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알려준 것, 내가 건강하려면 '모두' 건강해야 한다"

[인터뷰]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 저자 김준혁 교수

어느덧 코로나19의 공포는 다소 옅어졌다. 지난달 18일부로 거리두기 조치가 전면 해제됐고, 이제 실외에서는 마스크 착용 의무도 해제됐다. 지난 2년여 간 점증하기만 한 코로나19 관련 강제 조치가 서서히 완화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9가 남긴 숙제의 무게감마저 가벼워진 건 아니다.

돌이켜보면 논란의 연속이었고, 위기의 일상이었다. 중국인 혐오와 소수자 혐오 논란이 일어났다. 정부의 개인정보 취득과 사용은 올바르냐는 논란이 이른바 'K-방역'의 그림자로 드리워졌다.

미비한 공공의료체계가 환자 치료에 어려움을 더한다는 비판이 2년 내내 이어진 가운데, 정부 조치로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됨에 따라 공공병원을 이용하는 일반 진료 환자의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누구를 먼저 살릴 것이냐'는 잔인한 선택의 문제가 한국 의료에 숙제로 다가온 순간이다.

이 논란의 시기를 단순히 과거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앞으로 다시 도래할 위기를 대응하기 위해, '포스트 코로나 체제'는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우리 사회가 준비해야 한다.

'의료윤리학'이라는, 아직 생소한 학문을 연구하는 김준혁 연세대 교수는 신간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반비)을 통해 지난 2년여의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건강한 사회로 다가가기 위해 필요한 질문이 무엇인지를 정리하고, 이를 독자에게 환기했다. 포스트 코로나 체제로의 이행을 위해 우리가 그간 놓친 질문이 무엇인가를 되짚고, 미처 우리 사회가 궁금증을 갖지 않았던 의문을 자문하고 답해야 한다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더 '정의로운 건강'을 추구해야 한다고 김 교수는 전했다. '정의로운 건강'이란, 건강검진 지표로 나타나는 건강의 차원을 넘어, 나와 당신, 세계 모두가 건강해야만 궁극적으로 나의 건강도 지킬 수 있다는 의미다. 코로나19 이후 온 세계가 유념해야 할 답안을 인터뷰를 통해 찾아갔다. 다음은 지난 6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치과대학의 김 교수 연구실에서 진행한 인터뷰 전문이다.

▲김준혁 연세대 교수. ⓒ김준혁

일반인도 알아야 할 '의료윤리'

프레시안 : 얼핏 보기에 의사 선생님 책장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철학 관련 서적이 많이 보인다. 의학을 모르는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의료윤리'라고 하면 막연히 '의사는 생명을 살리는 의무를 지닌다'는 정도로 생각되는데, 의료윤리란 무엇인가?

김준혁 :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윤리'의 차원에서는 그 정도가 적절한 설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는 수준이랄까, 의사의 행동규칙이랄까.

그런데 '의료윤리학'을 이야기할 때 윤리는 단순히 그런 당위의 차원을 의미하지 않는다. 설명을 더 쉽게 하기 위해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당위를 예로 들어 보자. 의료윤리학의 관점에서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 같은 당위는 나이브(naive)한 정서다. 단순히 '의사란 환자를 살려야만 하는 사람'이라고 해버리면 근래 중요한 의학적·사회적 개념인 안락사, 존엄사는 의학에서 다뤄서는 안 되는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이는 실존하는 의료행위다.

현대적인 의료윤리학은 1970년대 후반 시작됐다. 이제 50년 정도 된 젊은 학문이다. 한국에 의료윤리학이 들어온 지는 24년 정도에 불과하다. 1998년에 의료윤리학회가 만들어졌다.

프레시안 : 예전에 의학을 배운, 나이가 든 의사에게는 의료윤리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을 수도 있겠다.

김준혁 : 그렇다. 당장 저도 학생 때는 의료윤리를 배우지 않았다. (김 교수는 연세대 치과대학을 졸업한 후 펜실베이니아대 의과대학에서 생명윤리학으로 석사를, 부산대학교에서 의료인문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의철학회 편집이사, 한국생명윤리학회 학술이사, 한국의료윤리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다시 존엄사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과거에는 허용되지 않는 의료행위였다. 그러나 이제 본인의 의사가 있다면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환자의 인간으로서 존엄을 보호한다는 생각이 있다. 이 같은 선택의 문제는 의료에서 아주 중요하다. 여성이 원치 않은 아이를 임신해 중절수술을 원할 때 의사는 이를 따라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제약사가 새로운 약을 만들었는데 의사는 이를 써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환자가 넘쳐나는데 병실은 모자라다면, 누구를 먼저 입실시켜야 하는가. 장기 기증자가 나타났다면 누구에게 먼저 이를 이식해야 하는가.

