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아니라 노예다"

한윤수 목사의 <오랑캐꽃이 핀다> 전 10권 출판기념회

"노동자가 아니라 노예다."

'이주노동자의 대부' 한윤수 목사는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을 이렇게 꼬집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힘들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3D' 업종에서 일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잘못된 법제도로, 고용주가 외국인 노동자를 노예처럼 인식하고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2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10층에서 열린 <오랑캐꽃이 핀다>(박영률출판사 펴냄) 출판기념회에서 한 목사는 '고용허가제'로 불법체류자가 대거 양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15년 8개월 동안 한윤수 목사가 기록한 상담일지는 총 895편, 이 가운데 700여 편이 <프레시안>에 연재됐다. 그리고 한 목사 지인들과 출판사의 노력으로 4년이라는 편집 기간을 거쳐 전10권의 <오랑캐꽃이 핀다>로 묶여 나왔다. ⓒ프레시안(이명선)

1993년 산업연수생제에서 시작된 '고용허가제'는 2004년 실시될 당시 고용계약 기간을 최대 1년으로 제한하여 체류기간 3년 동안 세 번의 직장 이동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2007년 외국인 노동자 고용 기간을 근로자와의 합의를 전제로 현행 최대 1년에서 2년, 3년으로 할 수 있도록 내용을 수정했다.

한 목사는 "원래 '근로기준법'에 모든 노동계약은 1년을 초과할 수 없다고 되어 있는데, MB 정권 당시 사장님들이 '일할 만하면 나간다'고 해서 2~3년 전혀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만들었다"면서 "그래서 고용허가제가 엉망이 됐다"고 비판했다.

"한국은 고용주 마음대로 한다. 2004년 고용허가제가 실시될 당시 제도는 잘 갖췄다. 그런데 2010년 MB 정권이 손을 대면서 꼼짝도 못 하게 해놨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사실상 3년 동안 직장을 못 옮긴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있어서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하다. 그게 아니면 불법체류자가 이렇게 양산되지도 않는다."

먼지로 숨을 쉬기 어려워도, 시끄러운 기계 소리에 시달려도, 몸에서 피가 쏟아져도 외국인 노동자들은 직장을 옮길 수 없었다. '을'일 수밖에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고용주와 '합의'한 계약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것도, 건강 이상으로 휴가를 쓰는 것도, 산재가 발생해 치료비를 받는 것도 모두 불가능했다. 

한 목사는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에서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이유를 '돈말결' 세 글자로 표현했다.

"작년 봄 인도네시아 노동자를 취직시키려고 어느 닥트 제작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닥트 회사는 야간작업을 많이 해서 한국인이 기피하는 직종으로 소위 3D 업종에 가깝다. 그 회사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하여 태국, 베트남 등 수많은 외국인을 고용하고 있었는데, 인사 담당자는 뜻밖에도 적나라한 얘기를 해주었다.

"우리 같은 업종에선 한국 사람 못 써요. 왜 못 쓰는 줄 아세요? 한국 사람은 돈 더 달라고 하고, 말이 많고, 결근이 잦거든요. 세 자로 줄이면 <돈말결>이죠."

물론 그의 말은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인사담당자로서의 경험에서 나온 얘기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래서 그의 말을 뒤집어 보았다. 거기서 외국인을 쓰는 진짜 이유가 나오니까.

"외국인은 3D 업종에서 일을 시켜도 돈을 덜 줘도 되고, 말이 없고, 결근이 없다는 뜻이로군! 다섯 자로 줄이면 <3D돈말결>이야!"(2009년 3월 26일 자 '한윤수의 '오랑캐꽃' 54편 '왜 외국인 노동자를 쓸까?' 중에서)"

'돈을 덜 줘도 되고, 말이 없고, 결근이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 한 목사는 외국인 노동자를 돕게 된 계기에 대해 "젊은 시절 야학에서 만난 청년 노동자의 얼굴과 외국인 노동자의 얼굴이 겹쳐서"라고 했다. 그는 1980년대 야학에서 만난 10대 노동자의 일기와 생활상을 모아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을 냈다. 그러나 책은 서점에 유통되기도 전에 계엄 당국에 의해 판매 금지됐다.

한 목사가 경기도 화성에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를 만든 것은 2007년. 야학이라는 공동체를 통해 청년 노동자들의 꿈을 응원했듯, 타향살이를 하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노동자센터라는 공동체를 제공한 셈이다. 그럼에도 한 목사는 자신의 노고에 대해 "별것 없다"고 겸손해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억울하게 돈 못 받았다고 오면, 돈 받아주는 것이 다다. 별것 없다. 우리도 굉장히 어려웠을 때가 많은데, 그 사람들은 자기 나라에 사는 한 20명 정도의 식구가 딸려 있다. 한국에서 월급을 보내주지 않으면, 그 식구들이 굶는다. 그러니까 돕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별한 사명감,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와서 '20명 식구가 굶는데 어떻게 합니까?'라고 해서 돈 받아주는 일만 한 것이다. 15년 8개월 동안."

<오랑캐꽃이 핀다>의 해제를 쓴 홍윤기 전 동국대 철학과 교수에 따르면, 한 목사는 외국인 노동자가 밀린 임금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동행자를 붙여주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면서 '외롭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배려했다. 그리고는 해당 노동자 통장에 돈이 '꽂힌' 걸 확인한 다음에, 고향으로 출국시켰다.

한 목사는 한국이 외국인 노동자 인권 탄압국의 오명을 벗을 수 있는 길은 직장 이동을 제한한 근로기준법에 있다며 "그것만 고치면 다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법제도 개선에 앞장서 달라고 호소했다.

▲ <오랑캐꽃이 핀다>(한윤수 지음, 홍윤기 엮음, 박경률출판사 펴냄) ⓒ박경률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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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

프레시안 이명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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