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에 대한 보이콧을 막아야 한다

[현안진단] 바이든 정부의 외교적 이중성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4월 28일 첫 의회연설에서 북한 핵문제를 미국과 세계안보의 심각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동맹과 함께(with our allies)' 외교(diplomacy)와 강한 억지(stern deterrence)를 통해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4월 30일에는 바이든 정부가 대북정책 재검토(review)를 마치고 새로운 대북정책으로 '조정된 실용적 접근(a calibrated practical approach)'을 내놨다.

바이든 정부의 새 대북정책은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정책과 트럼프 정부의 일괄타결 방식의 문제를 조정해 실용적으로 북한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입장으로 평가됐다. 이후 미국의 외교안보라인은 외교적 해법에 문이 열려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 제의를 반복해왔다. 그러나 북한은 이중기준과 대북적대시정책 철회를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대화에 응하지 않았다.

결국 바이든 정부는 출범 후 1년 간 북한을 견인해내지 못했으며, 북·미 간 어떠한 직접적 접촉도 성사되지 않았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약 3년 간 북·미관계가 교착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이 기간 동안 북한은 2018년 4월 선언한 핵실험 및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중지와 핵기술 확산 금지라는 자발적 모라토리엄은 준수했지만, 단거리 발사체 개발을 가속화하고 핵물질 생산을 늘려 핵능력을 고도화했다. '조용하게' 한반도의 핵위기가 고조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바이든 정부가 중국과 전면전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지난 9월 출범한 미국, 영국, 그리고 호주 간 안보네트워크인 오커스(AUKUS)는 대 중국 견제의 성격이 명확하다. 특히 호주가 핵추진 잠수함을 보유할 경우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작전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중국 해군에게 큰 압박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일본, 호주 등 태평양 국가는 물론 영국, 독일 등 유럽의 나토(NATO) 동맹국까지 견인해 수시로 연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이미 영국은 퀸엘리자베스 항모전단을 아시아에 장기 배치하는 계획을 실행 중이다. 모두 중국에 대한 압박전략의 일환이다.

올해 12월 미국 주도로 개최된 세계 민주주의 정상회의(Global Summit for Democracy)와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도 중국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다. 미국은 세계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중국을 제외하고 대만을 초청해 사실상 하나의 중국원칙을 무시했다. 미국은 베이징 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의 명분으로 신장위구르 지역의 인권문제를 내세웠으며, 이미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동참한 상태다.

2024년 하계올림픽/패럴림픽 개최국으로서 최근 오커스 문제로 미국과 관계가 불편해진 프랑스가 정치적 보이콧 참여를 거부하고 있으며, 일본은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미·중 전략경쟁을 격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반면 미국은 한반도 문제해결에 대해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 수행을 요구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반도 정세의 향방은 중국의 국익에 민감한 영향을 미친다. 전 방위적인 대 중국 압박전략을 구사하는 바이든 정부에 중국이 협력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현재까지 바이든 정부의 새 대북정책은 '전략적 인내정책 시즌 2'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입장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수단이 필요하며, 이는 강력한 억제(deterrence) 또는 유인(incentive) 방안이 모색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북제재는 이미 최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추가적인 수단의 활용에 제약이 있고, 북한을 유인하기 위한 새로운 제안도 제시되지 않았다. 지난 1년 간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전 정부보다 진화된 모습을 보이지 못했으며, 사실상 악의적 방관에 가깝다.

▲ 지난 4월 28일(현지 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의회 연설을 가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북핵 프로그램을 두고 큰 위협이 된다고 규정했다. ⓒAP=연합뉴스

중국의 종전선언 참여 의지의 양면성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9월 22일 정례브리핑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해 "중국은 이를 위한 관련국들의 노력을 지지하며 한반도 문제의 중요한 한 나라이자 정전협정을 체결한 당사자로서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류사오밍 중국 정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11월 1일 개최된 한·중 북핵수석대표회의에서 "중국은 한반도 사무의 중요한 당사국이자 '조선정전협정' 체결국으로서 한반도 평화 논의 추진, 종전선언 발표 등 사무에 관해 관련국과 소통을 유지하며 건설적 역할을 하길 원한다"고 발언했다.

11월 2일 개최된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외교담당)의 회담에서도 종전선언과 관련, 중국은 지지를 표명하며 건설적 역할을 할 것임을 시사했다.

