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의 경제적 결과,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해외 시각] 평화가 시급하다,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세계를 위해

우크라이나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미 지난 4월 초 전쟁이 수년간 계속될 것이라는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의 예상에 이어 이달 초 미국과 영국에서는 10-20년을 전망하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주권 수호와 러시아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는 타협점을 찾아 협상에 의한 평화 회복이 절실하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번 전쟁으로 지구촌 최대 위기인 기후위기에 대한 인류 공동의 대응은 물 건너 반면, 미국의 무기산업과 에너지 업계는 환상적 전쟁 경기에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에너지와 식량 가격 상승으로 세계 경제는 비틀거리고, 특히 저소득 국가의 빈곤 계층은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우크라이나전쟁의 지속은 인류 공멸을 가속화시킬 뿐이다.

다음은 뉴욕시립대학이 국제관계학 교수인 라잔 메논의 ‘전쟁의 경제적 결과들’을 번역한 것이다. 원문은 미국의 반전 매체 톰디스패치(tomdispatch.com) 5월 3일자에 실려 있다. 편집자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존 메이나드 케인스는 1919년 펴낸 <평화의 경제적 결과>를 통해 1차 대전 패전국 독일에 대한 가혹한 배상 요구가 독일은 물론 유럽 전체에 매우 파괴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예언은 이후 대공황과 2차 대전에 의해 사실로 입증됐다. 오늘날 나는 케인스에 빗대 ‘전쟁의 경제적 결과’를 예측해 보려 한다. 즉 현재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전쟁이 우크라이나를 넘어 세계경제에 미칠 영향을 알아보고자 한다.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언론의 관심은 그날그날의 전황에 집중돼 있다. 우크라이나의 경제적 파괴, 즉 건물과 교량은 물론 공장과 도시 전체의 파괴, 그리고 난민들의 참상과 러시아군의 집단 학살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반면 전쟁이 우크라이나를 넘어 세계경제에 미칠 장기적 영향은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우크라이나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의 가난한 이들에게까지 어마어마한 경제적 고통을 안길 것이 분명하다. 부자 나라 사람들도 전쟁의 영향을 받긴 하겠지만 이들은 그럭저럭 견뎌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수도권인 키이우 북서쪽 이르핀 주민들이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다리를 건너 피란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산산조각이 난 우크라이나

이미 미국과 영국 일각에서는 이번 전쟁이 수년, 나아가 10-20년 계속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불과 두 달만의 전쟁으로도 우크라이나 경제를 정상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서는 엄청난 외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우선 난민 숫자가 우크라이나 전체 인구의 29%나 된다. 즉 4월말 현재 540만 명이 폴란드 등 인접 국가로 피난했고, 770만 명은 국내 난민으로 전락했다. 폴란드의 경우 난민 3백만 명을 받아들였는데, 이들의 기본적 생활 유지를 위해 1년간 3백억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됐다. 전쟁이 끝나고 1천 3백만 명에 이르는 난민들이 정상적 생활을 하려면 주택과 병원, 학교, 상점들의 재건에 엄청난 복구비용이 필요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경제는 올해 45%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기업의 절반이 운영을 멈췄으며, 전쟁지역인 남쪽의 항구들을 통한 해외 수출은 사실상 중단됐다. 생산을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최소한 몇 년이 소요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기반시설(다리, 도로, 철도, 수도 등)의 약 3분의 1이 파괴됐다. 재건과 수리에는 600-1,190억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재무부는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생산 및 수출의 중단에 따른 경제적 피해 규모가 이미 5천억 달러를 넘었다고 추산했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2020년 GDP의 거의 4배에 이른다.

이는 단지 추정치에 불과할 뿐이고, 실제 피해는 이보다 더 클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수년간 국제금융기구와 서방 국가들의 막대한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총리는 IMF 및 세계은행과의 만남에서 총 6천억 달러의 재건 비용이 필요하다면서 당장 앞으로 5개월간 매달 50억 달러의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앞서 지난 3월초 IMF는 14억 달러의 긴급대출을 승인했고, 세계은행은 7.23억 달러의 추가 대출을 결정했다. 앞으로 서방 국가들과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장기 지원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서방 : 높은 인플레와 낮은 성장

전쟁에 따른 경제적 충격은 이미 서방 경제에 닥쳤으며 앞으로 계속 악화될 것이다. 유럽 선진국의 2021년 성장률은 5.9%였는데, IMF는 성장률이 2022년 3.2%, 2023년에는 2.2%로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지난 2월에서 3월 사이에만 유럽의 인플레는 5.9%에서 7.9%로 급등했다. 에너지 가격의 상승을 고려하면 앞으로 인플레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3월 현재 유럽의 에너지 가격은 전년 대비 45%가 올랐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실업률이 6.8%로 크게 낮아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인플레가 임금 상승률을 앞지르면서 유럽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3% 감소했다.

