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나쁘다" 한마디에 실형, 박정희 긴급조치 피해 구제 미완

운동권 학생들만 피해자? 대다수는 평범한 시민들

"박정희는 앞으로도 독재정치를 계속할 것이다. 민주주의가 아니라 왕국이다. 대대로 대통령을 할 것이다." (광부 김모 씨)

"박정희 정치는 X도 아니다." (행상 강 모 씨)

"박정희란 놈은 우리 화전민만 죽이려고 화전 정리를 한다." (농민 여 모 씨)

"대통령이 나쁘다. 도둑놈이다. 새마을 사업을 서서히 해도 되는데 너무 무리하게 억압적으로 한다." (무직 김 모 씨)

"군인의 대우만 잘해주고, 노동자는 잘 살 수 없으니 현 정치가 나쁘다. 어떻게 된 세상이냐? 세상이 뒤집어져야 한다." (노동자 안 모 씨)

박정희 정권 당시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선고받을 이유가 됐던 말들이다. '말 한 마디'로 죄인이 된 평범한 이들의 죄명은 긴급조치 위반이었다. 긴급조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 유신헌법을 공포한 후 이에 근거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며 내린 9번의 특별조치를 뜻한다. 여기에는 정부를 향한 비판과 유언비어 유포 등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대통령긴급조치위반사건 재심현황 자료집(이하 긴급조치 자료집)> 발간을 기념해 28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대회의실에서 긴급조치 관련 단체와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는 민청학련 계승사업회의 장영달 공동대표와 신대균 공동대표, 김영진 사무국장, '사단법인 민주·인권·평화를 실천하는 긴급조치 사람들(이하 긴급조치 사람들)'의 김하범 상임이사  등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직접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는 민주화 운동가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사연을 수록한 <긴급조치 자료집> 발간의 의미와 긴급조치 위반자의 재심 현황, 대선 등 정치적 상황 변화와 무관하게 과거사 정리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진실화해위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긴급조치 제정과 폐지의 역사, 그리고 끝나지 않은 피해

박 전 대통령은 1972년 대통령 직선제 폐지, 대통령 임기 6년으로 연장, 연임 제한 철폐 등을 담은 유신헌법을 공포하며 종신집권의 발판을 놓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발을 힘으로 무마하기 위해 유신헌법 53조에 긴급조치권을 뒀다. 입법부와 사법부의 견제 없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한 것이었다.

1974년 최초로 발동된 긴급조치 1호의 골자는 유신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는 것이었다. 고 장준하 선생과 고 백기완 선생이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처벌된 대표인사다. 이후 긴급조치는 1974년 반독재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일으킨 정권 차원의 조작 사건인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하 민청학련) 관련자 처벌의 근거가 되는가 하면(4호), 다음 해 민주화 시위가 일어난 고려대학교에 휴교를 명하는데도 활용됐다(7호). 1975년 마지막으로 발동된 긴급조치 9호에는 1호에서 한발 더 나아가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는 행위' 등이 포함됐다.

국민의 생각과 말을 제한하는 조치였던 탓에 긴급조치로 인한 피해는 민주화 운동 세력에 국한되지 않았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정부를 비판했다 감옥으로 끌려간 사람도 많았다. 이 때문에 국가보안법과 마찬가지로 긴급조치 앞에 '막걸리'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긴급조치권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헌법이 한 차례 더 개정된 뒤에야 완전히 사라졌다. 2010년 이후 긴급조치 1, 2, 4, 9호에 대한 대법원의 위헌 판시 무효 선언,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잇따랐다. 이에 따라 긴급조치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긴급조치 사건에 대한 재심이 모두 완료된 것은 아니다. 긴급조치로 인한 피해의 구제가 민주화 이후 3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료되지 않은 것이다. 

진실화해위 확인 긴급조치 위반자 1204명...상당수는 일반인

정근식 진실화해위 위원장은 먼저 <긴급조치 자료집> 발간의 의미에 대해 "다양한 형태의 민주화 운동과 인권침해 정보를 모으고 이를 사회단체, 학계와 공유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한 뒤 "앞으로도 진실 규명의 성과와 자료를 정리해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작업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긴급조치 자료집>을 보면, 현재까지 진실화해위가 확인한 긴급조치 위반자는 1204명이다. 그 중 1050명이 박정희 정권 시기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민주화 이후 재심을 청구해 무죄 판결을 받은 이의 수는 864명이다.

재심 현황과 관련해 정 위원장은 "여전히 구제받지 못한 피해자가 있다"며 "진실화해위도 긴급조치와 관련한 재심을 마무리 짓는 것을 중요한 숙제로 삼고 있다"고 했다.

김하범 긴급조치 사람들 상임이사는 <긴급조치 자료집>에 운동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수 담겼다는 점에 주목했다.

김 이사는 "저희 단체는 현재로서는 긴급조치 관련 피해자를 대변하는 가장 규모가 큰 단체인데 대부분 네트워크가 있는 당시 학생들이 모여있다"며 "저도 학생이 가장 큰 피해자라고 믿고 있었는데 1기 진실화해위 때 긴급조치 사건 전수조사를 보고 충격을 받았고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1기 진실화해위는 2006년 출범해 2010년 문을 닫았다. 이후 지난해 10월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최승우 씨의 국회 농성 등에 힘입어 2기 진실화해위가 다시 문을 열었다. <긴급조치 자료집>은 1기 진실화해위의 긴급조치 사건 전수조사에 바탕을 두고 내용을 보강해 발간한 것이다.

김 이사는 "긴급조치 피해자의 반수는 일반인이고 대다수가 취중에 말 한 마디 잘못해 옥고까지 치른 분들"이라며 "행정력이 있는 국가기관이 나서서 학생 피해자보다 더 힘들게 살았을 가능성이 큰 이 분들에 대한 구술사적 기초 연구와 피해 구제를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진실화해위가 28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대회의실에서 <대통령긴급조치위반사건 재심현황 자료집> 발간을 기념해 긴급조치 관련 단체와 간담회를 하고 있다. ⓒ진실화해위

"긴급조치 관계자 태반이 사망...과거사 정리 속도감 있게 계속해야"

이날 간담회에서는 대선 등 정치적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과거사 정리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진실화해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장영달 민청학련 계승사업회 공동대표는 "한국전쟁 피해자는 물론이고 긴급조치 관계자만 해도 가난에 찌들어 살다 병들고 사망한 이들이 태반"이라며 "속도를 내서 과거사 정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는 "대선 전 1, 2월에 진실화해위가 '지금보다 적어도 10배는 강화돼야 제대로 된 과거사 정리가 가능하다'는 안을 정부에 제시하면 좋겠다"며 "누가 집권하든 과거사 정리를 계속하기 위한 계획을 진실화해위가 제시하지 않으면 앞으로 과거사 정리 작업이 한계에 부딪힐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신대균 민청학련 계승사업 공동대표도 "과거사 정리는 어느 정권에서든 우선순위가 떨어지기 쉽다"며 "과거 민주화 운동 세력들이 과거사 정리를 힘 있게 진행하는 방안을 찾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진실화해위도 협의해 정치 상황의 변화에 영향 받지 않고 과거사 정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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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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