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일자리를 뺏어간다"는 100년 된 '레퍼토리'…사실일까?

[프레시안 books] 아론 베나나브 <자동화와 노동의 미래>

유튜브에서 상업 건물의 공용 화장실을 청소하는 로봇을 본 적이 있다. 네모난 몸통(?) 한쪽에 팔(?) 하나를 단 로봇은, 그 팔로 변기에 세척제를 뿌리기도 하고 솔을 집어 들더니 바닥을 닦기도 했다. 엘리베이터도 혼자 타고, 화장실도 혼자 찾고, 배터리 충전도 혼자 했다. 로봇의 대여료는 한 달 1000달러(약 120만 원). 구글, 애플 등 미국 대기업을 이미 고객으로 확보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이게 된다고?' 넋을 놓고 보다 친구들에게 영상을 공유했다. 한 친구가 말했다. "순서가 짜증나네."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이 '밑바닥' 노동인 청소노동부터 대체하는 게 슬프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근로계약서에서 위법사항을 찾아내는 대회에서 AI와 사람이 함께한 팀이 변호사로 이뤄진 팀을 제치고 1~3등을 차지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중 3등은 일반인과 AI로 이뤄진 팀이었다. 3등 팀이 받은 점수는 150점 만점에 107점, 변호사가 모인 4등 팀의 61점을 크게 앞섰다. 변호사와 AI가 함께한 1등 팀의 점수는 120점이었다.

물론 변호사의 업무에는 문서에서 위법사항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 복잡한 일이 있을 테다(AI 기자 '워드스미스'가 한해 10억 건의 기사를 작성하는 시대에 기자들도 이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문서 분석과 관련한 법률 소송에서만은 AI가 변호사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

그럼 변호사들은 청소노동자가 화장실 청소 로봇을 보며 느끼는 것과 같은 강도로 자기 일자리에 위협을 느낄까. 그런 것 같진 않다. 당장 법률 AI 개발자도 변호사와 AI는 동반자라고 자세를 낮춘다. 청소 로봇 개발자에게서 그런 모습을 볼 수는 없다. 법률 AI를 보며 변호사의 워라밸을 말하는 기사는 있지만 화장실 청소 로봇을 보고 청소 노동자의 워라밸을 말하는 기사는 없다.

어떤 분야에서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을 발전시킬지 우선순위를 정하고, 어떤 노동을 어떤 속도로 대체할지 결정하는 건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일 게다. 변호사들에게는 그걸 막거나 속도를 늦출 힘이 있다. 청소노동자들은 그럴 힘이 없거나 상대적으로 약하다.

젊은 경제사학자 아론 베나나브의 첫 저작 <자동화와 노동의 미래>는 우리에게 익숙한 '자동화 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책이다. 자동화 담론은 '기계가 노동자를 대체하고 있어 '기술적 실업'이 심각해질 것이고, 완전에 가까운 자동화 사회가 눈앞에 있으며, 이로 인한 악몽을 막을 대책은 기본소득'이라는 생각이다.

저자의 기본소득에 대한 비판은 '기술발전'에 대한 지나친 강조에 초점을 두고 있다. 현대 사회의 낮은 노동수요와 노동자의 열악한 삶은 기술 발전에 따른 자연적 결과가 아니라 이를 둘러싼 사회적 역학관계가 얽혀 도출된 결과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기본소득론자들이 그리는 유토피아적 전망에 대해서도 저자는 '미래의 기술 발전에 대지 말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당장 찾아서 하자'고 이야기한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현재에 대해서도 미래에 대해서도 '로봇 탓을 하지 말자'는 거다.

자동화 담론은 그간 수차례 반복돼왔다

책의 전반부는 기술 발전이 일자리 감소와 노동자 처지 악화로 이어진다는 자동화 담론의 전제를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저자는 먼저 자동화 담론이 우리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생각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해온 생각이라는 점을 설명한다.

"미래 자동화 사회에 대한 열광적인 전망이 처음 나타난 시기는 늦어도 19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공장 자동화에 대한 예견은 1930년대와 1950년대, 1980년대에 수차례 제기된 이후 2010년대에 다시 출현했고, 그때마다 사회가 재편되지 않는 한 '대규모 실업과 사회 붕괴'가 시작되리라는 주장이 뒤를 이었다."

