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이 '기괴하고 음란하다'고 평한 책 <청나라 귀신요괴전>

[최재천의 책갈피] <청나라 귀신요괴전> 1·2, 원매 지음, 조성환 옮김

이선민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절에 가서 향을 사르다 미녀를 발견했다. 달콤한 말로 꼬드기자 따라왔다. 함께 살게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씨의 몸이 갈수록 여위어갔다. 마음속으로 여우임을 눈치챘지만 그녀를 쫓아낼 방법이 없었다. 친구와 상의했다.

"<동의보감>에 여우 퇴치 방법이 나와 있는 걸로 기억하는데, 한번 시험해보지 않겠는가?" 마침내 함께 베이징 유리창으로 가 그 책을 구해 조선 사람을 찾아 번역하게 하고는 그대로 시행해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울면서 떠나갔다.

흥미롭다. 그 옛날 청나라 책에 조선의 <동의보감>이 '여우 퇴치방법'으로 소개되었다니.

조선의 문인들도 이 책을 읽었고 독후감을 남겼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기괴하고, 음란하다.'고 비판했고, 이규경 선생은 책에 실린 귀신 퇴치 방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자하 신위 선생은 책을 읽고 일종의 독후감 격으로 시를 40수나 짓기도 했다.

청대의 저명한 시인 원매(1716~1797)가 세상을 뜨기 3년 전인 1794년 완성한 책에는 온갖 귀신과 요괴, 괴담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든다. 괴상하고 폭력적이며 난잡한 사건과 귀신들의 이야기 모음집이다. 원제는 <자불어>(子不語). 이는 <논어> 술이(述而)편의 "자불어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에서 따왔다. '공자님께서는 괴력난신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라는 의미다. 그런데 원매는 '괴상한 힘과 어지러운 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 그랬을까.

원매는 서문에서 자신의 창작 의도를 분명히 밝혔다. "문학과 역사 외에는 스스로 즐길 것이 없어 이에 마음을 즐겁게 하고 귀를 놀라게 하는 일, 아무렇게나 말하고 아무렇게나 들은 것을 널리 수집하고 아울러 기록하여 세상에 남겨두는 것이지, 여기에 미혹되지는 않았다." 총 572편의 이야기가 방대한 두 권의 책에 번역되어 담겼다.

청나라 때 민간의 귀신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그저 중국 영화에 등장하는 '강시' 수준의 호기심일까. 미국 디즈니사의 영화 <백설공주>나 <신데렐라>는 미국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디즈니사는 이를 가져다 끊임없이 변주해가며 새롭게 창작해낸다. '한류' 붐이다. 시대적 재해석과 융합 능력이 우리의 장점일 수 있다. 한류 콘텐츠가 한국이 원산지일 필요는 없다. 영화 <설국열차>의 원작이 뱅자맹 그르망의 그래픽 노블이었듯 콘텐츠는 온 세상에 널려있다. 책의 기괴한 상상력이 그렇게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번역과 출판에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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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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