중국이 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2018년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질 때도 중국의 입장은 명확하지 않았다.

특히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은 2018년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남·북·미가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언급함으로써 종전선언에 대해 뒷짐 지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의 한반도 종전선언 참여는 양날의 칼이다. 우선 중국의 참여로 종전선언 도출을 위한 동력이 확보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중국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당사자이며, 북한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북한을 설득할 경우 종전선언 도출은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반면 중국이 원하는 종전선언의 성격은 다른 쪽의 어두운 날이다. 미국은 전시작전권 환수와 병행해 유엔군사령부(UNC)의 재활성화(rehabilitation)를 도모해 왔다. 향후에도 미국은 유엔군사령부를 자국 주도의 다자 안보네트워크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한반도 종전선언이 유엔군사령부와 주한미군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으며, 정전체제의 준수를 강조하고 있다.

종전선언은 어느 경우든 한반도 정전체제의 변화를 초래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중국이 자신들에게 부담이 되는 유엔군사령부와 주한미군의 존재를 달가워할 리 없으며, 결국 한반도 종전선언에서 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역설적으로 중국이 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한 자신들의 '건설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의도를 곱씹을 일이다.

중국은 종전선언을 통해 한반도에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이 축소하기를 바랄 것이며, 이는 미국의 입장과 충돌할 개연성이 크다. 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한 중국의 참여의지를 마냥 반길 것이 아닌 이유이다.

대한민국 외교안보의 그랜드 디자인을 논하라

임기 말의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종전선언 도출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시작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견인하는 역할을 수행했지만 결과적으로 실질적 성과도출에 한계를 보였다.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을 통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는 입구를 형성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현 정부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한국의 대선국면을 고려할 때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모두 장기 교착국면에 진입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 종전선언의 도출 여부가 아니라 내용이다. 종전선언은 한국전쟁의 정치적 종식을 넘어 한반도 평화체제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할 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 지난 9월 21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 ⓒ청와대

한·미 간에는 종전선언의 문안조율에 어느 정도 합의된 것으로 보이지만 내용이 알려진 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종전선언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며, 이미 참여의사를 보이고 있는 중국의 의사도 중요해졌다.

문재인 정부가 몇 달의 잔여임기 동안 남북한은 물론 정면충돌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종전선언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현 정부가 한반도 평화의 결정적인 계기가 아닌 성과도출에 집착할 경우, 종전선언 속에서 길을 잃게 될 우려도 있다.

트럼프 정권기 일본은 종전선언 도출은 물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전반에 대해 부정적 영향을 행사했다는 것이 여러 차원에서 확인된 바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 한반도정세 변화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며, 어느 경우든 자신들의 입장이 관철되기를 바라고 있다. 종전선언 도출을 위해 일본의 협력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악화된 한·일관계 속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발 리스크 관리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12월 8일 일본 자민당은 당내에 '대한국정책 워킹팀(WT)'을 구성해 김창룡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에 대한 대항조치, 강제동원 판결과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 문제 등 내년 여름까지 한국 관련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모두 한국을 압박하는 내용들이다.

반면 한국 정부의 대응기조는 찾아보기 힘들다. 김대중 대통령이 김대중-오부치선언을 도출해 일본을 관리하고 남북관계를 추진했었던 이유를 상기할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차기 정부를 책임질 주요 대선주자들의 입에서 한반도 평화에 대한 신뢰할 만한 언급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주요 대선주자들은 남북관계, 한·미관계, 한·중관계, 한·일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한 방향성과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그 필요성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대신 우리는 주요 대선주자들의 입에서 종전선언을 대놓고 반대한다거나 시대착오적인 가쓰라-태프트밀약을 소환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장기교착은 결국 긴장과 위기의 고조로 이어지며, 북한의 핵능력은 날로 고도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당장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돌파구 마련이 절실하다. 이미 한국은 세계 6위의 국방력과 10위권의 경제력을 갖춘 선진국이며, 이에 합당한 당당한 외교안보전략이 모색되어야 한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공간을 뛰어 넘는 한국형 세계전략 구상에도 지혜를 모아야 한다. 주요 대선주자들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정쟁과 네거티브를 넘어 보다 큰 그림의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하며, 그 중심에 한국 외교안보의 그랜드 디자인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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