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가셔서 돈 걱정 없이 사셔요."
"안타깝습니다. 그저 미안할 따름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더 어려운 이웃을 걱정하신 그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지난 7일 서울 마포 맥줏집 사장 A씨가 자택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년째 지속된 코로나19 사태로 경영난을 겪은 A씨는 죽기 직전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 살던 원룸을 빼고 모자란 돈을 지인에게 빌린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4일 저녁, 기자가 찾은 A씨 가게 문 앞에는 추모의 마음을 담은 꽃다발 여러 개가 놓여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포스트잇 메모도 눈에 띄었다.
포스트잇을 보던 고령의 여성은 "어제 뉴스에서 봤어요. 참 마음이 아팠어요"라며 말을 건넸다. 가게 앞 횡단보도를 지나던 시민들도 꽃다발과 포스트잇을 보며 가만히 서 있곤 했다. 화창한 날씨 탓이었을까. 한 시민의 입에서 "이 좋은 날에…"라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자영업자비대위 "올해에만 20명이 넘는 자영업자가 극단적 선택"
코로나19로 쓰러진 자영업자는 A씨만이 아니다. 지난 12일에는 여수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던 B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B씨는 '경제적으로 힘들다.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15일 강원도 원주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던 C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서 유서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C씨는 평소 지인들에게 코로나19 때문에 힘들다는 고민을 털어놨다고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작년 9월에도 경기도 안양시에서 노래바를 운영하던 자매가 업소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동생은 목숨을 건지고 언니는 숨진 일이 있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과 채무에 대한 부담감 등이 적혀 있었다.
자영업자들의 연이은 죽음 앞에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자영업자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한 제보를 받았다. 비대위에 따르면, 사흘 만에 최소 20명에 대한 극단적 선택 사례를 파악했다. 비대위는 향후 제보 사례를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의 코로나19 자영업자 지원대책, 주요국에 비하면 미비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집합금지 혹은 영업제한 조치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들의 죽음이 줄을 잇고 있지만, 한국의 자영업자 지원 대책은 주요국에 비하면 미비하다.
미국은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지난해 8월과 올해 1월 두 차례 약 400조 원 규모의 급여 보호 프로그램(Paycheck Protetion Progrma)을 가동했다. 1% 고정금리로 500인 이하 소기업 등에 돈을 빌려주되 대출금을 직원의 급여나 임대료 등으로 썼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이를 탕감하는 정책이었다.
유럽도 상황은 비슷하다. 독일은 영업중단 자영업자에게 매출액의 75%, 최대 6700만 원(5만 유로)을 보상했다. 프랑스에서도 상점 봉쇄기간 직원 급여의 84%를 국가가 책임졌다.
일본도 지난 1월 수도권에 코로나19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음식점, 술집 등에 단축운영을 권고하고 영업시간을 단축한 업주들에게 하루 63만 원 가량의 지원금을 지급했다.
지난해 12월 나라살림연구소가 IMF의 '코로나19 대유행 국가 재정 조치 모니터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재정 지출은 GDP 대비 13.6%로 조사대상 10개국 중 가장 낮았다. 이 비율에서 상위권을 기록한 국가는 일본(44%), 이탈리아(42.3%), 독일(38.9%), 영국(32.4%), 프랑스(23.5%) 등이었다.
대출 등 유동성 지원이 아닌 GDP 대비 직접 지원도 GDP 대비 3.4%로 조사대상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상위권은 미국(16.7%), 영국(16.3%), 호주(16.2%), 일본(15.6%), 캐나다(14.6%) 등이었다.
잇단 자영업자 죽음 앞에 높아져가는 자영업자 지원 강화 요구 목소리
코로나19로 경영난을 겪은 자영업자들의 잇단 극단적 선택이 알려지며 한국에서도 긴급재정지원을 비롯해 자영업자를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와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는 14일 서울 여의도 소상공인연합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년 6개월 자영업자들은 66조 원이 넘는 빚을 떠안았고 하루 평균 1000여 개 매장이 폐업했다"며 △ 영업 제한이 아닌 자율적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의 방역 지침 전환 △ 손실 보상 강화 등을 촉구했다.
참여연대도 15일 성명을 내고 정부를 향해 △ 집합금지, 제한 피해 업종 대상 추가적 긴급재정지원 시행 △ 임대인과 임차인, 정부, 금융기관 등의 임대료 분담 강제 등 조치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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