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 중 벌어진 '비속어' 논란이 여야 대치를 극단적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여권이 갈등을 새 전선으로 전이시킴으로써 국면을 바꾸고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는 전형적 전략이다.
여권은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이 왜곡 보도 탓이라며 MBC와의 대치 구도로 프레임을 바꾸고 급기야 '좌파언론의 과거 광우병 보도'를 소환하면서 갈등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이는 윤 대통령이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 "진상을 밝혀야"한다고 한 발언 이후 벌어진 일이다. 여권은 비속어 논란을 '가짜뉴스'와 '허위 보도' 프레임으로 돌파하려는 것 같다. 가뜩이나 눈에 가시였던 방송사에 대한 압박으로 언론을 길들이겠다는 의도도 읽힌다.
비속언 논란의 프레임 전환으로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겠다는 전략으로 보이지만 이는 여권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일단 비속어 논란이 본질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반복함으로써 논란의 핵심을 언론사의 가짜뉴스로 돌려 대통령 실언을 가릴 수 있다고 믿는 태도 자체가 적절치 않다.
첫째, 여권이 정직하지 않다는 인식을 각인시킴으로서 향후 국정 운영의 신뢰 훼손과 동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정치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요체는 신뢰다. 논어 안연(顏淵) 편에 나오는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은 ‘정부에 대한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국가는 존립할 수 없다'는 의미다. 신뢰의 위기는 정권의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명백하게 들리는 말을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면 과연 국민이 이를 믿겠는가. 해프닝이자 가십으로 끝날 일을 이렇게 키우고도 전략적 대처라고 위안을 삼을 건가. 설령 '바이든'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해도 비속어는 여전히 남는 문제다. 이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나 사과 없이 이 상황이 가라앉을 수 있다고 보는 인식 자체가 납득되지 않는다.
둘째, 명백한 사실을 놔두고 동맹 훼손, 왜곡 보도로 전선을 치환하고 야당과의 대립을 격화시킨다면 윤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을 구현할 수가 없다. 가뜩이나 윤 정권의 특화된 정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임기 초 역대급의 저조한 지지율을 타파하려면 정책으로 정권의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정책은 다수를 점하는 야당과의 협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여야 모두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더라도 국정주도 세력인 여권이 더 큰 책임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셋째, 국민의힘에 '신핵관'으로 불리는 의원들의 처신이 조국 사태 때의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의 행태와 오버랩 된다. 결국 과도한 비호와 견강부회는 민심의 이반을 가져왔고 민주당 정권은 5년 만에 정권을 내줘야 했다. 초선 의원들이 정의감과 개혁 마인드를 가지고 당에 혁신의 새 기풍을 진작하지는 못할망정 스스로를 속이고 아첨만 일삼는다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총선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결국 공천의 유리한 입지를 점하려다가 자신의 몰락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우를 범하고 있다.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자를 동양에서는 소인이라 한다. 맹자는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고 하고, 인(仁)을 해치는 사람은 적(賊)이라고 하고, 은(殷)나라의 폭군 주왕을 잔적(殘賊)이라 일컬었다. 결국 주왕은 주(周)나라의 무왕에 의해 정벌됐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얘기이고 기원 전 일들이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다.
지금 여권은 총체적 난국이다. 이준석 전 대표와의 내홍, 해외 순방 논란, 낮은 지지율 등의 복합 위기를 돌파하기 위하여 정치공학적 프레임 전략으로 국면을 전환하려 하는 것은 하책(下策)에 불과하다.
위기를 돌파하려면 정공법을 선택해야 한다. 여권은 정공법을 국면전환의 갈등 치환책으로 오인하고 있다. 정공법이란 정직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사과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어찌 정치에 왕도가 있겠는가. 길은 먼 데 있지 않다. 민심은 권력의 의중과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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