의학은 한편으로 과학이지만, 의학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선택의 순간과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다. 의학의 영역에 인문학, 사회학, 경제학적 이해가 개입한다. 이 같은 선택의 순간에 적용할 기준이 필요하다. 의료윤리학이란 이를 연구하고, 선택을 위한 '논의의 방식을 만드는' 학문이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의료윤리는 의사와 간호사만 알아도 되지 않을까. 의료에 무지한 일반대중이 어려운 윤리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대중을 위해 책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을 썼다.

김준혁 : 의료의 문제는 의료인만의 것이 아니다. 다시금 앞서 예로 든 존엄사와 안락사, 임신 중절의 문제를 새길 필요가 있다. 이 선택과정에는 당장 (의료 비전문가인) 환자가 강력하게 개입한다. 당연히 이 때 의사가 특정한 의료 원칙을 갖고 있어야 하겠지만, 환자 역시 이 같은 선택의 문제에 적용할 의료윤리를 가질 필요가 있다. 더 크게는, 우리 사회가 이 같은 선택의 순간에 어떤 의료윤리에 합의할 것이냐 역시 중요하다.

프레시안 : 정리하자면, 의학이 사회 혹은 환자와 만나면서 충돌하고 기존 의료 지식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순간에 맞닥뜨리는데, 이때 의학이 사회와, 환자와 의사소통할 기준을 정립하는 것을 의료윤리로 이해할 수 있을 법하다. 이 정의가 대체로 부합한다면, 의료윤리의 필요성을 절감한 계기가 코로나19 팬데믹인 듯하다. 이 전염병을 둘러싸고 아주 다양한 층위의 다양한 논란이 우리 사회에 일어났다. 그럼에도 정작 이들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매우 부족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아직 이 감염병이 중국 우한을 중심으로 창궐할 때 바이러스보다 먼저 한국을 덮친 것은 공포와 혐오였다. ⓒ연합뉴스

코로나19, 단기 효율에만 집착하던 한국 의료에 경고하다

이 대목에서 지난 2년여의 대략적인 사건 기록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코로나19는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처음 창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해 12월 3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우한 폐렴'이 신종 감염병임을 경고했고 이듬해 1월 11일, 이 폐렴의 첫 사망자가 나왔다. 이어 1월 20일 한국에서 첫 확진자가 나왔고, 공포가 점증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이 '폐렴'에 관한 주요 대응 원칙은 격리였으나 이 해 3월 초 대구를 중심으로 신천지 신도 간 대규모 집단감염이 발생하며 국내 확산 상황이 본격화했다. 이 1차 유행의 파고가 지난 후 5월에는 서울 이태원 클럽을 중심으로 2차 유행이 시작됐다. 1차 유행 기간에는 신천지 신도가, 2차 유행 기간에는 성소수자가 사회적 혐오의 대상이 됐다. 작년 말에는 델타 변이로 인한 3차 대유행이 발생해 한국 의료 대응 체제가 심각한 위협을 받았고 올해 초 오미크론으로 인한 4차 대유행이 일어났다.

프레시안 : 이제 본격적으로 지난 2년의 코로나19 대응 과정을 되짚어볼 때다. 이 전염병이 아직 '우한 폐렴'으로 불리던 유행 초기, 코로나19가 낳은 첫 논란은 혐오 정서의 만연함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중국발 항공기의 국내 유입을 막아야 하느냐는 의료적 논란이 곧 중국인 혐오로 확산했다. 이후 주로 보수적인 개신교 언론을 통해 신천지 신도가 혐오의 표적이 됐고, 확진자 동선 추적 과정에서는 성소수자가 혐오 대상이 됐다.

김준혁 : 2020년 초로 돌아가자면, 당시 상황에서는 중국발 항공기의 국내 입국을 막는 게 의료적으로 옳은 조치였다고 본다. 미지의 전염병에는 차단이 우선 원칙이다. 일단 차단해 국내적으로 대응 정비할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도 익히 알지만, 이 같은 주장에는 곧바로 정치적 이해, 경제적 이해가 뒤따라온다.

