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모두가 손해'인 소 브루셀라병 정책 이대로 둬야 할까

백병걸 전 전북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백병걸 전 전북대학교 수의대 교수ⓒ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국의 8만5000여 한우 사육농가는 더 이상 브루셀라병 때문에 고통을 받지 않겠다는 기대를 했으나 그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림부)는 지난해 9월에 이어 올해 10월에도 ‘브루셀라병 방역강화 대책’을 내놓았지만 기존의 방역정책 그대로여서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다.

지난해 방역 강화 대책의 일환으로 그동안 금기사항이었던 거세우(생식기능을 제거한 수소)를 검사하겠다는 새 조항이 들어가자 한우 농가들은 평생 검사 한 번 받지 않았는데 웬 검사냐며 항의가 거세지자 그 조항이 다시 삭제되고 말았다.

다시 예전의 정책으로 돌아가 한우의 반은 검사하고 반은 검사를 하지 않으니 이 전염병을 차단하는 것은 기대 난망의 일이 되고 말았다.

이 정부 역시 소를 죽이기만 할 뿐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인수공통전염병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근본적인 대책에는 눈감은 채 감염된 소는 국민의 혈세를 들여 땅에 묻어 버리는 예산 낭비 정책을 언제까지 고수할 것인지 암담하다.

지난 35년간 소 브루셀라병의 진단과 살처분 정책으로 인해서 약 13만 여두가 땅에 묻히며 1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매년 정기검사를 해왔으나 2021년에도 이 전염병은 전남, 경남을 비롯해 35개 지역에서 확산됐다.

예방 백신을 1회만 접종해도 퇴치될 이 전염병에 처음 발병하면 살처분 보상비를 시가의 80%, 재발하면 60%의 보상비를 지급하면서 예산낭비와 함께 그 책임을 농가에 돌리는 정책을 이어가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올해 10월 이 정부에서도 그간의 그 엉터리 정책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져 다시 한 번 더 제언한다.

현재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소 브루셀라병에 대해 OIE(The World Organization for Animal Health, 국제수역사무국) 규정에 따라 백신을 접종해 십 수년째 청정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와 달리 진단 및 살처분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해 한우사육농가가 청와대에 백신 정책을 세워 달라는 국민청원을 제출했으나 청원인의 숫자가 모자라 검토 조차되지 못했다.

정부는 한우 사육 농가가 외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백신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요구하자 처음에는 “브루셀라 백신은 없다”고 우기더니 2016년 9월 국정 감사에서 외국은 백신을 사용하고 있음이 밝혀지자 이제는 “미국의 RB51 백신이 안전하지 않다”거나 “축산 농가가 원하지 않는다” 또는 “감염률이 아직 낮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백신 접종 정책 수립을 회피하고 있다.

매년 수 백억원에 달하는 살처분 보상비와 진단 검사비 등은 국민의 혈세이자 한우 사육 농가의 재산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 더구나 살처분 매장으로 인한 토양과 상수원의 오염도 문제지만 인수공통전염병으로 인해 면역에 약한 노약자는 패혈증으로 생명이 위협당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미국을 비롯해 멕시코, 캐나다, 중국 등 브루셀라가 발병한 국가 중 백신을 사용하지 않는 국가가 없는데 우리만 일관되게 ‘예방용 백신은 없으니 진단만 철저히 하자’며 소를 죽이고만 있는 것은 너무나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처사다.

몇 천원이면 일생 면역이 되는 병을 두고 국가예산을 쏟아 부어 값비싼 소를 죽이고 이를 땅에 묻어 오염을 유발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정책은 당장 그만두어야 옳다.

소 브루셀라와 인수공통전염병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노학자의 제안을 윤석열 정부는 심사숙고하고 현명하게 판단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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