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1월 16일 첫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비대면이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후 10개월 만이며 양자가 만난 것은 처음이라 국제사회가 크게 주목했다.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가) 이전에 이렇게 격식을 차려 만난 적은 없었다", 시 주석은 "오랜 친구를 만나 매우 기쁘다"라며 예의를 갖췄다. 하지만 본 회담에 들어서면서는 자국의 입장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선례후병(先禮後兵, 먼저 예를 지키고 안 될 때는 무력을 행사함)이었다.
본 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의 우선순위와 의도에 대해 서로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하면서 신장·티베트·홍콩에서의 인권, 불공정한 무역,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대만 방어 등 미 국익 입장에서 짚을 것은 모두 짚었다
. 시 주석은 "서로를 존중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며 상생협력을 추구해야 한다. (상호) 적극적 조치를 취해 관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도, 미국의 무역·인권의 정치화를 비판하고 대만문제 공세를 '불장난'에 비유해 '스스로 불에 탈 수 있다'라며 격하게 반응했다.
한편 양 지도자는 양국 모두 갈등과 충돌이 있어도 통제가능 범위 내에 있어야 한다는 암묵적 인식을 공유한 듯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의 책임은 양국 간 경쟁이 충돌로 번지지 않도록 상식의 가드레일을 필요로 한다"고 했고, 시 주석은 "풍랑 속에 같이 나아가기 위해서는 양국이 키를 꼭 잡고 항로 이탈이나 충돌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양 정상은 기후변화 대응, 백신 협력, 국제 에너지 공급난 해결 필요성을 논의했다. 북한, 아프가니스탄, 이란을 포함한 주요 지역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 비록 양측 간 합의문은 없었지만 이번 정상회담은 미국의 대중 요구 핵심인 '투명'과 중국의 대미 요구 핵심인 '존중'이란 상호 접점을 찾기 위한 첫 시도였다.
시진핑 리더십과 중국의 강성화(强性化)
시 주석은 회담 모두발언에서 "미·중이 각자 국정을 잘 운영하면서 국제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양국 국민의 이익이 증진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년의 중요한 정치일정으로 미국은 민주당과 바이든 행정부의 공과를 평가받아야 할 중간선거, 중국은 차기 국가지도자를 선출하는 20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20차 당대회)가 예정되어 있다.
중국은 양국 모두 국내적으로 현안들이 산적해 있으니 내부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며, 만약 미국이 중국을 동등하게만 대우해준다면 적극 협력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다.
단 중국은 미국이 말하는 공존이 중국이 원하는 '평화로운' 병존이 아니며, 격렬한 경쟁과 대립이 상존하는 상황으로 인식한다. 중국은 미국이 중국의 굴기와 발전을 위협으로 보고 있으며, 미국이 말하는 가드레일은 중국의 영토와 주권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오히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일방적인 '가이드라인'일 뿐이며, 중국의 핵심이익을 위협하는 경계선을 수시로 넘나든다고 본다. 따라서 중국은 핵심이익을 지키기 위해 투이불파(鬪而不破), 즉 전체 틀을 먼저 깨지는 않겠지만 강경 대립과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중국 외교가 점점 강경해지는 첫째 이유로는 시진핑 개인에서 찾아야 한다. 외교는 내정과 리더의 특성을 반영한다. 장쩌민과 후진타오가 '바지사장'이었다면 시진핑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에 지분을 가진 개국공신 시중쉰을 아버지로 둔 '오너' 가족 출신이다.
'진골' 시주석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운명공동체로 일체화하여 당과 국가에 절대적인 충성심과 사명감을 가진다. 공산당 창당 100년(2021년)과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100년(2049년)이란 '두 개의 백년'을 맞아 국가발전 목표, 즉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사람도 아닌 시진핑 본인만이 실행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차있다.
여기에 중국 권력구조 내 시진핑을 견제할만한 인물이나 세력이 부재하는 측면도 작용하고 있다. 이전엔 장쩌민-주롱지, 후진타오-원자바오처럼 투톱 상호 견제 시스템이 작용했으나, 현 리커창 총리는 약체이며 시 주석의 권력 의지는 과히 절대적이다.
시 주석과 리 총리를 제외한 상무위원회의 다른 5명 모두 시진핑의 추종세력이다. 심지어 지난해 당 중앙위원회 회의 소집·의제 결정권을 시 주석에게 몰아줌으로써 권력자로서의 위상과 권한이 더욱 커졌다.