정부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던 만큼, 의료계의 대응에도 아쉬움이 있었다. 정부와 대립각만 세우느라 제대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틀 자체가 어그러졌다.

프레시안 : 앞서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만든 준비체제가 있음에도 논란이 커졌다. 팬데믹 이후 체제 전환을 위한 근본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우리 사회가 이 같은 논의의 연습이 된 곳인지는 의문이 든다.

김준혁 : 미국의 경우 새로운 의료 체제를 만드는 자리에 의료에 더해 경제와 정책, 의료윤리 등 네 분야가 모여 논의하는 협의체가 만들어진다. 한국에는 이 같은 논의의 장이 없다. 그러니 개별 정부와 해당 정부와 뜻이 같은 소수의 의료진만이 모여 체제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고, 일반 대중은 이를 알기 어려워진다. 기껏 대부분 의료의 문제가 경제 논리와 부딪치는 정도다. 그러니 팬데믹 상황만 지나면 정부는 고비를 넘겼으니 돈 드는 짓은 하지 말자는 식으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당장 공공병원을 늘리자는 얘기는 지난 메르스 이후에 나왔으나 그 뒤로 경제논리에 밀렸다가 이번 팬데믹에서 다시 논의됐다.

프레시안 : 일단 급한 환자만 살리고 보자, 평시에는 의료의 공공성보다 경제적 효율성이 우선이다, 가 우리의 의료 관련 윤리라고 보면 되겠다.

김준혁 : 한국의 매우 오래된 의료윤리의 핵심은 단기 효율성이다.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보건의료제도는 오직 단기 효율성만을 추구했다. 의료란 최대한 많은 환자를 살려서 다시 일터로 내보내고, 그 환자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철학이 전부였다.

물론 지금도 이 같은 관점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제 효율성만으로 사회의 의료적 요구를 전부 충족할 수는 없다. 당장 진주의료원 폐쇄 논란을 우리가 보지 않았나. 효율성 관점에서 공공병원은 필요 없으니 없애자, 는 결론이 나온 거다. 이제는 장기적 관점을 우리가 가질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팬데믹 극 초기를 지나 코로나19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상륙한 후, 한국 정부 대응 전략의 핵심은 K-방역으로 대표되는 '3T(검사·확진-역학·추적-격리·치료, Test-Trace-Treat)'였다. 그 바탕에는 정부의 광범위한 개인정보 수집과 이용이 있다. 사생활 추적 논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각 지자체가 개별 확진자의 동선까지 일반에 공개한 게 대표적이다.

기실 이는 심각한 수준의 개인정보 침해 논란으로 일어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한국에서는 이에 관한 논의 수준이 매우 부족했다.

김준혁 : 맞다. 이 같은 대응을 두고 일각에서는 정부의 개인정보 수집은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 합의된 사항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이는 사실 매우 중요한 문제다. 포스트 코로나 체제 전환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정부의 개인정보 수집과 이용이 과연 올바른지를 되새기지 않는다면, 다음 팬데믹 때도 같은 상황이 일어날 것 같아 우려된다.

정부가 개인정보를 수집하려면 그 정보에 관한 명확한 관리 절차와 폐기 절차를 고지해야 하고, 이용 범위도 사전에 안내해야만 한다. 영국이 이렇게 한다. 영국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정부가 개인의 위치정보시스템(GPS)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겠으니 이를 승인해달라고 국민에게 요청했다. 자료의 수집 범위, 보관 시한 등을 명확히 고지하고 개인의 동의를 받는 절차를 거쳤다. 과거 실패의 경험에서 영국 정부가 배운 바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영국 정부는 그간 국가보험에 쌓인 개인 의료자료를 분석하기 위해 '케어닷데이터(care.data)'라는 공공 의료 데이터 시스템 운영을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의료정보 전용을 우려한 국민의 강력한 항의로 인해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철회했다.

물론 한국은 메르스 시기를 지나며 정부의 개인 의료정보 사용과 수집에 합의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시 감염병의예방및관리에관한법률(감염병예방법)을 수정하면서 정부의 권한에 개인정보 수집과 사용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우리 사회에 이 문제에 관한 제대로 된 논의가 있었나. 한국 정부가 중국 정부처럼 개인정보를 마구 수집해서 개인을 통제하려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나.