이어 자동화 담론이 주목받은 시기가 대체로 경기 침체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시기와 일치한다고 지적한다. 1930년대의 대공황과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등장으로 이어진 경기침체는 유명하다. 2008년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있었다. 즉, 자동화 담론은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불안감이 높아질 때 주목받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 처지 악화는 로봇 때문이 아니다

문제는 자동화 담론이 기술이 발전하면 일자리가 준다는 이야기를 당연한 현상으로 여긴다는 데 있다. 저자가 보기에 이는 사실과 다르다. 기계가 인간과 결합해 1인당 생산성이 높아지더라도 생산해야 할 물건의 양이 그보다 빠르게 늘면 고용은 증가한다. 반대로 생산해야 할 물건의 양이 늘지 않으면 미미한 생산성 증가도 실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낮은 노동수요 문제의 핵심은 수요능력이 생산능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 즉 불황의 장기화와 이에 따른 기업의 투자 감소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흐름을 막기 위해서는 "자본가들이 투자 결정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을 타파"해야 할 것이지만 노동조합 조직률 하락 등 자본을 사회적으로 통제할 힘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저자는 이같은 상황에서 각국 정부가 투자 유치를 위해 기업의 노동자 보호 조치 약화에 동의했고, 그 결과 노동자의 처지가 악화됐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현상은 '비전형 고용'의 증가다.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세계 노동인구 중 정규직의 비율은 26%에 불과"하다. "나머지 74%는 고용자나 자영업자를 제외하면 임시로 계약했거나 계약조차 없이 비공식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로봇은 기본소득 시행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아니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기술발전의 힘에 기대 기본소득의 시행을 전망하는 자동화 이론가들의 태도를 비판한다. 그러면서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 기술관료적 과정을 거쳐 기본소득이 실행될 리 없다고 주장한다. 자본가 등 엘리트 계층이 기본소득과 같이 불평등을 완화해 스스로의 힘을 약화시킬 조치에 자발적으로 동의할 리 없다는 이유에서다. 엘리트 계층은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할 무기도 갖고 있다. 생산수단 장악이다.

"자본가들은 '자본 파업'이라는 무기, 즉 투자 회수와 자본도피를 통해 언제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특권을 계속 휘두를 것이다. 지난 40년간 생산능력 과잉이 심화되고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와중에도 자본가들은 이 무기를 가지고 정당과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위협했다."

이 때문에 저자는 기본소득 실행을 위해서는 먼저 생산 통제할 사회적 힘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을 활용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좌파라면 자산 소유권 전반을 사회로 정연히 이전하여 생산 수단의 점진적 사회화를 이루는 제2의 마이드너 플랜(기업 이윤의 20%를 신주로 발행해 노조 관리 기금에 내게 한 스웨덴의 정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할 대중적 사회운동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기본소득으로 꿈꾸는 세상, 기술 발전 기대지 않고도 그릴 수 있어야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자동화 이론가들이 기본소득을 통해 모든 사람의 존엄섬이 보장되고 누구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의 그림을 제시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단, "우리는 과학기술이 발전하리라는 가정에 기대지 않고도 민중이 중심이자 주역이 되는 유토피아를 상상하고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로봇에 기대지 말라는 것이다.

이어 저자는 완전 자동화가 이뤄지지 않은 사회에서도 자동화 이론가들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생활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고 제공하기 위한 '필요 노동'을 모든 사람이 민주적으로 분배해 최소한으로 수행(저자의 제안은 하루 3~5시간)하고 나머지 시간 자유를 누리는 방식으로다. 

책에 단점이 없지는 않다. 기술발전과 낮은 노동수요의 관계를 설명하는 전반부에서는 불황과 투자 감소에 강하게 초점을 둔 탓에 외려 그간 축적된 기술발전 요인을 다소 과소평가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저자 나름의 대안인 '필요 노동의 최소화와 민주적 분배'는 결과적으로는 노동 시간 단축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낮은 노동수요와 이에 따른 노동자 처지 악화를 이에 대한 각 사회계층의 대응으로 설명하고, 그 대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도 사회운동을 강조하는 저자의 시각은 곱씹어볼만 하다. 기술 발전의 역할을 강조하는 자동화 담론의 해독제로 작용하며, 기술 발전과 그 대응은 결국 사람의 일이라는 단순하지만 분명한 사실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 <자동화와 노동의 미래>(아론 베나나브 지음) ⓒ책세상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