시 주석의 확고한 권력 확립은 이미 중국 내부의 시대적 역사적 추세이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기 때 집중되었던 권력이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기에 집단지도체제로 분산되었다가 시진핑 시기로 들어오면서 재집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엘리트와 인민들도 이를 수용하는 모양새다.
이는 얼마 전 중국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6中全會)에서 '당의 100년 분투의 중대한 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중앙위원회 결의'(역사 결의)로 나타났다. 지난 100년은 마오쩌둥의 '신민주주의혁명기'와 '사회주의 혁명 건설기', 덩샤오핑의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기', 그리고 시 주석 집권 이후의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시기'로 크게 3분된다.
이제 시진핑은 마오와 덩의 반열에 올랐으며,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밝힌 중국몽 실현의 1단계인 2035년까지 권력의 전면이든 무대 뒤에서든 건강에 문제가 없는 한 최고 권력자로서 남게 될 듯하다. 이는 또 시 주석 개인 특색이 농후한 중국 외교·안보 정책이 더욱 강해질 것임을 의미한다.
한국 외교의 가드레일
트럼프 이후 바이든 시기에도 미·중 관계는 여전히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 치열한 모습을 계속 보이면서, 격렬하기까지 하며, 그럴수록 한국은 더욱 압박감을 느끼고, 한국의 미·중 사이 딜레마는 더욱 가중된다. 그러나 실체와 착시 사이에서 우리는 상대의 현란한 말보다는 실제 행동을 주시해야 한다(聽其言而觀其行). 무엇보다 한국도 스스로의 가드레일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 이후 국내외적으로 미·중 대립을 신냉전으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실상은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말한 것처럼 신냉전의 '초입(初入)'에 서있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 듯하다.
신냉전이라기 보다는 신경쟁이며, 바이든의 미·중 시기에도 충돌과 경쟁만이 아니라 협력의 여지도 존재한다. 미·중 관계에서 경쟁과 협력의 비율을 놓고 경쟁의 극정점을 10이라 할 때, 오바마 시기에는 경쟁이 5~6, 트럼프 시기는 8~9, 바이든의 지금은 7 전후라고 볼 수 있다.
미·중 경쟁은 역사 속 늘 있었던 강대국 경쟁이며, 상호불신의 문제다. 미·중 간에도 협력이 불가피한 회색지대가 있는 만큼 우리가 다급하게 미·중 사이 어느 한편에 서야 할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다.
내년 2월로 예정된 베이징 동계 올림픽 때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 가능성과 관련해서 벌써부터 과도하게 우려할 필요는 없으며, 상식의 가드레일에 따라 대응하면 된다. 미국의 동맹국들 다수가 보이콧하게 된다면 한국의 외교적 부담이 커지겠지만 동맹국들과 국제여론을 지켜본 후 결정해도 늦지 않다. 올림픽은 스포츠제전이며 정치와 분리되어야 한다.
정부가 올인하고 있는 종전선언과 관련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9월 유엔 총회 연설이후 최근 한·미·일 3국 외교차관대화에 이르기까지 낙관해도 좋을 결정적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미국은 동맹 한국이 원하기 때문에 원칙적 동의는 하나 적극적이지는 않다. 미국 내 산적한 현안들 속에서 북핵문제는 우선순위가 아니다. 또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 중국을 빛내주는 일을 굳이 하고 싶지도 않다.
중국도 그 어떤 경우든 중국이 빠진 남·북·미 3자만의 종전선언에 동의하기 어렵다. 중국은 종전선언이 정치적 선언이라고 해도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어떤 경우든 당사자로서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한반도에서의 가드레일은 우리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쳐야 한다. 주변국이 쳐놓은 가드레일을 그대로 수용하고 따라가는 것은 남의 길을 가는 것이다. 우리는 장기적 국가발전의 비전과 목표를 갖고 실용주의에 근거하여 지정학적 혜택을 넓힐 수 있는 가드레일을 쳐야 한다. 한국 외교가 이를 뒷받침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같은 시각에서 종전선언 문제는 좀 더 긴 호흡으로 가져가는 것도 한 방안이다. 종전선언이 가지는 효과가 큰 만큼 성사만 된다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렇지 못하다 해도 크게 실망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평화체제와 관련한 관련국들 입장을 조율시키는 것이 더 긴요할 수 있다.
현재 평화체제 용어와 개념은 국가별로 차이를 보인다. 평화체제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추진 범위와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평화체제를 전쟁 종식의 정적 상태로 볼지, 평화구축의 동적 과정으로 볼지, 관련국들 간에 논의의 장과 컨센서스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럴 경우 여타 현안들은 자연스레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2021 미·중 정상회담의 교훈은 바로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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