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교원 대접'은 받지 못한다

[한국어 교원 투쟁이야기 ⑤] 뭉치면 바뀝니다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번진 2020년 3월 이후, 하늘길이 막히고 거리두기가 강화되었습니다.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교육은 위축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어교원 조합원들은 계약직 38명 전원을 무기직으로 전환했고(서울대), 학교와 단체협약, 임금협약을 체결했습니다(연세대). 10년도 넘게 묵은 계약서를 새로 썼고(경희대), 부당해고에 맞서 대법원까지 갔다 복직했습니다(강원대). 엔데믹이 가까워진 2022년 10월, 한글날을 맞이하여 팬데믹 기간 한국어교원의 투쟁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책만 보아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을 일러 백면서생(白面書生) 또는 책상물림이라 한다. 한국어교원이 그렇다. 외국인에게 한국어 가르치는 일이 그저 좋았다. 한국어 어휘와 문법을 어떻게 잘 가르칠지 고민하고 방법을 찾는다. 수업을 준비하고 숙제를 검사하고 학생을 도왔다. 교실 안에서는 보람이 컸지만, 할 말이 궁색할 때가 가끔 있다. 특히 월급날 그랬다. 허생의 아내도 이렇게 말했다. "밤낮으로 책을 읽더니 고작 배운 게 '어찌하란 말인가'라는 말뿐이오?" 보람을 이어가려면, 아이와 배우자, 후배나 친구에게 한국어교원이 정말 좋다고 말하려면 … "바보야, 문제는 노동조합이야."

"노동조합"이라 함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를 말한다(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제4항).

강사법, 교원 그리고 노동자

소위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은 대학교 어학당 한국어교원과 아무 관계가 없다. 강사법은 대학 시간강사의 고용 안정과 처우개선, 교원 지위 인정을 위해 입안되어 시행되었다. 어학당 한국어교원은 '대학 시간강사'가 아니다. 학부(대학원)의 교육과정을 담당하지 않고 외국인 어학연수생을 가르치기 때문에 고등교육법의 교원이 아니다. 교육부(19년 2월 1일 질의회시)와 고용노동부(19년 2월 22일 질의회시)에 거듭 확인했다. 어학당 한국어교원은 국어기본법에서만 '교원'이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교원 대접은 받지 못한다.

어학당 한국어교원에게는 기간제법(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과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법이 적용된다. 교원과 노동자는 모순 관계가 아니다. 교원은 노동자가 아니고, 노동자는 교원이 아니라는 말은 틀렸다. 교원은 가르치고 학생은 배운다. 노동자는 시킨 일을 하고 돈을 받고, 사용자는 일을 시키고 돈을 준다. 자영업자는 자기가 알아서 일한다. 어학당에서 외국인 어학연수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한국어교원은 교육 노동자이다.

노동조합 아래 따로 또 같이

2019년 여름 어느 저녁이었다. 경희대, 서울대, 연세대 선생님 몇이 홍대 앞에서 만났다. 서로 처음 봤지만 모두 어학당 한국어교원이었다. 경험이 비슷해 두말이 필요 없었다. 이내 의기투합했다. 두 달을 준비해 2019년 9월에 토론회를 열었다. '대학 한국어강사 제도의 문제점과 향후 대응 방향'이 주제였다. 불광동 대학노조 2층 대회의실이 참석자로 빼곡했다. 이어 10월 9일 한글날,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어교원의 사회적 지위 보장을 촉구했다. 이후에도 한글날이면 기자회견을 했다. 2020년에는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2021년에는 정동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했다. 이번 한글날에는 이 릴레이 기고를 기획했다.

학교와도 싸웠다. 강원대 선생님들은 부당해고로 학교와 법정에서 다퉜다. 지노위, 중노위, 행정 1심, 2심을 모두 이겼다. 학교는 상고했지만, 대법원이 2021년 12월에 심리불속행으로 종결지었다. 당연하게도 해고는 부당했다. 경희대 선생님들은 계약서가 없었다. 최소 시수, 강사료, 무기계약, 4대 보험, 퇴직금 등을 놓고 학교와 싸웠다. 2021년 12월, 새 계약서에 서명했다. 서울대는 139일간 피켓을 들어 2020년 3월에 시간강사 전원을 무기직으로 전환했다. 연세대 어학당은 2019년 6월에 지부를 세웠다. 2021년 5월부터 반년 동안 선전전을 펼쳤고, 마침내 임금협약과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최초였다.

