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장기적 자력갱생, 모두에게 위험하다

[현안진단]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북한의 국경 봉쇄조치

코로나 19 발병 직후인 2020년 1월 31일 북한은 세계 최초로 국경을 전면 봉쇄했다. 1년 8개월이 지난 현재 북한은 여전히 문을 닫아 걸은 채 내부결속에만 치중하고 있다.

2020년 10월부터는 비공식 무역거래도 철저히 차단했다. 올해 8월 초에는 물자교류에 한해서 북한과 중국 국경이 열릴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북한 장마당 물가는 수입품을 중심으로 폭등했고, 곡물가격도 평소에 비해 20% 이상 오른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식량부족 현상이 곳곳에서 나오자 군 비축미를 풀었지만,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1990년대 소위 '고난의 행군' 당시보다 더 어렵다는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북한은 코로나를 이유로 도쿄올림픽에도 불참했다. IOC 집행위원회는 도쿄올림픽 불참이 회원국 의무에 반한다며 북한올림픽위원회의 자격을 내년 말까지 정지시키는 징계를 발표했지만 북한은 반응이 없다.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코로나 방역 지원을 포함한 대북 인도적 지원 용의를 밝히고 있는데도 북한은 묵묵부답이다.

지난 7월에는 북한이 66쪽 분량의 지속가능 발전목표에 대한 '자발적 국가검토'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 보고서에서 이례적으로 식량 부족은 물론 의료보건시설, 전력 및 농업 인프라 공급 등이 미진하다고 밝혔다.

7월 27일에는 남북 통신연락선을 전격 연결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에도 나서는 듯했다. 오랜 봉쇄조치로 궁지에 몰린 북한이 마치 한국 및 국제사회의 지원을 바라며 손짓하는 듯했다. 그러나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을 이유로 통신선을 연결한지 14일 만에 다시 일방적으로 차단했다.

한편 IAEA는 8월 27일 북핵 관련 연례보고서에서 북한이 7월 초부터 영변 핵 시설 내 5MW급 원자로의 재가동 및 영변 원자로 인근의 폐연료봉 재처리 시설인 방사화학연구실을 가동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히면서, 이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명백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과 미국은 즉각 우려를 표명하고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해법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북한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오히려 9월 11일과 12일에 걸쳐 장거리 순항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반면 북한은 내부적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달성을 강조하는 군중대회를 연이어 개최했다. 73주년 9.9절 행사에서는 민간 및 안전무력을 중심으로 열병식을 했다.

정규군은 빠진 채 각 단위의 노농적위군 및 사회안전성 등 간접무력만 참가한 열병식을 처음 선보였다. 자력갱생을 강조한 경제개발계획 목표의 달성을 다그치는 결정판인 듯했다.

행사에 등장한 김정은 위원장은 단기간의 체중 감량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70년대 김일성 주석의 모습을 연출했다.

9.9절 직전에 개최한 당 정치국 전원회의에서는 비상방역 실패를 이유로 강등됐던 군 인사들을 좌천 2개월 만에 승진 복귀시키는 등 군 수뇌부의 공백을 신속하게 정비했다. 박정천은 정치국 상무위원 및 당 중앙위 비서로 승진하며 리병철 퇴진 이후 공석이었던 군 서열 1위 자리에 올랐다.

▲ 김정은(가운데) 북한 국무위원장이 9일 0시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공화국 창건 73돌 민간 및 안전무력열병식'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왼쪽부터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조용원 당 중앙위원호 조직비서, 박정천 당 정치국 상무위원, 김덕훈 내각총리. ⓒ로동신문

