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담긴 구절이다. 이를 두고 윤석열 정부 및 대다수 언론과 전문가는 한미 정상 차원에서 미국의 확장 억제에 '핵'이 명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보수 진영에선 이를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최대 성과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전 한미정상회담에서 이보다 더 강한 표현도 있었다. 2017년 11월 초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정상회담 결과로 채택된 '한미공동언론발표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담겼었다.
공동언론발표문이 공동성명보다는 격이 낮기는 하다. 하지만 위의 인용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표현 강도는 이번에 나온 공동성명보다 훨씬 강했다. 미국 대통령이 타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힌 것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 그리고 미사일방어체제(MD)로 구성된 미국의 확장억제 제공은 한미연례안보회의(SCM)에 단골메뉴처럼 명시되어왔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볼 때, 윤석열 정부와 대다수 언론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핵 대응'의 처음으로 명시되었다며 자화자찬하는 것은 전형적인 아전인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적 계산과 무관하지 않다. 보수 진영은 문재인 정부 시기 내내 한미동맹이 크게 악화되었다고 비난했고, 윤석열 정부도 이러한 분위기에 동조하면서 한미동맹 강화를 최우선 목표 가운데 하나로 내세워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시기에도 한미동맹은 꾸준히 강화되었었다.
이에 따라 정부와 언론이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할 수 있는 방식으로 택한 것이 바로 '핵'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 처음으로 한미정상회담에서 핵에는 핵으로 대응한다는 취지의 문안이 담겼다는 홍보와 보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를 통해 문재인 정부 때 약화된 한미동맹을 윤석열 정부가 강화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바이든의 행보와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 재벌 기업들의 대미 직접투자 약속으로 '일자리 창출'이라는 실익을 얻게 되었다. 기실 이는 업종만 달라졌을 뿐, 트럼프의 발언과도 판박이이다. 트럼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이 미국의 무기를 대거 구매해주고 있다며 이는 '미국의 일자리 창출'을 의미한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바이든은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태양광 등 첨단 분야에 있어서 한국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짓기로 약속했다며, 양질의 일자리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점을 이번 방한의 최대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이번 한미정상회담이 우리에겐 '손해 본 장사 아니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정부와 보수 언론이 강조하는 것이 핵이다. 한국은 미국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미국은 한국에 핵우산을 더욱 강화해주었다는 '주고받기'라는 설명이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걱정되는 대목은 '미국 핵과 북핵의 악순환'이다. 기실 '핵에는 핵'이라는 기조는 북한이 즐겨 사용해온 표현이다. 북한은 세계 최강의 핵보유국이자 적대국인 미국을 상대하려면 핵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핵무장을 정당화하려고 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확장억제를 핵심으로 하는 한미동맹 강화는 북한의 핵능력 강화 의지를 더욱 부채질하고 말 것이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거치면서 한반도 평화는 더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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