프레시안 : 개인정보 수집에 관해서는 우리 국민의 대 정부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듯하다.

김준혁 : 그런 면이 있는 듯하다. 정치인, 관료를 신뢰하지는 않지만, 정부 시스템에 관한 믿음은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진다. 기업에 개인정보를 넘기는 데는 국민 80퍼센트가량이 반대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정부를 향한 우리 국민의 신뢰는 상대적으로 높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019년 11월 민주노총이 의뢰해 여론조사기관 포스트데이터가 실시한 조사 결과, 일반 국민의 80.3%가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의 골자인 '가명정보(성명 등 일정 부분만 가명 처리한 정보)'를 개인 동의 없이 기업이 활용 가능하다는 내용에 반대했다.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본인 동의 없이 수집하도록 하는 개정안에도 응답자 70.5%가 반대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감염병예방법상 정부가 수집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정부가 잘못 대처한다면 남에게 밝혀서는 안 될 나의 사생활이 심각한 수준으로 공개될 수 있고, 잘못 이용될 수도 있다. 정부가 이 같은 문제를 명확히 사전 고지해야 한다.

(현행 감염병예방법에는 공개대상 정보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다. 이에 코로나19 대응 초기 각 지자체는 감염자의 성별, 나이 등 민감한 개인정보까지 전부 공개했고, 각 감염자의 동선을 일반 대중에 무차별 공개했다. 이에 따라 개인의 사생활이 심각한 수준으로 침해됐고, 감염자가 다녀간 음식점 등 다중이용시설 역시 피해를 봤다.)

▲방역패스는 숱한 논란을 낳았으나 우리의 지난 2년여 간 코로나19 대응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다. ⓒ연합뉴스

의료는 개인 책임의 영역이 아니다

프레시안 :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대유행하면서 유럽에서는 비참한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탈리아나 영국 등 일부 국가는 한때 산소호흡기 사용 대상으로 75세 이하로 한정하기도 했다. 더 젊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인의 적극적인 치료를 사실상 포기하는 조치였다. 수위는 다르지만, 한국에서도 코로나19 대유행은 이런 선택의 문제를 낳았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극단적인 경우 의료계는 '차별의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준혁 : 차별이라고 함부로 얘기해서는 안 되지만, 사실 의료인은 언제나 환자를 구분한다. 그럼에도 이에 관한 철학적 논의가 2016년에야 시작됐다.

의료자원이 모두에게 갈 수 있다면 환자를 구분할 필요가 없고, 해서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병실이 모자라고, 의료자원이 모자라고, 백신이 모자라는 상황이 생긴다. 이 경우 이 희소한 자원을 누구에게 먼저 배분할지를 정할 기준이 필요하다. 잔인하지만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다. 이 대목에서 유럽의 경우, '삶의 전망상 노인보다 아이를 먼저 살려야 한다'는 합의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합의가 한국에서도 쉬울지는 의문이다. 이런 정밀한 논의를 불편해하실 분이 많은 줄 안다. 실제 학회에서도 '우리 사회에는 노인을 공경하는 문화가 있으니 유럽식 대응은 불가능하다'고 하는 분이 계시다.

프레시안 : 오미크론 확산 후 한국 사회는 '재택치료'라는 새로운 논란점과 또 만났다. 그나마 사태 초기에는 재택치료자에게 정부가 치료키트를 발급하고 정기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등 관리 체계가 유지됐으나, 환자가 폭증하자 일반 환자는 사실상 방치됐다는 논란이 일어났다. 이 대목에서 김 교수는 '개인 책임 담론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책에서 주장했다. 어떤 의미인가?

김준혁 : 한국에서 국가의 보건 책임 영역과 개인의 책임 영역이 엄격히 구분돼 있다. 일단 '건강권'이라는 개념이 헌법에 있듯, 국가는 개인 보건을 위해 책임을 지는 주체다. 국민건강보험이 작동하고, 정기검진 체계가 작동하는 원리의 근간이다. 그런데 국가는 일정 수준을 넘어가는 순간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 개인이 대응할 수 있는 영역에 국가가 지원한다는 개념이 우리 사회에 부족하다. 

