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화되는 한반도 정세, 누구에게도 평화를 빼앗길 수 없다

[현안진단] 김정은, 전원회의 자꾸 개최하는 이유는

잦아진 북한의 당중앙위 전원회의

북한은 2022년 6월 8일부터 10일까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5차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개최했다. 지난해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 기간 중 개최된 제1차 전원회의를 포함해 1년 6개월 만에 무려 다섯 차례의 전원회의가 열린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11년 간 총 12회의 전원회의가 개최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경우 매우 이례적인 일로 볼 수 있다.

김정은 체제는 비정상적인 선군정치를 종식시키고 당과 내각의 기능을 정상화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김정일 시대에 약화된 노동당 당대회,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 등 주요 회의를 개최해 정책을 결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례적으로 잦은 전원회의는 북한이 당면한 복합적 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21년 1월 1차 전원회의 이후 북한은 한 달 만에 제2차 전원회의를 전격 개최했다. 당시 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 수행을 위해 각 부문이 제출한 목표가 터무니없이 과장되거나 소극적이라고 질타했다. 조용원 당비서는 연단에 올라 김 위원장 면전임에도 불구하고 각 부문 담당자들을 호명하며 질타하는 모습을 보였다.

2021년 6월 개최된 제3차 전원회의에서는 주요 국가정책 과업들을 철저히 집행하기 위한 '추가적인 대책적 문제들을 반영한 결정서', '알곡생산계획을 무조건 완수할데 대한 결정서'가 채택되었으며, 김 위원장은 "인민생활안정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하려는 충심으로" 특별명령서에 서명하고 발령했다.

당시 쌀과 옥수수 등 식량가격이 폭등한 상황이었으며, 특별명령서는 인민군 전략비축미 공급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북한의 식량가격은 높은 수준을 이어갔다.

2022년 1월 신년사를 생략하고 개최된 제4차 전원회의에는 2021년을 '위대한 승리의 해'로 평가하고, 농업과 건설부문의 성과를 내세웠다. 그러나 전원회의는 결론에서 다시 의식주 문제와 농촌문제 해결을 주요과제로 제시해 인민생활의 기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직접 농촌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협동농장들이 국가에 진 채무를 '모두 면제할데 대한 특혜조치'를 선포했다. 김 위원장은 2022년에 "무겁고도 책임적인 고민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어려운 현실을 진단했다.

이번 제8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도 북한 경제의 어려운 현실이 드러났다. 북한의 매체는 이례적으로 김덕훈 총리를 가장 먼저 호명함으로써 경제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겠다는 의도를 내보였다. 김덕훈 총리는 경제를 총괄하는 내각을 대표하는 인물이지만, 그동안 전원회의에서 최룡해나 조용원을 먼저 호명해왔다. 김 위원장은 결론에서 경제부문과 관련해 농사와 소비품 생산을 급선무로 제시해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있음을 자인했다.

특별히 별도 의제로 논의된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김 위원장은 봉쇄 위주에서 "봉쇄와 박멸 투쟁을 병행하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현 상황을 "유례 없는 국난"이라고 진단했으며, "기적을 안아 와야 한다"고 언급하고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현실에서 '인민들의 자각적 일치성'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이번 전원회의 인사에서 통제와 감시의 핵심기구인 국가보위성 출신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는 점도 최근 북한 내부의 사회적 이완에 대한 대응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 북한이 지난 12일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회의를 열었다고 조선중앙TV가 13일 보도했다. 회의에는 당 중앙위원회 비서인 조용원, 박정천, 리병철, 리일환, 김재룡, 전현철, 박태성이 참석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전원회의로 본 북한의 대남, 대미전략 변화

북한은 전원회의를 통해 남북관계와 국제정세를 분석하고 대남, 대미전략의 주요 방향을 제시해왔다. 2018년 4월 20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일주일전 개최된 제7기 4차 전원회의에서는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중지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등 자발적 모라토리엄이 결정되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2019년 12월 개최된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는 정면돌파전 노선이 결정되었으며, 김 위원장은 보고를 통해 자발적 모리토리엄에 "더 이상 매여있을 근거가 없어졌다"며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추구할 경우 "조선반도 비핵화는 영원히 없을 것, 충격적인 실제 행동으로 넘어 갈 것,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을 경고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2021년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평화와 통일, 민족의 운명과 후대들의 앞날을 생각한다면 "파국에 처한 현 북남관계를 수습하고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2021년 6월의 3차 전원회의에서는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대미관계에서 견지할 적중한 전략전술적 대응"이 명시되었으며, 김 위원장은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며, "조선반도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가는데 주력"할 것을 주문했다.

2022년 1월 4차 전원회의의 결론으로 "북남관계와 대외사업부문에서 견지하여야 할 원칙적 문제들과 일련의 전술적 방향"을 제시했지만 구체적인 내용 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직후 개최된 제8기 제6차 정치국 회의는 "미 제국주의와의 장기적인 대결에 보다 철저히 준비"할 것과 "보다 강력한 물리적 수단들을 지체 없이 강화발전"시킬 것을 결정하고 자발적 모라토리엄 파기를 예고했다.

