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일만에 대우조선 문제 타결…정부는 없었고 '하청구조' 불씨는 남았다

정부 부재했던 상황도 문제…손배소 문제는 숙제로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노사가 22일 협상 타결에 이르렀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가 지난 5년간 삭감된 임금의 원상 회복과 노조 인정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한 지 51일 만이다. 조선업계의 다단계 하청구조가 유지되는 한 이번 협상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는 이날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열린 협상 이후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여러분 미안합니다'라고 시작한 투쟁을 '국민여러분 고맙습니다'라고 마침표를 찍을 수 있어 다행"이라며 하청 노사 협상의 타결 소식을 알렸다. 

하청 노사의 마라톤 회의 끝에 이날 오후 나온 잠정 합의안을 갖고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거통고 하청지회)는 곧바로 총회를 열어 합의안 수용 여부를 확인했다. 총회 표결 결과 총 118명 중 109표의 찬성과 9표의 반대로 협상안이 최종 가결됐다.

이번 노사 협상은 사측이 제시한 임금 4.5% 인상을 하청지회 노조가 전격 수용하면서 노사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폐업 사업장에 근무했던 조합원 고용 안정 부분은 일부 합의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교섭 핵심 쟁점이었던 '민·형사상 면책'은 추후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30일째 0.3평 공간에서 옥쇄농성 중인 유최안 부지회장도 철장을 나와 인근 병원으로 이송될 예정이다. 유 부지회장은 "국민여러분 죄송합니다"라며 "이대로 살수 없어 이 상황을 바꾸고 싶다"고 소회를 밝혔다. (관련기사 : [단독] 철장농성자 유최안 대국민 편지 "죄송하다... 이 상황 바꾸고 싶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22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협력사 대표들과 하청노조 조합원들이 악수하고 있다. 왼쪽 세 번째부터 권수오 녹산기업 대표, 홍지욱 금속노조 부위원장,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 ⓒ연합뉴스

해결 대신 '불법' 규정했던 윤석열 정부… 미봉책 우려도, 근본문제는 '다단계 하청구조'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사 협상은 하청업체 노동자가 가로,세로 1m인 쇠창살에 자신의 몸을 가두고 용접을 하는 등 '끝장 투쟁'에 나선 지난달 22일부터 한 달여만에 합의에 이르렀다. 6명의 하청 노동자도 같은 사업장에서 20미터 높이의 고공농성에 들어갔고 3명의 하청 노동자는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인 국책은행 산업은행 앞에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관련기사 : 1㎡ 쇠창살에 몸 가둔 노동자..."이대로 살 수 없지 않나")

다단계 하청구조로 이루어진 조선업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오랫동안 저임금과 고용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특히 2016년 조선업계의 구조조정 당시 원청과의 고통분담을 위해 임금을 삭감했으나, 올해 조선업이 호황을 맞이해도 삭감분이 회복되지 않았다고 하청 노동자들은 주장했다. 

이번 파업이 협상으로 일단락돼, 공권력 투입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적잖은 숙제도 남겼다. 일단 사측이 노동자를 압박하는 전형적인 수단인 손배소 문제가 이번에도 다음 과제로 남아 지속적인 마찰음을 낳게 됐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정부의 역할이 부재하다는 지적도 터져나왔다. 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시대전환 국회의원 64명은 지난 15일 "무조건 버티고 앉아 있는 대우조선해양도 문제지만 무책임하게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정부와 산업은행의 문제가 더 크다"고 지적했고, 학계·노동법률가단체들과 인권·시민사회단체들도 "대우조선해양, 산업은행, 정부는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폭력과 압박을 멈추고 평화적 해결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오히려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며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9일 "기다릴 만큼 기다리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며 사실상의 공권력 투입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제2의 용산참사와 같은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적 관심이 모이자 지난 15일 노사 양측은 교섭을 시작했다. 최근 몇일 사이 정회와 속행을 거듭하면서 협상이 타결이 될 듯 말 듯한 기미를 보여왔다. 지난 20일 임금인상 30%를 요구해왔던 하청업체 노조가 사측이 고수해온 4.5% 인상을 전격 수용하며 협상이 타결될 전망이 흘러나왔으나, 손해배상 이슈가 쟁점으로 떠오르며 막판 협상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노조는 대우조선해양 원청 정규직 노조의 금속노조 탈퇴총회로 인해 사측이 시간을 끌었다고 지적했다. 당초 사측이 손배소 문제는 거론하지 않기로 구두로 합의했으나, 사측이 손해배상 이슈에 대해 말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원청인 대우조선해양 정규직 노조의 금속노조 탈퇴 총회가 그 배경으로 지목됐다. 노조 측은 "노사가 합의를 하면 원청 정규직 노조가 금속노조를 탈퇴할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대우조선해양 원청 정규직 노조의 탈퇴 총회가 끝난 뒤에야 하청업체 노사는 합의를 이뤘다.

이날 노사 합의가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 배경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지금 (대우조선해양 파업 사태가) 뜨거운 감자처럼 되어있는 상황이라 원청과 정부, 산업은행도 일단 사태를 봉합하는 마무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발단은 원·하청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원·하청 구조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하청 노동자들이 '더이상 이대로 못살겠다'면서 극한 투쟁을 했지만 하청 구조까지는 이번 교섭을 통해 바꿀 수 없었다"며 "이것은 교섭 사안이 아니라 산업 정책의 문제"라고 했다. 이어 "이 문제는 산업의 경쟁력을 제한하는 고질적인 문제지만, 현 정부는 산업 경쟁력과 경제적 논리가 우선으로 하다 보니 당장의 구조적 문제를 손 댈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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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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