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구직자 A씨는 지난해 2월 한 공공기관으로부터 행정보조 업무 담당자로 합격했다는 통보를 들었다. 가족 등 주변에 공공기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알리고 다니던 아르바이트도 관두고 출근을 준비했다.
그러던 A씨는 출근 첫날 채용 취소를 통보 받았다. '경영이 어려워 미안하다'는 말이 담당자가 댄 이유의 전부였다. 갑작스런 취소 통보에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지만 이에 항의하기도 어려웠다.
A씨는 "경영상 어려움이 갑자기 생기지는 않을 텐데 출근 날 채용 취소 통보를 받아 황당했다"며 "아무리 구직자가 약자라고 해도 엉터리로 채용 절차를 진행하고 일방적으로 취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20대 구직자 B씨는 지난 5월 한 기업으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다.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3주 동안 교육을 받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교육비는 사후에 지급받기로 했다. 부산에 살던 A씨는 집까지 구해 회사가 있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나 3주간 교육을 받은 뒤 배우지도 않은 내용으로 테스트가 시행됐고 A씨는 교육생 5명과 함께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교육비 차별도 있었다. 합격자에게는 5만 원, 불합격자에게는 1만 원의 교육비가 지급됐다. 교육기간 식대와 교통비 등은 따로 책정되어 지급되지 않았다.
교육기간 채용 취소 통보를 받은 뒤 B씨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B씨는 "취업이 된 줄 알았다 취소되는 일을 겪어 억울했고 자존감도 하락했다"며 "해당 기간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그 사이 다른 회사에 지원할 기회도 잃었다"고 말했다.
다른 회사 지원 기회 놓치고 소득 공백 경험하는 채용 취소 피해자들
청년 구직자들이 회사의 일방적인 채용 취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하고 꿈꾸고 저항하는 청년들의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이 지난 5월 5일부터 6월 9일까지 구직경험이 있는 청년 280명을 대상으로 채용 취소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채용 취소 제보센터'를 운영하며 청년 구직자의 채용 취소 피해 사례를 수집하기도 했다.
청년유니온의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72.9%(204명)가 채용 취소에 대해 듣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채용 취소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피해 내용에 대해서는 56.4%(158명)가 '다른 기업 지원 및 입사 기회를 놓침'이라고 답했다. 그 뒤는 '소득 공백으로 인한 생활비 부족' 42.1%(118명), '구직 의욕 상실' 21.7%(61명) 등이었다.
청년유니온이 수집한 사례에서 채용 취소 통보 유형은 △ 이유를 밝히지 않은 일방적 통보 △ 교육기간 중 통보 △ 코로나19를 이유로 한 통보 △ 이직 과정에서 통보 등으로 나타났다.
채용 취소 피해자 중에는 채용이 취소된 뒤 같은 회사에서 또 채용 공고가 난 것을 발견했다는 이도 있었다. 애초 공지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교육 혹은 채용 절차를 진행한 뒤 합격이 취소돼 피해를 입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직 과정에서 채용 취소를 통보받았다고 한 피해자 중 한 명은 "합격 통보를 받고 나서 다니던 회사에 이를 알리고 퇴사했는데 취소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관련 법 제도 있지만, 현실에서 구제는 쉽지 않아
채용 취소 피해자가 구제받을 방법 중에는 법적 절차는 있다. 근로기준법(근기법) 상 채용 취소는 해고다. 법원과 고용노동부의 일관된 입장은 근로계약서 작성 여부와 무관하게 회사가 직원에게 합격을 통보한 시점부터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근기법에는 '사용자는 노동자를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다. 합격 통보 뒤 출근을 시작하지 않은 '채용 내정자'의 합격을 취소하는 것도 해고에 준하므로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해고할 때 해고 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도록 한 근기법 조항 역시 채용 취소자에게도 적용된다.
채용 취소 과정에서 이 같은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면, 채용 취소 피해자는 관할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채용 취소 피해자의 재채용 등 완전한 구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노동부 진정이나 소송 등을 통해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도 인간관계가 전혀 형성되지 않은 새 회사에 출근해 제대로 적응하며 일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청년유니온의 실태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9.6%(139명)가 채용 취소 및 지연을 당했을 때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할 것 같다'고 답했다.
"기업에 채용 취소 피해 보전 책임 물리고 '채용 취소 = 해고'라는 점 알려야"
이같은 현실 앞에 채용 취소 피해를 줄이려면, 피해 보전과 관련해 기업에 더 강한 책임을 물리고 애초 채용 취소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법 제도 및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이채은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기업이 구직자의 채용을 취소하는 경우 근로기준법 상 휴업급여에 준하는 수당을 지급하게 하는 조항을 명문화하는 등 채용 취소 피해 보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다른 회사 입사 기회 박탈, 소득 공백 등으로 인한 구직자의 경제적 피해에 대한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채용이 취소됐을 때 해고에 준하는 법적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인식을 제고하고 채용절차법 상 기업이 채용과정을 고지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도 있다"며 "이렇게 하면 정당한 이유 없이 채용을 취소하거나 갑작스럽게 교육 과정이나 평가 절차가 바뀌어 채용이 취소되는 일은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청년유니온은 오는 26일 채용 취소 사례와 개선 방안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여는 등 앞으로 채용 취소 피해를 줄이기 위한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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