북한은 3월 24일 김 위원장 참관 하에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이를 대내외에 공개해 자발적 모라토리엄을 공식 파기했다. 또한 풍계리 핵실험장 복구도 본격화했다. 올해 1월부터 6월 5일까지 북한은 18차례의 미사일을 발사했으며, 이는 김정은 정권기 가장 강도가 높은 무력시위다. 북한의 노선변화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이번 제8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핵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최근의 강도 높은 무력시위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주재하며 '강대 강, 정면승부의 투쟁원칙'을 재천명하고 국방력 강화 부문의 과업들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조선중앙통신>은 결론에서 "대적투쟁과 대외사업 부문에서 견지하여야 할 원칙들과 전략전술적 방향들이 천명됐다"고 전했지만, 구체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남한을 직접 겨냥하지는 않았지만 '대적투쟁'이라는 표현에 비추어 대남 강경전략의 지속을 예고한 것으로 보인다. 강경파인 남북관계 전문가 리선권을 통일전선부장에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현 주변 정세가 "국방력 강화를 위한 목표 점령을 더욱 앞당길 것을 재촉하고 있다"고 언급해 핵실험 가능성을 암시했지만 최선희를 외무상에 임명해 북·미 비핵화 협상의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북한 외무성 내 대표적인 미국통인 최선희는 김정은에게 직보가 가능하고 트럼프 정권기 북·미 비핵화 협상을 이끌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리선권과 최선희는 2018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 당시 북한의 대남, 대미라인의 투톱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먼저 7차 핵실험을 단행함으로써 미국을 압박해 협상에 유리한 조건을 도모하려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북·미의 딜레마와 한반도 평화 만들기

2022년 초부터 북한은 대남·대미 강경책으로 전환해 무력시위와 아울러 공세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대북제재와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국경의 장기봉쇄에 따른 체제 내적 피로감이 누적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올해 1월 신의주-단둥 간 철도교역을 재개했지만 국가무역 중심이라는 점에서 장마당까지 영향이 미치지 못해 일반주민의 체감효과는 미미한 편이다.

코로나 사태로 북·중 교역은 다시 중단된 상태다. 북·중 교역은 1, 2월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40.7배였으나 3월의 경우 3.2배에 그쳤다. 지난해 5천원 권 돈표에 이어 최근 5만원 권 돈표까지 발행할 정도로 악화된 북한의 재정난이 북·중 교역 정상화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자력갱생노선으로 경제위기를 타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코로나 방역·치료 문제도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북한은 유엔안보리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성명 반대 등 노골적인 친러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미 강화된 북·중관계와 연계해 북·중·러 연대를 도모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블록을 형성했던 냉전기와 다르다는 점에서 북·중·러 연대의 시너지 효과는 제한적이다. 중국과 러시아 모두 글로벌 공급망(GVC)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을 포함한 핵능력 고도화는 미국 전략자산의 전진배치는 물론 한국 내 핵보유 여론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중국에게도 부담이다.

이는 결국 일본과 대만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6월 9일 장쥔 주유엔 중국대사가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언급한 이유다. 남북 및 북·미관계 개선 없는 김정은 체제의 미래는 어둡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 징후가 뚜렷해지면서 미국은 군사적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4월 중순 핵추진 항모인 에이브러햄 링컨을 동해에 전개했으며, 6월에는 괌에 B1-B 전략폭격기를 전진 배치하고 F22와 F35 스텔스 전투기를 일본에 추가 배치했다. 미국의 고위 외교안보라인은 북한의 추가 핵실험 가능성을 경고하며, 강력한 대응방침을 공개적으로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 출범 1년 반이 경과하는 동안 북·미 간 그 어떤 직접 접촉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북한은 결국 자발적 모라토리엄 파기라는 레드라인을 넘었다. 지난해 4월 말 발표한 바이든 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의 성적표다.

더구나 유엔안보리의 추가 대북제재의 경우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가 협조할 가능성이 희박하며, 중국도 비협조적인 상황이다. 북한에 대한 제재는 이미 사실상 최대수준이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압박 카드도 여의치 않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이어 북핵 위기가 심화되고 한반도에 또 다른 전선이 형성될 경우 바이든 정부의 부담도 가중될 것이다.

5월 21일 윤석열-바이든 대통령 간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동맹은 군사동맹에서 경제·기술동맹, 가치동맹으로, 그리고 한반도에서 글로벌로 협력의 공간이 확장되었다. 북한의 핵위협에 대해 한·미는 확장억제 등 대응을 강화하기로 합의했지만 대화와 외교가 강조되지는 않았다. 이후 한·미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동향에 대해 연합 미사일발사, 미국 핵항모전단이 참가한 한·미 해군연합훈련, 한·미 연합공중훈련 등 군사적 대응을 강화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시절인 올해 1월 "(북한의 미사일이)수도권에 도달해 대량살상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 이내다. 요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던 것처럼 미사일 방어망은 북한 핵무기 대응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2022년 6월 9일 윤석열 대통령은 연평도 포격전의 유가족이 북한의 사과를 요구하자 '원점타격'으로 대응하면 된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북한 도발의 원점은 실제로는 평양에 있는 인민군 지휘부와 김정은 위원장이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시절 대북 선제타격론을 주장한 바 있다. 비핵국가가 핵국가를 선제타격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보수 진보정권을 오가며 역대 대통령들이 북한의 도발에 신중하게 대응해온 것은 외교안보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증명하듯 외교적 해법 없는 강대 강 대치국면의 끝은 무력충돌이다. 진정한 지도자의 최고 덕목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일이다. 북한은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대남, 대미 강경책을 예고했지만 대화의 여지도 남겨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양측은 대치국면을 이어가며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한국이 한반도 평화 만들기를 주도할 때다. 윤석열 정부가 위험한 '사이다 발언'을 이어갈 것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의 길목을 지키고 넓히는 새로운 성찰적 보수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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