코로나19 대응 체계를 예로 들면, 제 경우 지난 3월 코로나19에 감염됐다. 국가가 해 준 조치는 두 통의 문자메시지가 전부다. 국가의 한계 여력을 확진자 수가 넘어섰다면, 비록 환자 관리차원에서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이후 개인이 관리하면서 맞닥뜨리는 결과는 국가가 책임지는 자세는 가져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국가의 부재를 절감한 대표적 보건·의료분야가 돌봄일 것이다. 국가가 사실상 돌봄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겨 온 것이 우리 역사다. 아이의 돌봄을 위해 조부모가 동원되고, 아픈 부모의 간병을 위해 자녀가 동원되어 가계가 파탄나는 게 우리 현실 아닌가. 돌봄의 노동 가치를 국가가 인정하지 않은 결과다.

백신을 둘러싼 정의의 논란

프레시안 : 백신 이기주의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과정에서 중요하게 불거진 문제였다. 선진국들이 제약사와 개별 계약함에 따라 백신의 정의로운 배급을 위해 마련된 코백스 퍼실리티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고, 후진국에 백신이 제대로 돌지 않은 결과 팬데믹이 더 장기화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그런데 이 국면에서 한국 정부에 '정의'를 위해 나홀로 후진국과 보조를 맞추기를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김준혁 : 이는 우리가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다. 국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국민을 살리기 위해 백신을 대규모로 들여오는 게 옳은 선택이다. 그러다보니 이제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경우 백신이 너무 많아 문제가 될 지경이다. 그 사이 아직 인구의 1퍼센트만이 백신을 접종한 후진국이 여전히 많다. WHO 등에 구속력이 있다면 세계를 위한 이니셔티브를 쥐고 갈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조율하기 쉽지 않은 상황인 듯하다. 그나마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과 유럽연합(EU),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4자가 제약사들이 보유한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 적용을 일시 중지하자는 내용에 협의했다고 하니, 그나마 지재권 포기 기한이 길어지기를 바랄 수 있게 됐다. 

(이 안은 세계무역기구(WTO) 164개 회원국 전부가 수용해야 통과 가능하다. 그러나 영국과 스위스가 백신 지재권 면제에 과거 반대한 사례가 있어 통과를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프레시안 : 국제적으로 백신을 둘러싼 정의 논란이 일었다면, 국내적으로는 청소년 백신 접종 이슈가 컸다. 정부가 한때 방역패스를 학원 등에도 적용하게 하면서 사실상 청소년 백신 접종을 강제했다는 비판이 일어났고, 결국 사법부 조치를 통해 이 같은 대응이 무력화했다.

김준혁 : 저는 사법부가 제대로 판단했다고 단언합니다. 방역패스는 사실상 백신 접종을 강력한 수준에서 권유하는 장치였는데, 이 같은 조치를 정부가 성인에게는 취해도 된다고 본다. 우리는 성인으로서 나 자신을 지킬 권리뿐만 아니라 내 이웃을 보호할 의무도 '윤리적 차원에서는' 지닌다는 데 합의한 사회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의무를 보호해야 할 대상인 청소년에게까지 부과하는 건 옳지 못하다. 청소년은 의무를 질 대상이 아니다.

▲팬데믹,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나만 건강한' 삶은 건강한 삶이 아니라는 중대한 사실을 일깨웠다. pixabay

이제 우리 모두 건강해야 나도 건강한 삶

프레시안 : 책에서 여러 새로운 개념이 소개된다. 인상 깊은 부분이 '불확실성을 허용하자'는 주장이었다. 무슨 의미인지 쉽게 연상되지 않는다.

김준혁 :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위험, 리스크(Risk)는 피해가 가져올 규모와 피해 발생 가능성을 모두 아는 미래의 위협을 뜻한다. 이는 우리가 예측 가능하고 대비 가능한 위험이다. 예를 들어 건설 현장에서는 장기간의 경험을 통해 사고율이 대체로 몇 퍼센트가 되는지를 알 수 있고 이에 대처해 기업이 어떤 조치를 취할지, 노동자가 어떤 안전 조치를 취할지 책정할 수 있다.

반면 불확실성은 그 크기는 알고 있지만, 확률을 모르는 미래의 위협이다. 대표적인 사례까 기후변화다. 우리는 기후위기가 언젠가 되돌릴 수 없을 수준으로 우리에게 큰 피해를 주리란 걸 안다. 하지만 그 시기는 잘 모른다. 팬데믹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우리는 코로나19를 통해 그 크기를 확인했다. 하지만 새로운 팬데믹이 언제 올지는 알기 어렵다. 따라서 팬데믹의 불확실성은 우리가 관리할 수 없다.

