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 역대 대선은 2007년 17대 대선을 제외하곤 박빙으로 치러졌다. 1997년 15대 대선,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각각 39만 표, 57만 표 차이로 승패가 갈렸고, 새누리당이 승리한 2012년 대선에서도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표차는 3.5%포인트 차이에 불과했다.
박근혜 탄핵 선거였던 지난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됐지만 보수 쪽의 홍준표, 유승민, 안철수 후보의 표를 합치면 진보진영의 문재인, 심상정 후보의 표보다 오히려 많이 득표했다. 그러나 52% 대 47%로 역시 차이가 크지 않았다. 그만큼 선거지형은 양 진영으로 첨예하게 나뉘어져서 치러진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선거일반에서 구도의 중요성은 비단 한국에만 적용되진 않는다. 그러나 한국에서 선거구도는 결정적으로 승패에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정치구도는 근본적으로 분단과 냉전 상황에서 형성된 '독재 대 민주', '산업화 대 민주화' 등의 구도와 무관치 않다.
내년 대선이 양자대결로 치러질지, 다자구도로 치러질지 예측키 어렵지만 당위론의 관점에서 선거 프레임보다 중요한 것은 인물과 정책임은 말 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는 한국 선거에 잘 적용되지 않는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누가 결정될지 알 수 없지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의 유력주자가 여타의 후보보다 결정적 하자가 있음에도 견고한 지지를 보인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이 후보의 장점으로 거론되는 유능함, 추진력 등에도 불구하고 대선 후보 선출 이후에 컨벤션 효과가 없는 것은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때문이다. 그러나 여야 다자대결 구도에서는 여전히 1, 2위를 다툰다. 진영구도에서 여당 후보이기 때문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망언과 결정적 흠결이 터져 나와도 지지율이 출렁이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지지율 하락을 우려해서 더욱 지지층이 결집하는 역설이 양 진영의 지지층 모두에게 존재한다. 물론 이마저도 유권자의 행태이므로 비난할 수는 없지만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서 진영논리는 재작년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화석처럼 굳어졌다. 야당 유력주자인 윤석열 후보의 동력은 문재인 정권과 대척에 있었던 상징자산에서 나온다. 그의 정책과 역사 인식, 공감 능력이 보편적 수준에 미달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야권의 경쟁 후보들이 정책에서의 상대적 우월성과 결점의 부재로 오히려 본선 경쟁력이 있어 보여도 윤 후보에 대한 당심의 지지는 난공불락이다. 이는 인물과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고전적 선거론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여당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 후보의 대장동 사건 연관성 의혹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이 후보를 여당의 대선 후보로 선택했다. 이 후보와 윤 후보는 진영정치의 양극에 존재한다는 공통점으로 그 과실을 톡톡히 누리는 셈이다. 이른바 적대적 공생의 수혜자다.
정치는 현실과 이상, 실리와 명분, 사실과 가치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가는 작업이다. 그러나 선거정치에서 이상과 명분, 가치는 점점 왜소해지고 있다. 이는 결국 민심과 표심의 왜곡을 낳는다. 양대 극단 세력이 정치의 판을 좌우하고 중립지대가 사라진 선거에 실질적 민주주의가 들어설 공간은 협소해진다. 편향을 동원해서 정치권력을 탐하는 반민주 세력들이 득세하는 유사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의 공고화는 언감생심이다.
역대 어느 대선보다 문제적 인물들이 격돌할 가능성이 높은 선거에 중간지대의 유권자들이 기권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시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중도층이 양대 진영으로 수렴하는 것이 일반 선거의 흐름이지만 여전히 줄지 않는다는 조사들이 이를 방증한다.
지난 주말 국민의힘의 김태호, 심재철, 유정복, 박진 등 당의 중진들이 윤 캠프에 합류했다. 전두환 시대를 미화하고, 사과의 진정성조차 보이지 않는 역사인식의 빈곤을 드러낸 후보에게 당내 중진들이 몰려가는 퇴행적 현상은 가치와 규범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권력정치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장동에서 단군 이래 최대의 개발 특혜를 민간 비리 세력이 누렸음에도 이와 연관성이 의심되는 후보를 선택한 집권당 역시 다를 게 없다. 바야흐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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