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자신의 허파에 총을 쐈고, 지금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해외 시각] 제 발등을 찍은 서방의 대러시아 경제제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미국 주도의 서방 세계는 대러시아 제재에 나섰다. 경고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기적 특성이 강화되고 있는 글로벌 경제 사슬의 특성상, 북한도 아니고, 러시아와 같은 대국에 대한 경제 제재는 서방 세계의 피해까지 수반할 것이라는 경고였다. 코로나 엔데믹 과정과 겹치면서, 그 경고는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미국 증시의 굵직한 종목들은 계속 52주 신저가를 갈아치우고 있고, 가스 공급망 불안으로 유럽의 올 겨울은 유달리 추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가는 불안정해져 가고 바이든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굴욕'을 감내해야 했으며, 유럽 물가를 비롯해 세계 물가는 치솟고 있다.  다음은 중동 문제 전문 저널리스트 패트릭 콕번이 진보 매체인 <카운터펀치> 10월 10일자로 기고한 글 '서방 경제제재의 역풍(How the West's Sanctions on Russia Boomeranged)' 의 주요 내용이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서로 다른 두 가지 전쟁이 시작됐다. 하나는 군사전쟁으로, 러시아 군은 전쟁 초기부터 최근 우크라이나의 성공적 반격에 이르기까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반면 서방이 러시아에 대해 단행한 경제전쟁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 영국, 유럽연합과 그 우방국들은 러시아를 약화시키는 한편 우크라이나 침공을 단념시키기 위해 주로 석유와 가스 수출 금지 등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경제제재를 단행했다.

이 두 번째 (경제) 전쟁은, 군사전투와는 반대로,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러시아를 포함한 OPEC+가 유가 인상을 목표로 하루 2백만 배럴의 원유 감산을 결정하면서 서방은 심각한 경제적 곤경에 처해 있다. 특히 이번 감산 결정은 미국의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강력한 반대 로비에도 불구하고 이뤄졌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끄는 민주당 행정부는 오는 11월 8일의 중간 선거를 앞두고, 서민들의 생활고를 가중시킬 유가 인상을 막기 위해 필사적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만 것이다. 이 때문에 백악관 대변인 카린 장-피에르는 OPEC+가 "러시아와 결탁한 것이 분명하다"며 분노에 찬 성명을 내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연합뉴스

석유 금수조치의 당혹스러운 결과

석유 가격의 인상 저지에 골몰했던 미국 민주당은 러시아 석유 금수 조치와 관련해, 미국이나 나토 동맹국 국민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꼼수를 부렸다. 중국과 인도 등에 대한 러시아 석유의 수출을 묵인한 것이다. 서방 수출이 막힌 러시아 석유의 약 3분의 2가 중국, 인도 등에 팔린 것이다. 지난 6월 배럴당 123달러까지 치솟았던 원유 가격이 이달 초 93.5달러로 24퍼센트나 하락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OPEC+의 감산 결정으로 원유 가격은 크리스마스 이전에 100달러까지 오를 전망이다. 이처럼 지난 여름 석유 가격이 하락한 것은 러시아가 중국, 인도 등에 자국 석유를 판매함으로써 서방의 경제 제재를 무력화 시킨 때문이라는 명백한 인과 관계를 신임 영국 총리 리즈 트러스는 간과했던 것 같다.

지난 9월 하순 뉴욕 유엔 총회에서 트러스 총리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국제 에너지 가격을 낮추는 동시에 러시아 석유의 완전 수출 금지를 추진해 달라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요구를 했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트러스의 이 모순된 요구에 크게 놀랐다고 한다. 러시아산 석유를 국제 에너지시장에서 완전히 몰아낸다면 국제 석유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만남 후 바이든은 측근들에게 영국의 신임 총리가 "정말로 멍청하다"면서 그녀의 요구에 신경 쓰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내 아우이자 <하퍼스> 잡지의 워싱턴 편집 책임자인 앤드루 콕번의 전언이다.