이제 네 개 대학 한국어교원은 모두 기간의 정함 없이 일한다. 이 성과를 얻기까지 조합원들은 노동위원회와 법원을 다니면서 마음 졸였고, (비)조합원들, 지부, 본조 사이를 오가며 애면글면했다. 추위와 더위, 눈비와 바람, 코로나19에도 굽힘 없이 선전전·기자회견을 열고 집회에 나왔다.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을 유지·개선"하느라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서로 응원해 가며 결국 해냈다. 앞장선 선생님, 뒤에서 지지해 준 선생님 모두 공이 크지만, 바탕은 어디까지나 노동조합이었다.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광화문에 모였고, 학교와 싸웠다. 노동조합이 없었다면 시작도 성과도 없었다.

뭉치면 바뀝니다

2021년 10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교육부는 '대학의 유학생 대상 한국어 강사 현황' 자료를 윤용덕 의원실에 제출

했다. 2021년 6월 1일 기준으로 전국 172개 대학 어학당에서 한국어교원 3,013명이 일한다. 14시간 이하로만 수업을 맡기는 어학당이 112곳(65%)이다. 시간당 강의료 최고는 75,000원, 최저는 12,000원이다. 연봉 최고는 6,579만 원, 최저는 1,684만 원이다(연봉 204만 원을 보고한 곳도 있으나, 착오로 이상 수치로 간주했다). 근로조건도 조건이지만 전체 교원 수 3,013명에 눈길이 갔다. 현재 노동조합에 가입한 선생님이 300명을 넘지 않는다. 가입률이 10%에 못 미친다.

비정규직 한국어교원도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가입할 수 있다. 10주 또는 3개월 단위로 계약해 주당 14시간 이하로 강의하면 근로기준법 일부는 적용을 못 받기도 한다. 근로제공관계의 계속성,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적용받는다.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조법은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라고 정의한다. 배달 라이더, 골프장 캐디 등도 노조법을 적용받는다. 덕분에 라이더유니온이 가능했다. 라이더유니온은 홈페이지 대문에 이렇게 썼다. "뭉치면 바뀝니다."

▲작년(2021년) 한글날을 맞아 전국대학노동조합 소속 한국어교원이 기자회견을 했다 ⓒ이창용

한국어교원의 사용자는

한국어교원, 한국어교육과 관련한 일은 정부가 주도한다. 한국어교원 자격증은 국립국어원(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이 관리한다. 같은 문체부 산하의 세종학당재단은 해외 세종학당에 한국어교원을 파견해 한국어를 보급한다. 2021년 기준으로 82개국에서 234개소가 운영 중이다. 국립국제교육원(교육부 산하)은 재외동포·외국인의 한국어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인 한국어능력시험(TOPIK, Test of Proficiency in Korean)을 주관하며 태국 등 해외 현지 중등학교에 한국어교원을 파견하는 사업도 한다. 한편 한국국제협력단(KOICA, 외교부 산하)은 해외봉사단 파견사업으로 개발도상국에 한국어교원 봉사단원을 보낸다.

2021년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196만여 명이다. 배경이 다양한 재한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우는데 초·중·고등학교, 사회통합프로그램,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등 장소가 다양하다.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중도입국자녀, 다문화가정 자녀 등 이주 배경 청소년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시도교육청). 사회통합프로그램은 국적·영주 등 체류 자격을 취득하려는 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친다(법무부).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가족의 안정적인 정착과 가족생활을 지원하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도 한국어 수업은 필수이다(여성가족부). 2021년 외국인노동자가 38만여 명이다. 이들을 위해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서 한국어교실을 연다(고용노동부). 한국어교원은 지방자치단체, 정부 부처 등과 (간접적으로) 계약하는데, 근로조건이 한결같다. 비정규직, 초단시간근로자에 강의료가 낮다.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현실이 이렇다. 한국어교원 자격증을 받으면 어학당이나 각종 기관 등 일할 곳을 찾는다. 간신히 첫 일터를 찾았어도 이내 또 구직 활동을 해야 한다. 10주, 3개월, 6개월 등 계약 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1년에도 몇 차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쓴다. 5년, 10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어디서나 한국어교원은 낮은 강의료를 받는 비정규직, 초단시간근로자이다. 사용자는 분명하다. 정부와 대학이다. 한국어교원을 가장 많이 고용한 사용자는 정부이고, 한국어교육을 대표하는 어학당은 대학 부속기관이다.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한국어교원이 한데 모여 정부 부처와 어학당 대표자들과 단체교섭하는 장면을 그려 본다. 허생은 책을 덮고 저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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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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