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해서 혼내주자'고?… 상사 고백 거절하니 '갑질'

'단둘이 저녁하자'는 상사 거절하자 직장 괴롭힘…"직장인 11%, 원치 않는 구애 받아"

"신입직원입니다. 상사는 술자리가 끝난 뒤 "너 나 좋아하냐?"는 말을 하고,주변 사람들에게 '제가 먼저 꼬드겼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퇴근 후 전화해 이상한 소리를 하기에 별 대꾸를 안 했더니 '니가 날 거절했으니 내일부터 혹독하게 일하고 혼날 준비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계속 일할 자신이 없어 그만두려고 합니다."(2022년 11월 직장갑질119 젠더 폭력 이메일 제보)

"작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대표가 주말에 연락하고, 단 둘이 회식하기를 요구합니다. 다른 직원과 같이 보자고 돌려 말했더니 '나랑 따로 보면 큰 일 나냐?'며 서운함을 표현했습니다. 이후 제가 연락을 받지 않자, 업무 외 시간에 연락을 받지 않는 것은 업무 태도 불량이라고 하고, '앞으로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라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2023년 2월 직장갑질119 젠더 폭력 이메일 제보)

인터넷에서는 연애감정의 교류가 없었던 상대에게 갑자기 사랑 고백을 해서 당혹감과 난처함 등을 느끼게 하는 것을 두고 '고백공격'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에 대한 변형으로는 '고백해서 혼내주자'는 말도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원치않는 '고백공격'은 더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니게 됐다.

직장인 9명 중 1명은 직장에서 원치 않는 상대방으로부터 지속적 구애를 받은 적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또한 피해자들은 이러한 구애를 거절할 경우 인사상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갑질'을 경험하기도 했다.

직장갑질119는 지난해 10월 14일부터 21일까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11.0%가 원치 않는 상대로부터 지속적인 구애를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12일 밝혔다. 특히, 직장 내에서 취약한 신분인 비정규직 여성 직장인 16%가 직장에서 원치 않는 구애를 경험했다.

지난해 9월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을 계기로 직장갑질 119가 설립한 '직장 젠더 폭력 신고센터'에 지난해 9월 21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접수된 제보 32건 중에서도 '강압적 구애'가 8건(25.0%)으로 가장 많았다.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었다.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한 시민이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직장갑질 119는 '구애 → 거절 → 괴롭힘 → 인사상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이 같은 피해사례를 '구애갑질'이라고 명명했다. 직장갑질119 제보 사례에서도 살펴보듯 '구애 갑질' 행위자는 대부분 피해자보다 직장 내 우위에 있었다.

직장갑질 119는 "피해자는 직장생활과 동료 관계를 염려하여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다가 '구애 갑질'이 계속되면 저항하는데, 이때 행위자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업무적 혹은 인사상 불이익 등 직장 내 괴롭힘을 행한다"며 "견디지 못한 피해자는 해결보다 퇴사하는 쪽을 선택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직장갑질 119는 대안으로 사내 연애를 금지하는 사규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직장인 79.8%가 '상사의 지위를 이용해 사내 연애를 금지하는 취업규칙에 동의한다'고 응답했고, 사내 연애를 금지하는 취업규칙을 제정하는 것에 72%가 동의했다고 밝혔다.

직장갑질 119는 "신당역 살인사건에서 보듯 '원치 않는 구애'는 스토킹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며 "사용자는 회사 내에서 '구애 갑질'이 벌어지는지 조사하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구애 갑질'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잘못된 연애관에서 비롯된다"며 "직장 동료를 구애의 대상으로 삼아 원치 않는 강압적·지속적 구애로 근무환경을 악화시키고 심지어는 일터를 떠나게 하는 '갑질'은 직장생활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직장갑질119 김세정 노무사는 "'구애 갑질'은 여성을 쉽게 성적 대상화하는 사회 분위기와 조직문화에서 발생한다"며 "여성 동료를 동등한 주체로 대우하는 인식 제고, 더 이상 원치 않는 구애가 낭만적인 것이 아닌 '구애 갑질'이라는 사회적 평가, 직장인 여성이 안전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와 조직문화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