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하라" 고성 오간 강제동원 토론회…피해자 유족 발언도 못해

피해자 단체 대표 "정부, 일본 기업에 배상금 받기 어렵다? 노력 부족" 비판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 이행을 두고 정부가 해법을 위한 공개 토론회를 열었으나, 토론 내용이 사전에 공개되지 않고 참석자들에게 발언 기회가 충분히 돌아가지 않는 등 졸속적으로 운영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12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외교부와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국민의힘 정진석 국회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가 오전 10시에 시작됐다. 

그런데 토론회 현장에서는 발제문이나 발제 내용이 담긴 어떠한 책자도 지급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토론회 시간표와 출입을 위한 명찰 외에 토론회 발제 내용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확인할 수 없었다.

이에 피해자 측을 중심으로 전날인 11일 토론회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이 나오기도 했다. 사실상 정부의 해결 방안이 담겨 있는 서민정 국장의 발제문이 보안을 이유로 피해자 측에게도 토론회 전날인 11일 오후 6시에야 배포가 완료됐기 때문이다. 

외교부가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겠다며 '공개 토론회'를 열었지만, 실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유족들이나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을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다. 

2시간으로 예정된 토론회는 이날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시작됐는데 정진석 한일의원연맹 회장의 개회사와 조현동 외교부 제1차관의 인사말 등으로 20분이 넘게 소요됐다. 당초 계획했던 10분보다 2배 더 많은 시간이 지나간 것이다.

이후 서민정 국장과 심규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의 발제가 30여 분 이어지면서 사실상 전반부가 마무리됐다. 이 발제시간 역시 기존에 계획했던 15분에 비해 2배가 늘어났다. 

이어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한문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 박홍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황영식 전 한국일보 주필, 길윤형 한겨레신문 국제부장, 최우균 법률사무소 자유 변호사 등 8명의 패널들이 각각 5분여 간 종합 토론 발언을 가졌다.

앞 순서에서 시간이 지체된 이후에도 토론이 계속 이어지자 청중석에서는 피해자들이 발언하게 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쳤고 패널들의 발언에 대해서도 "그만 하라"는 고성이 계속 이어졌다.

이에 김영환 실장과 임재성 변호사 등은 지금과 같은 방식의 토론회는 졸속적이라며 피해자 및 피해자 유족들과 관련 단체들이 참여하는 공개토론회를 수차례 열어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외교부에 요청했으나 서민정 국장은 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민간인도 하는데 정부가 못한다고? 노력 부족한 것 

한편 피고인 일본 기업으로부터 판결 배상금을 받은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데 대해 피해자 측은 민간인인 자신들도 해당 기업과 직접 교섭한 적이 있었다며 정부 노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론회 종료 이후 기자들과 만난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국언 이사장은 12년 전 미쓰비시 중공업과 협상 경험을 상기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표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미쓰비시중공업과 2년 동안 공식적으로 16차례 걸쳐 이 문제 관련해 교섭했을 때 미쓰비시는 일본에서 소송 패소했고 한국에서 소송이 제기되지 않았던 상황임에도 사건이 가지는 부담 때문에 교섭장에 나왔다"고 밝혔다.

그는 "(윤석열 정부는) 일본의 사과도 어렵고 기금 출연도 어렵다고 하는데 교섭장에서 미쓰비시는 사과문에 대한 초안까지 내놨었고 기금 문제도 이야기했다"며 "광주에 있는 조그만 단체도 미쓰비시를 협상장으로 불러내서 사과 초안 받고 기금 이야기까지 했는데 정부는 왜 처음부터 안된다는 걸 전제하나. 어떻게 일본 기업 책임을 한국 기업에 뜯어내는 발상을 할 수 있나"라고 따졌다.

앞서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참석한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 국장은 "(한일) 양국 간 입장이 대립된 상황에서 피고기업의 판결금 지급을 이끌어내기는 사실상 어려운 점을 민관협의회 참석자들을 비롯해 피해자 측에서도 인지하고 계신 것으로 파악한다"며 일본 피고 기업의 배상 참여가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12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과 야당 의원들이 공동주최한 '윤석열 정부 굴욕적 강제동원 해법 반대! 비상시국선언' 기자회견에서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이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의 자서전을 들며 징용토론회 불참 의견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자측 뿐만 아니라 강제동원 문제를 둘러사고 야당 국회의원과 시민단체들도 외교부가 사실상 정부 안을 마련한 뒤 이번 토론회 게최를 통해 강제동원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과 국회의원 강득구, 강은미, 고영인, 김경협, 김상희, 김한정, 김홍걸, 남인순, 류호정, 박상혁, 박정, 배진교, 서삼석, 송옥주, 신영대, 심상정, 안민석, 양정숙, 윤관석, 윤미향, 윤영덕, 이개호, 이상민, 이수진(비), 이은주, 이재정, 임오경, 장혜영, 조정식, 최혜영, 한준호, 황운하 등은 이날 오전 9시 국회 본관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2018년 대법원에서 역사적인 승리를 쟁취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일본 가해 기업의 사죄와 배상이 빠진 채 한국 기업들의 기부금만으로 판결금을 대신하여 지급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굴욕적인 해법안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는 (2018년)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고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출범 이후 일관되게 한미일 군사동맹,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일본 정부의 눈치만 보며 굴욕외교에 매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외교부는 대법원에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정당한 권리인 현금화를 미뤄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사법 농단이라는 범죄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민사소송규칙을 활용하여 범죄에 가담한 외교부가 아무런 반성도 없이 판결의 정당한 집행 절차를 지연시킨 것"이라며 "또한, 외교부는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의 국민훈장 수여조차 뚜렷한 이유 없이 가로막았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피해자들의 권리를 소멸시키는 방법을 찾는 데에만 몰두해 왔다.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가해 기업으로부터의 정당한 사죄와 배상이 아니라 피해자들을 기부금을 구걸하는 처지로 내모는 윤석열 정부는 피해자들의 인권을 짓밟고 모욕하며 누구를 위해 한일관계를 정상화하고, 누구를 위해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려는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을 짓밟는 굴욕적인 해법을 당장 철회하고, 대법원판결의 이행을 위해 일본 정부에 당당하게 맞서라"라고 촉구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 서민정 국장과 심규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이 제3자 변제, 병존적 채무인수, 일본 기업의 배상기금 참여 불가 등 구체적 변제 방안을 밝힌 것을 두고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의 최종안을 뜻하지는 않는다"며 "조금 더 유력해 보이는 해법들에 대해서 법적인 검토를 한 것이고 그것을 소개한 것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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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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