'자신들의 길을 가겠다'며 선을 넘기 시작한 북한

이제 북한이 대화테이블에 복귀할 때가 됐다는 국제사회의 기대와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북한은 '우리 길을 간다'는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북한은 대미 대화를 유도하기 위해 군사적 도발을 할 것이다', '식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명분을 제공하면 대화테이블로 복귀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대화분위기를 만들 것이다' 등등 기존 프레임에 맞춘 북한 행동에 대한 예측과 그에 따른 대응은 번번이 빗나가고 있다.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같은 해 12월 북한은 '새로운 길'을 천명했다. 미국과의 관계개선은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으므로 그 기간 동안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전을 전개하겠다고 했다. 미국 스스로 북한이 수용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서 대화를 제안하면 받아들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들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 리뷰를 마치고 북핵문제를 외교로 풀어나가겠다는 입장을 전달했음에도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또한 북한은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 시험발사 성공을 공개하며, 이는 "당 제8차대회가 제시한 국방과학발전 및 무기체계개발 5개년계획 중점목표달성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전략무기"라고 밝히면서 경제부문 뿐 아니라 군사부문에도 5개년 계획이 있음을 알렸다.

남한에게는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과 '전략자산 도입 중단'을 결심하면 '봄날'이 다시 올 것이라고 구체적인 전제조건을 내세웠다. 갑작스럽게 통신선을 연결하더니 한미 연합 훈련을 빗대서 '배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일방적으로 끊었다. 반면 중국, 러시아, 베트남, 쿠바 등 구 사회주의권 국가들과의 긴밀한 연대를 강화하는 움직임도 두드러진다.

내부적으로는 60~70년대식 자력갱생을 강조한다. 외부 의존도가 올라가면 독자성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이유다. 북한의 자력갱생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부존자원과 극도로 통제된 인적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경제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내부 결속이 가장 중요하다. 김정은 위원장은 "다시 고난의 행군을 선택했다"고 역설하면서 결속에 집중하고 있다.

9.9절 행사에서는 정규군을 배제하고 민간 및 사회안전 부문의 열병식을 하면서 정면돌파전을 위한 국가경제개발 5개년 계획 및 2021년 인민경제계획 완수를 강조했다. 1980년대 공업제품이 부족해지기 시작하면서 나왔던 8.3인민소비품 생산운동을 다시 전개했다.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거듭된 자연재해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도움을 거부한 채 자체 힘으로 복구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농업부문에서도 올해의 알곡생산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비록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식량부족을 토로했지만, 수치상으로는 1990년대 100만 톤 대의 자체 생산량과 비교할 때 4배 이상 증가한 곡물을 생산하고 있는 셈이다. 이 정도면 외부의 도움 없이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듯하다.

외부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핵무력을 강화하는 일도 계속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종래 북한의 능력을 과시하는 핵실험 등은 자제하는 반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고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시험발사하며, 이른바 '핵무력의 고도화'라는 위험한 행동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강력한 전략수단으로 위기경보 이전에 반전의 기회를 열어야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북한의 행동은 과거 '벼랑끝 전술'을 장기전에 적용시키는 듯하다. 그런데 '벼랑끝 전술'식의 자력갱생은 장기화될수록 스스로에게는 물론 국제사회에 위험하다.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은 서서히 방역위주에서 백신 및 치료제의 개발과 확산에 힘입어 '위드(with) 코로나'로 전환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는 폐쇄가 지속됨으로써 이에 따른 고립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 방역은 물론 백신 및 치료제 공백상태로 인해 이제는 설사 북한이 문을 연다고 하더라도 상당 기간 고립이 불가피하다.

북한은 코로나로 인해 도쿄올림픽에 불참했고, IOC 집행위원회는 사실상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참가를 불허한다는 의견을 냈다. 방역의 불모지대인 북한이 참가하겠다고 하면 중국의 입장도 곤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전에 차단한 IOC의 고심을 읽을 수 있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 폐쇄가 지속되는 것은 단지 북한의 폐쇄 뿐 아니라 중국에서 국경을 차단한 면도 강하게 작용한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 이전에 코로나 청정지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 시점에 북한 입장을 배려하여 국경을 열기에는 위험부담이 클 것이다.