미국의 경우 올해 추정 성장률은 3.7%로 유럽보다 나은 편이지만, 내년에는 2.2%로 낮아질 전망이다. 반면 3월말 현재 인플레는 8.54%로 전년 대비 두 배이며, 1981년 이후 최대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이사장은 전쟁으로 인한 추가 인플레 압력이 있다고 경고했다. 연준은 금리 인상으로 인플레를 억제할 수 있겠지만 성장률은 둔화될 수밖에 없다. 독일의 도이체방크는 지난 4월 26일 연준의 인플레 잡기로 내년 미국 경제는 대침체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유럽, 미국에 이어 세계 세 번째 경제권인 아시아태평양 지역도 전쟁의 영향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IMF는 이 지역의 성장률을 당초 추정치에서 0.5%포인트 내린 4.9%로 전망했는데 이는 작년(6.5%) 대비 1.6%포인트가 낮아진 것이다. 아태지역의 인플레는 대체로 낮겠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전쟁의 영향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코로나19가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쳤는데, 미국의 경우 전쟁 이전부터 인플레가 시작됐고 전쟁 영향으로 더 악화될 것이다. 석유 가격은 전쟁이 시작된 2월 24일 배럴당 89달러에서 3월 9일 119달러로 올랐다가 4월 28일에는 104.7달러로 조금 하락했다. 지난 두 달간 상승률은 17.6%에 이른다. 미국과 영국 정부가 사우디 및 아랍에미리트에 석유 증산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고, 당분간 유가가 하락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미 팬데믹 영향으로 치솟았던 선박 컨테이너 및 항공 수송료는 전쟁 이후 계속 오르고 있으며, 글로벌 공급망 차질도 악화되고 있다. 식량 가격 역시 오르고 있다.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각각 세계 밀 수출의 18%와 8%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세계 밀 공급의 4분 1 이상을 두 나라가 감당해 온 것이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세계 옥수수 수출의 16%를 차지한다.

또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요리에 널리 사용되는 해바라기 기름의 80%를 생산하고 있다. 식량의 가격 상승과 품귀 현상은 이미 유럽은 물론 중동지역과 인도 등에서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경우 수출의 70%가 흑해 및 아조프해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현재 전쟁의 영향으로 사실상 수출이 봉쇄됐다.

저소득 국가들의 곤경

성장의 둔화, 가격 상승, 고금리, 실업의 증가 등으로 서방의 빈곤계층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저소득 국가(세계은행의 분류에 따르면 2020년 현재 연간 1인당 국민소득이 1,045달러 이하인 나라)의 주민들, 특히 빈곤 계층은 더 큰 곤경을 겪게 될 것이다. 에너지와 식량 가격은 상승하는 반면 글로벌 성장 둔화에 따라 이들 국가들의 수출은 줄어들어 외화 획득이 어려워졌고, 서방측이 우크라이나 재건에 경제적 지원을 집중하는 만큼 저소득 국가들이 외채를 융통할 가능성이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저소득 국가들의 외채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극복을 위해 사상 최고를(8천6백억 달러로 전년보다 12% 증가) 기록했다. 그나마 최근까지는 금리가 낮았지만, 전쟁의 영향으로 식량과 에너지 가격은 상승하고 금리가 높아지면서 외채 상환 부담은 더욱 무거워졌다.

팬데믹 기간 동안 저소득 국가의 60%가 상환 연기 등의 구제를 받아야 했다(2015년에는 30%). 고금리와 에너지 및 식량 가격 상승은 이들의 곤경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이미 지난 달 스리랑카는 디폴트를 선언했다.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스리랑카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경고한다. 이집트, 파키스탄, 튀니지 등이 유사한 외채 부담을 지고 있으며 전쟁으로 인해 부담은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 한 해에만 74개 저소득 국가들이 350억 달러의 외채를 갚아야 하는데, 이는 2020년 대비 45%가 증가한 액수이다.

게다가 저소득 국가보다 소득이 높은 국가들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들 국가들에 외채를 빌려줄 수 있는 전통적 최후의 대부자는 IMF였는데, IMF가 우크라이나 재건에 막대한 지원을 집중한다면 도대체 어디에서 외채를 융통할 수 있을 것인가?

저소득 국가들의 외채 부담이 늘어날수록 이들 국가의 빈곤계층 지원 능력은 약화될 것이다. 특히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식량 확보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 2,3월 사이 식량농업기구(FAO)의 식량가격지수는 무려 12.6% 상승했으며 전년 대비로는 33.6%나 올랐다.

밀 가격의 경우, 한때 지난해 대비 두 배 가까이 올랐다가 현재 38% 선에서 안정됐다. 이 때문에 국내 소비의 25-80%를 우크라이나에 의존해 왔던 이집트, 레바논, 튀니지 등은 현재 밀가루와 빵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도-파키스탄은 우크라이나에 40%, 방글라데시는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에 50%를 의존-같은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치솟는 식량 가격으로 가장 타격을 받은 국가는 아마도 예멘일 것이다. 이 나라는 7년째 내전 중이며 우크라이나전쟁 이전부터 만성적 식량 부족 및 기아 사태를 겪어 왔다. 예멘 수입 밀의 30%가 우크라이나에서 오는데, 전쟁 이후 공급 부족으로 남부에서는 밀 가격이 다섯 배 가까이 폭등했다. 세계식량기구(WFP)는 긴급 구호를 위해 예멘에서만 매달 1천만 달러를 추가 지출하고 있다. 예멘의 경우 20만 명이 기아선상에 있으며 710만 명은 긴급 구호가 필요한 상황이다. 문제는 예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WFP에 따르면 이미 전쟁 이전에 세계적으로 2억 7천 6백만 명이 “극심한 굶주림”에 직면했으며, 전쟁이 여름까지 지속될 경우 추가적으로 2천 7백만-3천 3백만 명이 기아 상태에 몰릴 것이라고 한다.

평화가 시급하다,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세계를 위해

우크라이나 재건에 막대한 재원이 소요될 것이라는 점, 특히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과 일본 등이 우크라이나 재건을 매우 중시하는 상황에서 식량과 에너지 등 핵심 생존자원의 가격 상승은 가난한 나라들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물론 부자 나라의 빈곤 계층도 어려움을 겪겠지만 가난한 나라의 빈곤 계층은 더욱 큰 고통을 받을 것이다.

세계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우크라이나전쟁에 아무런 책임도 없으며, 나아가 전쟁을 종식시킬 힘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인들을 빼놓는다면, 전쟁이 지속됨으로써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바로 이들이다. 이들에게 전쟁의 종식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그 정도로 이들의 운명은 우크라이나 인들의 그것과 직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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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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