영국, 정전 사태에 직면

트러스뿐만 아니라 상당수 유럽 지도자들이 러시아경제의 완전히 고립이 자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경제제재는 러시아 소비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실제 피해를 입는 계층은 주로 서방 제품을 구매하고 해외에서 휴가를 즐기는 러시아 대도시의 전문가 계층에 국한된다. 그러나 경제제재의 목적이 전쟁 수행을 위한 러시아의 재정 수입을 차단하는 것이라면 이는 완전히 실패했다.

로이터 통신이 러시아 정부 문서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올해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 수입은 3,38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작년(2,440억 달러)에 비해 1천억 달러 가까이, 또는 3분의 1 이상 늘어난 수치다. OPEC+의 감산 결정 이후 아마도 이 수치는 더 늘어날 것이다. 당초 올해 GDP가 12%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던 러시아 경제 부처는 최근 감소 규모를 4.5%로 수정했다.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적어도 경제 사정은 그 이유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경제제재에 의한 푸틴 정권의 피해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작았던 반면, 유럽 국가들과 미국의(유럽보다는 덜하다) 경제적 피해는 훨씬 큰 것으로 드러났다. 모든 국가의 국민들이 물가 상승에 의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 제조업은 휘청거리고 있다. 특히 금속, 비료, 제지, 유리 등 가스와 전력 등 많은 에너지 투입이 필요한 업종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이미 영국에서는 이번 주 정전 사태의 위험이 예고됐다.

이러한 경제사회적 혼란에 대해 서방 정부들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아직까지 서방 국민들은 이러한 정부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군사적 실패와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성공은 경제제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트러스 총리를 비롯한 영국 내각은 세계적인 물가 인상과 생활고가 "푸틴의 불법적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세계가 겪고 있는 경제적 혼란의 원인은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러시아에 대한 경제전쟁을 서방이 무분별하게 밀어붙였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편이 보다 진실에 가깝다.

유럽 역사상 최대의 오판

경제제재가 세계 수 억 명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침에도 불구하고, 서방의 정부와 국민들은 푸틴 및 러시아에 대한 분노에 사무친 나머지 경제제재의 영향 등과 관련해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논의조차 없이 제재를 단행했다. 제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푸틴의 대리인이라는 노골적 비난까지는 아니더라도 푸틴 반대에 열성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비판받고 무시됐다.

헝가리 총리 빅토르 오르반은 지난 여름 (서방의 러시아 제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초 나는 유럽이 제 발등을 찍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보니 유럽 경제는 자기 허파에 총을 쏜 것이었고, 지금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러나 오르반은 푸틴에 동조하는 우익 포퓰리스트이자 민족주의자라는 점에서 이러한 그의 의견은 간단히 무시할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 경제제재는 그 효과가 의심스러운 정책이다. 이란, 이라크와 시리아처럼 러시아보다 훨씬 작은 나라에 대한 제재도 정권 교체는커녕 이들 나라의 정책 변경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사실 지금까지 러시아와 같이 풍부한 석유 및 가스 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식량도 자급하고 있는 강대국에 대해 경제제재를 시도한 적은 없다. 물론 서방 정부와 국민 여론은 본격적인 군사전쟁보다는 경제제재가 보다 인도적이고 위험 부담이 덜하다는 점에서 제재를 선호했지만, 제재가 당초 목표를 달성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을 간과했다.

경제제재가 본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데 대한 정부의 공식 해명은 언제나 제제가 보다 완벽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식의 해명은 현재 러시아에 대해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러시아 원유를 수송하는 유조선에 대한 보험을 박탈해 제재를 강화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 국제 원유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미국이 선호하는 또 다른 방안은 러시아산 원유에 대해 가격상한제를 도입해 러시아의 석유 수출은 용인하되 수출에 따른 이윤을 줄이자는 것이다. 이러한 방안의 치명적 약점은 러시아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마도 러시아는 가격상한제를 찬성하는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석유를 공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할 것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써 유럽 역사상 최대 오판을 감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푸틴의 오판을 응징하기 위한 방안으로 경제전쟁을 감행한 유럽 지도자들 역시 푸틴 못지않게 어리석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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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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