언급하며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큰 반발을 샀다. 일각에선 한 장관이 '방탄 국회' 비판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민주당 의원들을 자극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그러나 한 장관은 이날은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비교적 차분하게 영장 내용을 설명했다. 한 장관은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성남시민의 자산인 개발 이권을 공정 경쟁을 거친 상대에게 제값에 팔지 않고, 미리 짜고 내정한 김만배 일당에게 고의로 '헐값에' 팔아넘긴 것이고, 그래서 개발 이권의 주인인 성남시민에게 천문학적인 피해를 준 범죄"라고 했다.

그러면서 "비유하자면, 영업사원이 100만 원짜리 휴대폰을 주인 몰래 아는 사람에게 미리 짜고 10만 원에 판 것"이라며 "여기서 주인은 90만 원의 피해를 본 것이지 '10만 원이라도 벌어준 것 아니냐'는 변명이 통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 "이 시장 측은 위례, 대장동 공모지침서를 남욱, 김만배 등 일당과 함께 만들었다"며 "아예 수험생이 시험문제를 직접 출제하게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시민의 입장에서는 '단군 이래 최대 치적'이 아니라 '단군 이래 최대 손해'라는 말이 어울린다 하겠다"고 했다.

성남FC 후원금 의혹에 대해선 "이재명 시장이 성남시민의 자산인 인·허가권을 사유화하여 현안이 있는 기업들을 타깃으로 노골적인 인허가 장사를 한 것"이라고 했다.

한 장관은 "시간관계상 일부만 말씀드렸지만, 다수의 물적 증거들이 구속영장 청구서에 적시된 사실관계와 정확히 일치한다"면서 "대장동 사건, 위례 사건, 성남FC 사건은 죄질과 범행의 규모면에서 단 한 건만으로도 구속이 될 만한 중대범죄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법률에 정한 구속사유인 도망의 염려란 화이트칼라 범죄에서는 곧 중형 선고의 가능성을 의미한다"면서 '유력 정치인이기 때문에 도망갈 염려가 없다'는 주장대로라면, 이 나라에서 사회적 유력자는 그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구속되지 않아야 하고, 전직 대통령, 대기업 회장들은 왜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던 것인지 설명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2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이 진행되고 있다. 앞서 검찰은 지난 16일 위례 신도시·대장동 개발 특혜와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과 관련,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튿날 검찰에 체포동의 요구서를 보냈다. ⓒ연합뉴스

이에 맞서 이 대표는 본회의 신상발언을 통해 "뚜렷한 혐의도 없이 제1야당 대표를 구속시키려는 헌정사상 초유의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 정치사에 역사적인 한 장면으로 남을 것"이라면서 "영장 혐의 내용이 참으로 억지스럽다"고 했다.

이 대표는 "1000억 이상을 추가 부담시켜 업자들이 욕을 하며 반발한 사실, 정영학 녹취록 같은 무죄정황만 차고 넘친다"면서 "무죄 추정, 불구속 수사 원칙은 차치하더라도 소환 요구에 모두 응했고. 주거 부정, 도주나 증거 인멸 우려 같은 구속 사유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권자를 대신하여 국회가 내릴 오늘 결정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앞날이 달려있다"면서 "법치의 탈을 쓴 정권의 퇴행에 의원 여러분께서 엄중한 경고를 보내달라"고 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16일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튿날 검찰에 체포동의 요구서를 보냈다. 이후 체포동의안은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다. 체포동의안은 보고된 때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 표결에 부쳐져야 하는데 여야는 이날 본회의에서 상정·표결하기로 정했다.

체포동의안 부결은 21대 국회 들어 두 번째 사례다. 앞서 정정순(민주당)·이상직(무소속)·정찬민(국민의힘) 의원 등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모두 가결됐지만, 지난해 12월 뇌물수수·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는 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반대 161명으로 부결됐다.

한편 이날 개표 과정 중에서는 감표위원들이 부결표인지 무효표인지 논란을 빚은 기표를 두고 무효처리 여부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문제가 된 표는 2표로, 표결 결과에 영향이 없음에도 이 논란으로 개표가 약 1시간가량이나 지연됐다. 김진표 의장은 선관위 파견 직원으로부터 자문까지 받은 후에 비교적 글씨가 뚜렷한 1표는 '부(반대)'표로, 글씨를 알아보기 힘든 1표는 무효표로 판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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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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