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이 촉발한 '반지성주의' 논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한국정치사상학회, '민주주의의 위기, 반지성주의와 포퓰리즘의 지정사적 연원' 학술회의

"정치는 이른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 일부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민주주의의 위기' 원인으로 '반지성주의'를 지목했다. 윤 대통령의 '반지성주의' 발언은 정치권을 뜨겁게 달궜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반지성적이고 비생산적 논쟁과 대립의 고리"를 끊어내고 "근거 없는 발목잡기"를 멈추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민주당은 "윤 대통령에 가장 결핍한 언어가 '반지성'"이라며 "윤 대통령이 반지성주의로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트린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후 5개월, 학계에서는 이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국정치사상학회는 지난 15일 숙명여자대학교 진리관에서 '민주주의의 위기, 반지성주의와 포퓰리즘의 지정사적 연원'을 주제로 한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숙명인문학연구소의 공동주최로 열렸다.

학술회의는 장형근 용인대 교수(14·15대 한국정치사상학회 회장)의 사회로, 1부와 2부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손민석 조선대 부설연구소 사회과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의 ''반지성주의'의 다양한 얼굴들' 발표 후 이승훈 숙명여대 교수의 토론이 진행됐으며, 2부에서는 홍철기 서강대 글로컬사회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의 '매카시즘 비판과 직업으로서의 지식인 옹호: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반지성주의> 저술 맥락과 의도' 발표 후 박진곤 성신여대 교수가 토론에 참여했다.

▲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10일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정치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멸칭'이 된 반지성주의를 비판한다

홍철기 연구원은 1950년대 미국의 정치·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반지성주의의 맥락과 의도를 살폈다.

홍 연구원은 "이 연구는 반지성주의가 아닌 반-반지성주의(anti-anti-intellectualism), 즉 반지성주의 비판론에 대한 것"이라면서 "반지성주의가 포퓰리즘과 유사하게 본질적으로 반대자에게만 붙일 수 있는 적대적이고 경멸적 명칭이기 때문"에 "오남용될 위험이 크다"고 우려했다.

그는 "반지성주의라는 말은 반지성주의에 대한 반대 측에 의해서만 사용"되고 있지만, "상대방을 반지성주의자로 지목하는 주체가 반지성주의에 대한 반대를 통해서 다른 반대나 비판과는 구별되는 어떤 적극적인 가치를 표명하는지 분명치 않다"고 했다. "반지성주의를 비판하는 사람을 곧바로 주지주의자 혹은 지성주의자(intellectualist)라고 불러야 할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홍 연구원은 이러한 상황은 "반-포퓰리즘 담론이 처해있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대다수 사람들은 스스로를 포퓰리스트라고 부르지 않"으며 "포퓰리즘의 반대자들만이 대체로 포퓰리스트라는 말을 사용하고, 자신의 반대자들에게 이 명칭을 부여한다"는 것.

그러나 "정치와 언론에서의 포퓰리즘 및 반지성주의 개념이 사용되는 방식은 이러한 반-포퓰리즘과 반-반지성주의의 적대주의적 경향을 격화시키고 있으며, 이 말들을 학술적으로 사용할 때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관련해 홍 연구원은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가 <정치정보연구> 제22권 1호에 게재한 "왜 대중은 반지성주의에 매료되는가?"를 인용했다.

"강준만은 호프스태터가 "반지성주의의 엄격한 정의를 내리지" 않았고, "반지성주의 적용 범위를 처음에 내세운 '지식인에 대한 경멸과 증오'를 넘어서 기존 체제에 대한 순응주의로까지 확장시킴으로써 반지성주의 개념의 혼란을 가중시켰다고 본다. 그는 "'우파 반지성주의'에만 몰두"하였는데, 이는 역사적 한계의 산물로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반지성주의 개념을 시공을 초월해 사용하고자 한다면 [우파 비판의] 이념성의 문제는 걷어내는 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한다.(강준만 2019, 32-33)"

홍 연구원은 호프스태터의 '반지성주의' 초안이 된 1953년 강연문을 예로 들어, 반지성주의 개념은 "독자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포퓰리즘 개념의 인접 개념으로 봐야한다"고 밝혔다.

