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묵, 김치, 된장국, 김, 그리고 고추장. 수급 생활자의 밥상은 뭉근하게 반복되었고 대동소이했다. 김치와 김, 고추장이 중심을 잡았고, 종종 무말랭이와 멸치가 올랐다. 라면은 주식 같았으며, 고구마, 호떡 등 주전부리가 끼니를 대신하는 경우도 많았다. 다만 고기나 생선, 딸기와 같은 제철 과일은 밥상의 기록에서 찾기 어려웠다.
"딸기가 먹고 싶어요. 하지만 비싸서 먹을 수 없어요."
'2022년 수급자가계부조사' 차 필자가 찾아 뵌 수급자분은 약을 먹기 위해 끼니를 잇는다 하셨다. 당뇨, 고지혈증, 고혈압, 석회건염, 오십견 등 이곳저곳 아프신 곳이 많아 약을 거르면 건강의 위기로 직결된다. 약을 먹기 위해서 밥을 먹는 생활. 가끔 정말 먹고 싶은 과일이 있어도 먹을 수 없는 생활. 수급자의 밥상은 수급액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었다. 조곤조곤 기록된 수급자의 심경과 함께.
가난과 고물가 시대
25가구를 표본으로 한, '2022년 수급자가계부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거급여를 제외한 소득대비 식비 비율은 37.2%에 이른다. 그럼에도 고기나 과일을 단 한 번도 먹지 못한 가구는 절반에 이른다. 대신 저렴한 햄이나 김치 같은 반찬류, 즉석 냉동식품 등 기타식품 소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루 세끼 평균 8618원의 식사비를 감안하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지출이다. 의류비와 같은 자기돌봄을 위한 소비, 그리고 친구를 만나는 등 관계돌봄을 위한 소비는 언감생심이다.
올해 들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유통기한이 다 된 식료품을 찾아다니는 노고에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물가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대로 치솟은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민생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데, 민생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삶을 연명하는 수급 생활자들에게는 더욱 큰 위기로 다가선다. 국가가 서민과 가난한 사람을 더욱 강하게 책임져야 할 상황이다.
기준중위소득 현실화를 요구한다
매년 8월 1일까지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기준중위소득을 정한다. 76개 복지제도의 기준선이자 생계급여를 비롯한 수급액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윤석열 정부가 내건 '약자와의 동행'이 말뿐인 선언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첫 번째 시험대다.
하지만 차년도 기준중위소득을 논의하는 자리, 기획재정부는 윤석열 정부의 선언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지난 19일, 25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2023년도 기준중위소득 인상을 두고 원칙안(최종증가율 5.47%)과 감액안(최종증가율 4.19%)을 논의했다. 기획재정부는 감액안을 주장했다. 물가가 치솟으면서 국민의 실질적인 가처분 소득이 줄어 민생이 위태로운 상황임에도 어김없이 재정부담론을 꺼내들었다. 경기변동, 최저임금 인상률 등을 빗대 감액안을 주장하지만 몽니에 가깝다.
기준중위소득은 현실보다 한참 낮게 책정되어 있다. 기준중위소득 산정의 기반이자,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가구소득의 '현실' 값으로 합의한 통계치인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중위값에 기준중위소득은 한 참 뒤떨어진다. 2020년까지 기준중위소득을 책정하며 사용한 통계치인 '가계동향조사'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탓이다. 2021년부터 가계동향조사에서 가계금융복지조사로 기준중위소득 산정의 통계치를 전환하며 발생한 12% 상당의 격차까지 6년에 걸쳐 좁히는 중이다. 값을 환산하면 1인 가구 기준 약 60만 원 정도가 현실보다 뒤쳐져 있다. 수급 생활자는 비현실적인 기준중위소득의 30%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기획재정부는 평범한 국민의 소득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사회안전망을 운용하면서, 기준중위소득 현실화를 위한 인상률마저 깎으려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절박한 요구는 기준중위소득 인상이 아니라 '현실화'다.
윤석열 정부의 '부자와의 동행'
약자와 동행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기획재정부는 대규모 감세를 시행하며 모순의 정점을 찍었다. 기준중위소득 인상율의 원칙안과 감액안의 1.28%p 차이를 생계급여 예산으로 환산하면 1000억 원 정도인 데, 최근 경기변동을 감안하여 이마저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지난 21일 누적 60조 규모의 대규모 부자감세안을 발표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해 MB정부로 회귀했고, 종합부동산세 또한 대규모 삭감했다. 다주택자 중과세율을 폐지하여 최고세율을 6.0%에서 2.7%로 떨어뜨렸다. 소득세와 상속세, 증여세도 흔들었다. 노골적인 '부자와의 동행'이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으로 모자라 생명줄마저 옥죄고 있는데, 윤석열 정부의 기획재정부는 대기업과 투기로 자산을 불린 다주택 부자에게 파격적인 감세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다. 생계급여에서 증가되는 1천억의 예산마저 아끼자면서, 60조의 부자감세를 감행하는 것은 무슨 황당한 경우인가?
경제 불안정이 심화될수록 재정의 역할은 중요해진다. 적자를 보는 기업이나 가계는 법인세나 소득세를 깎아줘도 아무런 혜택이 없다. 감세는 경제의 불안정에는 크게 영향 받지 않지만 세부담 능력을 가진 부자들에 대한 특혜다. 코로나19와 인플레이션으로 위태로운 중소기업과 민생, 가난한 사람을 위한다면 국가 재정 근간을 흔드는 감세가 아니라 튼튼한 재정을 바탕으로 사회안전망을 강화했어야한다.
7월 29일, 이중잣대를 집어치워라
다가오는 7월 29일, 2023년도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을 결정하기 위한 회의가 열린다.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들이 원칙안을 채택했음에도 윤석열 정부 기획재정부는 감액안을 고집한다고 전해진다. 기획재정부는 경제불안정을 근거로든 이중잣대를 집어치워라.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면, 가난한 사람을 위한 기준중위소득 인상에는 몽니를 부리고, 부자감세는 강행하는 모순적 행보를 그만두어야한다. 한국 사회에서 수급 생활은 존엄을 상실한 연명을 의미한다. 끼니'만' 겨우 잇는 삶을 의미해왔다. 인플레이션의 시대에 이제 그 마저도 위태롭다. 윤석열 정부 기획재정부는 원칙대로 기준중위소득을 현실화하라! 부자와의 동행을 당장 멈추고, 약자와 동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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