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부터 카뮈까지..."아빠, 삶의 목적은 말이죠, 죽음이에요"  

[최재천의 책갈피] 미하엘 하우스켈러 <왜 살아야 하는가>, 김재경 옮김

독일 출신 철학자로 영국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미하엘 하우스켈러가 10살짜리 아들에게 물었다. "삶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삶의 목적에 관해서는 생각할 필요도 없는 나이였다.

하지만 아들은 망설임 없이 엄청난 확신을 가지고 즉각 대답했다.

"아빠, 삶의 목적은 말이죠. 죽음이에요."

"왜 그렇게 생각하니."

"무엇이든 결국에는 죽으니까요."

그러면서 덧붙였다.

"하지만 아빠, 죽음의 의미는 삶이에요. 죽음 없이는 삶도 있을 수 없으니까요."

철학자의 아들이라 그랬을까. 아들은 '궁극의 의문'에 대해 자기 생각을 답할 줄 알았다. 이때 궁극의 의문이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루는 의문을 말한다. 이는 "우리 존재의 핵심을 파고드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라는 점에서 궁극적일 뿐만 아니라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는 점에서도 궁극적이다."

저자의 아들뿐 아니라 세상을 살다간 수많은 선지자들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중에는 가장 위대한 작가들과 철학자들도 포함된다. 책은 그런 선지자들이 남긴 저작에서 삶의 의미와 죽음 사이의 관계를 둘러싼 여러 개념과 목소리와 이미지를 엮어가며 그들의 대답이 어땠는지를 탐구한다.

분석의 대상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에서 알베르 카뮈에 이르기까지 10명의 대가다. 이 중 레프 톨스토이를 분석한 한 대목을 가져와보자.

톨스토이의 마지막 소설은 1899년에 출간된 <부활>이다. 노년의 톨스토이가 보기에 의미 있는 삶,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에 이르는 열쇠는 보편적 사랑이었다. 톨스토이에게 있어 보편적 사랑이란 공감이자 연민이자 용서다. 인류가 맺고 있는 형제자매 관계를 경험을 통해 실제적으로 인식한 사랑이다.

하지만 대문호에게도 여전히 죽음이라는 존재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소설 끝 부분에 네흘류도프가 친분을 쌓은 죄수 중 하나가 죽음을 맞이하자 케케묵은 존재론적 고민이 다시 빳빳하게 고개를 치켜든다.

"네흘류도프는 생각했다. '그는 왜 고통을 겪어야 했을까? 그는 왜 살아야 했을까? 이제는 이해할까?' 하지만 답은 없는 것 같았다. 죽음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네흘류도프는 현기증을 느꼈다."

선방의 스님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화두삼아야 할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우리는 늘 잊고 산다. 책은 궁극적 질문과 답변을 찾아가는 방편이자 순례길이다. 생각보다 쉽고 생각보다 즐거운 책이다. 책 머리 부분에 적힌 저자의 명제다.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왜 살아야 하는가> ⓒ추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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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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