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받는 9급'은 서울서 못 산다는 걸 아는 권성동 의원에게

[기자의 눈] "최저임금 받고 서울에서 어떻게 사나"

윤석열 대통령의 '지인 아들 우모 씨 사적 채용' 논란에 대해 "내가 추천했다"고 밝힌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대행 겸 원내대표가, 채용 과정을 해명하며 15일 기자들과 국회에서 만나 "(우 씨의 역량이) 충분하다"며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한 10만원 더 받는다"면서 "내가 미안하더라. 최저임금 받고 서울에서 어떻게 사나, 강릉 촌놈이"라고 해명했다. 

여기에서 권 원내대표가 말한 이것은 진실에 가깝다. "최저임금 받고 서울에서 어떻게 사나"

사용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4월 17일 최저임금의 인상에 반대하며 내놓은 통계청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21년 노동시장에서 법정 최저임금 시급 8720원을 받지 못하는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 수는 321만5000명이었다고 한다. 물론 통계는 정치적이고 이 수치가 부풀려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에 줄기차게 반대해 온 국민의힘과 경총 측의 자료를 일단 그대로 인용한다 쳐도 대한민국 국민 중 321만5000명은 "서울에서 어떻게 사나" 걱정이 들 수밖에 없다. 이 숫자 중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는 노동자들도 많을터인데 권 원내대표의 표현에 따르면 그들은 서울에서 살 수가 없다.

경총이 2021년에 낸 자료에 따르면 혼자 사는 비혼 노동자 생계비 중위값은 184만7156원이다. 이 통계에서 최고생계비와 최저생계비, 즉 상하위 양극단 5%를 제외하면 최소 생계비는 약 202만 원이라고 한다. 내년 최저임금으로 결정된 9620원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201만580원이다. 부족하다.  

특히 '서울살이'를 전제하면 더 빠듯해 진다. 지난해 12월에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가 세계 생활비지수를 분석한 데 따르면 서울의 물가 수준은 세계 주요 도시 가운데 12위를 기록했다. 일본 도쿄가 13위였다. 이는 주거비용 등이 포함돼 있지 않은 소비자 물가 수준인데, 또다른 통계를 인용하면 생필품 가격, 임대료, 공과금, 대중교통 요금 및 현지 화폐 가치 등을 분석한 ECA 인터내셔널의 자료에서 '2022년 서울'은 생활비가 가장 비싼 도시 10위를 기록했다. 

권 원내대표가 '미안해'하는 '강릉 촌놈'이 아니라 '전국의 촌놈'들도 도대체 서울에서는 살 수가 없다. 

▲국민의힘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에 대한 법적 고찰 및 재발 방지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 원내대표의 이 발언이 튀는 이유가 있다. 그는 지난달 15일 열린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 당·정 협의회에서 "문재인 정권은 5년 만에 국민 심판을 받았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준비되지 않은 주52시간제, 이념 논리에 빠진 각종 경제정책과 각종 규제로 민간 활력이 저하됐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을 실정으로 규정한 그가, 최저임금으론 '서울 살이가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건 이번에 밝혀진 것으로 치자.

지난 5월에도 권 원내대표는 윤석열 정부 초대 국무조정실장으로 내정된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에 대해 인선 반대 의사를 윤 대통령에게 전달하며 "윤 행장이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내며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 등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경제정책을 주도했기 때문에 부적절한 인사"라고 주장했다.(<동아일보> 5월 26일자)

2015년 7월 9일 권 원내대표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외국인 근로자의 후생복리가 지나치게 좋아지는 것 아닌가"라며 "선진국들도 가보면 싼 맛에 외국인 근로자를 쓴다. 최저임금 대상에서 제외하는 나라도 많다"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최저임금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 놓았다.(<아시아경제> 2015년 7월 11일자) 16명을 살해하고 한국군에 검거된 북한 어민들에 대한 '인권 감수성'과 '인류애'는 한국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겐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최저임금 인상을 비판하던 그가 갑자기 "최저임금 받고 서울에서 어떻게 사나"라고 지인의 아들의 '9급 공무원 봉급'을 걱정하는 것은 어딘가 매우 어색해 보인다. 9급 행정요원의 봉급이 적은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인가. 아니면 '지인의 아들'인데 봉급을 적게 주는 자리를 추천해 자책하는 걸까. 이런 어색한 상황이 벌어지니 '사적 채용 논란'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된다.

권 원내대표의 '내가 미안하더라'는 발언의 배경에는 이런 발언들도 있다. "(지인 아들 채용을 추천하고) 나중에 장제원 의원한테 물어봤더니 대통령실에 안 넣었다 그래서 좀 뭐라고 그랬는데 (9급으로 채용된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며 "그래도 7급에 넣어줄 줄 알았더니 9급에 넣었더라"고 했다. 가만히 있던 전국의 9급 공무원과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은 '위로'를 받아야 할 존재가 됐다. 아닌가. '지인의 아들'이 9급에 채용된 것만 미안한 것인가.

여당 대표의 '메시지 실수' 같은 '정치 스킬'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것이 한가롭게 느껴질 정도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과 여당의 지지율 하락의 원인을 이런 발언들과 연관시키는 분석도 부질없단 생각이다. 다만 권 원내대표의 발언이 대한민국 사회의 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 당혹스러울 뿐이다. 집권 여당의 대표가 최저임금에 대해 생각하는 수준이 이 정도다. 이런게 '내로남불'이 아닌가. 이런게 윤석열 정부가 주장하는 '공정과 상식'인가?

대한민국 헌법 제32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최저임금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며 "적정 임금의 보장에 노력"해야 할 책임은 헌법이 부여한 정부와 여당의 의무다. "적정 임금" 수준을 교묘하게 왜곡하고 전 정권 실정을 부각하는데 이용하지 말고, 기왕 최저임금에 '미안해'하는 김에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자.

권성동 원내대표가 지인 아들 대통령실 채용 논란을 계기로 '최저임금으로 서울 살이가 힘든' 수많은 청년 노동자들의 심경을 이해하고, 그에 걸맞는 정책을 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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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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