그는 "멸칭으로서의 포퓰리즘 개념의 등장과 호프스태터의 반지성주의 논의가 시작되는 데에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바로 전후 미국에서의 기존 뉴딜 민주당과 온건 자유주의 정치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특히 이 반작용의 주된 흐름은 우파로부터 기인"했다며 1950년대 매카시즘 광풍 속에 아이젠하워의 대통령 당선과 공화당 집권으로 "전문가와 지식인은 뉴딜 자유주의의 대변자로서 주된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고 했다.

이에 홍 연구원은 "호프스태터의 논의가 당연히 지금의 관점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엘리트주의와 보수주의적 시각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식인과 반지성주의의 문제를 구체적인 제도와 조건('고등교육'이 처한 상황)과 연관시켜서 사고하고 다루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한 "호프스태터의 반지성주의 개념이 정말로 우파 급진주의만을 겨냥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며, "좌파와 우파 모두의 반지성주의 비판이 과연 호프스태터의 논의로부터의 이론적·학술적 진전인가 여부를 판단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쟁점"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호프스태터의 진단과 처방은 모두 당연하게도 현대의 관점에서는 시대착오적인 것일 수밖에 없"지만 "그가 제시한 지식인의 직업적·정치적 소명에 관한 구체적 논의는 그의 반지성주의 비판이 최소한 반-반지성주의에만 만족한 것은 아니라는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홍 연구원은 결론을 대신해 "오늘날의 반-반지성주의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며 "반지성주의 비판은 과연 무엇을 옹호하는가? 혹은 무엇을 보호하고 보존하려 하는가? 반-반 지성주의가 본질적으로 보수주의적인 성격을 갖는다면, 그 '보수'의 대상은 무엇인가?"라고 되물었다.

문해력 논란·게임적 세계관 속 반지성주의

손민석 연구교수는 인터넷 등으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목격되는 새로운 현상 등을 싸잡아 '반지성주의' 담론으로 설명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반지성주의 담론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까닭은 서로 다른 층위에서 작용되는, 모호하고 양면적인 개념들이 중첩된 상태를 '(반)지성' 담론으로 통칭되기 때문"이라면서 "반지성주의 담론이 표출되는 개별적인 정치적·역사적 맥락이 다른 만큼,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는 반지성주의를 정밀하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발화자의 의도와 효과, 폭넓은 의미에서의 정치논쟁 맥락 등을 추적"해야 한다고 밝혔다.

손 연구교수는 이를테면 '심심한' 사과문이 부른 문해력(Literacy) 논란을 '반지성주의 사회'의 도래로 보는 시각에 대해 "특정 세대의 문제로 환원하기보다 언어교체와 같은 시대변화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인터넷 등장으로 생긴 변화는 일반인들의 비격식 글쓰기가 이전보다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언어는 '네트워크'로 기능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기존의 문법과 사회적 대본을 위반하면서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는 흐름을 서둘러 전통적인 '반지성' 담론으로 결론을 내리기보다 새로운 관습을 만들어가는 이들은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 가는데 있어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선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손 연구교수는 또 게임화(Gamification)된 세계, 게임적 세계관의 출현으로 "커뮤니케이션의 장 자체가 달리지고 있다"면서 "과거처럼 신문을 읽는 세대와 구독서비스를 읽는 세대는 지식체계가 다른 방식으로 구성된다"고 했다. 특히 "포스트트루스(Post-Truth) 시대에서 지식의 권위는 부차적이 된다"며 2차 창작이나 밈(meme)과 같은 자의적 재편집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에 "고전적인 방식으로 격식을 갖춘 지성의 삶의 의미를 되묻게 되는 상황"이라며 "반지성주의라고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기존의 반지성주의 담론은 논의를 출발하는 하나의 참조점일 뿐 앞으로 더 심도 있게 탐구되어야 할 복합적인 주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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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

프레시안 이명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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