미-중 대결은 심화되고 있지만 일종의 타협점을 찾기 위한 노력도 병행되고 있다.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 중국은 미국이 중국의 핵심가치를 건드리지 않을 경우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는 미국과 공조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북한이 '핵무력의 고도화'를 지속할수록 사회주의 연대는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팬데믹 극복을 위한 전 세계적 노력에 지금 동참하지 않을 경우 북한의 장기적 자력갱생은 타의에 의해 무한정 이어질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의 생활고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명약관화하다. 1990년대 이후 북한주민들은 장마당을 통해 생존해 왔다. 30여 년이 지난 현재 장마당은 북한 주민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장마당에서는 북한산 제품뿐 아니라 외국산 제품들이 유통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북한의 대외의존도는 10%에서 30~40%로 높아졌다. 북한경제와 외부경제의 연계성이 높아진 것이며, 북한 주민들은 이에 익숙해졌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걸고 과거로의 회귀를 강조함에 따라 북한 주민들은 갑작스런 생활고에 직면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에 직면했던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울 것이다.

당시 북한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주민들이 국경을 넘는 엑소더스를 경험한 바 있다. 북한당국은 자력갱생을 자신하고 있겠지만 주민들의 실생활은 정치적 구호와는 동떨어져 있다. 장기화될수록 액소더스의 가능성은 점증하기 마련이다.

북한이 핵무력을 고도화하는 행동은 심각한 문제다. 북한 핵문제는 단순히 개발을 억제하는 단계를 넘어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북핵 문제는 이제 북한이 주장하는 '억지력'만으로 끝날 수준이 아니다. 북한이 핵능력을 고도화할수록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불안감은 고조되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만일 북한이 핵연료를 이용한 원자력 발전에도 손을 대기 시작한다면 한반도 지역의 위험은 더욱 높아지기 때문에 가장 시급하게 다뤄져야 할 사안이다.

이렇듯 북한이 자의적 자력갱생을 장기화할수록 한반도의 위험은 심화된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소극적 방임(benign neglect)을 연상케 한다.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고 있지만 적극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 '눈치보기'라는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북한의 자력갱생 행보에 대해 북한이 지치면 손들고 나올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기저에 깔고 있는 듯하다.

한국과 국제사회는 무엇보다 북한의 핵활동 재개에 강력하게 대처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북한이 영변 핵활동을 재개한 것은 내부적 필요성도 있겠지만, 미국과의 협상재개를 위한 은근한 자극일 수도 있다.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는 미국에 대해 유지해 오던 장거리 미사일 모라토리엄을 거둬들이는 것이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남북 통신선을 재개통하고, 단절시킨 행동 역시 미국과의 대화 재개를 염두에 둔 행동일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하노이 회담 수준에서 대화를 재개할 의지를 표명한 바 있지만, 대화재개의 선의만을 공허하게 외칠 것이 아니라, 북한의 핵활동 재개에 강력한 대응을 병행해야 한다. 그것이 당근이든 채찍이든 강력해야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은 영변 핵시설에 대한 외과수술적 공격을 결정한 상태였고, 국제사회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 결과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은 확고한 한·미·일 동맹을 강조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미국과 일본이 적극 받쳐주었고 이를 기반으로 성과를 거뒀다.

2018년 2월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는 2017년 상반기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군사 공격 위협으로부터 씨앗이 뿌려졌다. 이렇듯 한반도 문제는 강력한 당근과 채찍으로 반전의 계기를 맞이하곤 했다.

북한의 자력갱생 고집은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당시의 위기에 버금갈 정도로 위태롭다. 우리는 그 위기를 사전에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실제 위기가 도래했을 때는 이미 위기대응의 적기를 놓친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떤 당근과 채찍을 동원해야 하는지는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다만 기존과 같이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점을 찾을 경우 북한을 대화테이블로 이끌어 낼 수 있는 반전의 기회는 오기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위기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게 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위험의 강도는 커질 것이다. 지금은 위기경보가 들어왔음을 절감하고 보다 적극적이고 강력한 전략 수단을 동원해서 위기를 사전에 차단하고 극복하기 위한 행동을 취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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