과거 의학은 미래의 위협을 리스크로 보았다. 관리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는,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위협이 더 자주 나올 수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를 경제적 차원에서 과거와 같이 대응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팬데믹이 언제 올지 모르니 일단은 다른 데 예산을 전부 투입하자’는 식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불확실성 앞에 무력함을 인정하고, 상시 대응 태세를 만들어가자는 얘기다. 제가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시민도 알아야 그 불확실성에 대비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할 수 있다. 시민이 가만히 있으면 정부는 또 한정된 예산을 결국 경제 논리에 따라 배분(당장은 불확실하고 돈만 들 공공의료 대신 다른 영역에 투입)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춰 '원 헬스(One Health)' 개념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원 헬스란 무슨 뜻인가?

김준혁 : 2007년경 나온 개념인데, 간단히 말해 '나의 건강을 위해서는 동물도, 환경도 건강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사람과 동물, 환경이라는 세 축이 모두 건강해야만 나도 건강해진다는 뜻이다.

프레시안 : 내 건강을 위해서는 동물권도 챙겨야 하고 환경도 보호해야 한다?

김준혁 : 그렇다. 우리는 보통 '건강하다'는 개념을 병원이 나에게 알려주는 숫자로만 인식한다. 체질량지수(BMI)가 얼마고, 혈압은 얼마며, 몸무게는 몇 킬로그램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코로나19는 이제는 생각을 조금 달리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당장 '먹는다'는 걸 생각해 보자. 과거에는 건강하려면 골고루 잘 먹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이제는 아니다. 동물복지에 신경을 쓴 농가로부터 온 고기인지, 환경을 생각한 유통경로를 거친 채소인지를 확인하자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당장 코로나19의 경우도 주요 발생 경로로 우한시장설이 거론되는데, 이 경우 동물이 윤리적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올라갔는가를 따져야 하는 문제가 된다.

즉, 이제 나만 건강하다고 해서 내 건강이 지속 가능하다고 자신할 수 없는 세계라는 뜻이다. 코로나19는 내가 아무리 평소 건강관리를 잘해도 언제 어디서나 나도 감염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웠다. 내가 내 건강을 아무리 챙겨도 환경이 망가지고 기후위기가 되돌릴 수 없게 된다면 그때도 나는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 : 책의 부제로 '정의로운 건강을 위한 의료윤리학의 질문들'을 언급한 배경으로 읽힌다. '정의로운 건강'은 익숙지 않은 주장이다.

김준혁 : 나만의 건강이 아닌, 우리 모두의 건강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코로나19는 동물의 건강에, 환경의 건강에 눈 감고 나만의 건강을 챙긴다고 내가 건강할 수 없음을 보여줬다. 단순히 병원이 나에게 알려주는 건강 수치만이 건강 지표가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이제 '건강'은 윤리적 가치까지 담는 단어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운동 열심히 하고 충치 치료 잘 받는 것도 물론 건강한 삶이지만, '더 건강해지도록 노력'하는 데는 더 큰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는 '건강한 상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장애인은 건강한가. 노인은 건강한가. 신체에 장애가 있더라도 잘 먹고 이동을 잘 할 수 있다면 건강한 사람이다. 나이가 많더라도 소화를 잘 하고 활력 있게 산다면 건강한 사람이다. 단순히 의학적 관점만으로 사람의 건강을 책정해서는 안 된다. 거꾸로 겉으로는 신체 건강한 사람이라도 외부로부터의 문제에 쉽게 대처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마냥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이제 '옳은 건강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고, 이는 곧 '정의로운 건강은 무엇이냐'는 담론으로 이어야 한다. 정의로운 건강이 단순히 개인만의 차원이 아니라면, 헌법이 '건강권'을 보장한 데서 보듯, 개개인이 이제 사회와 정부에도 정의로운 건강을 요구해야 한다. 정의로운 건강에 관한 고민이 부족한데서 온 대표적 사건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라고 본다. 개별로는 건강하던 사람들이 숱하게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보상 절차가 길어져서는 안 되는 사건임에도 정의로운 건강에 관한 우리 사회의 인식 부재가 사건 해결을 이리 늦췄다고 나는 생각한다.

프레시안 : 긴 시간 말씀 감사하다.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김준혁 지음) ⓒ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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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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