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오는 13일 감옥에서 풀려난다. '경영권 승계 등을 도와달라'며 회삿돈 86억여 원을 횡령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지난 1월 서울고등법원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207일만이다.
이와 관련, 이번 가석방 심사를 앞두고 이뤄진 법무부의 심사 기준 완화를 둘러싼 특혜 논란과 '국정 농단' 범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 가석방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9일 가석방심사위원회(가석방위) 비공개 회의를 열어 광복절 가석방 심사를 진행했다. 이 부회장을 포함 수형자 810명이 가석방 적격 판정을 받았고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이를 승인했다. 이들에 대한 가석방은 광복절 연휴를 앞둔 오는 13일 시행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날 광복절 가석방 브리핑에서 "저는 장관으로 취임한 이래 지속적으로 가석방을 확대하겠다고 국민 여러분께 약속했다"며 "이번 가석방도 우리 경제 상황 극복에 도움을 주고 코로나19 감염에 취약한 수형시설의 상황을 고려해 허가 인원을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경제환경에 대한 고려 차원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가석방 대상에 포함했다"고 밝혔다.
가석방위는 범죄 동기, 재범 위험성, 교정 성적 등을 고려해 수형자의 가석방 적격 여부를 심사하는 기구다. 심사위원의 의견이 엇갈릴 경우 표결로 적격 여부를 정한다.
이번 가석방위는 총 9명으로 구성됐다. 강성국 법무부 차관이 위원장을 맡고, 법무부 내부 위원으로 구자현 검찰국장, 유병철 교정본부장, 윤웅장 범죄예방정책국장이 참석했다. 외부 위원은 윤강열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김용진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 등 5명이었다.
가석방 뒤 이 부회장이 당장 경영에 복귀할 수는 없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상 5억 원 이상 횡령·배임 혐의로 유죄를 받은 자는 해당 범죄와 관련된 기업에 형 집행 종료일로부터 5년간 취업할 수 없다. 이 부회장도 지난 2월 법무부로부터 취업제한 대상 통보를 받았다.
이 부회장의 취업제한이 풀리려면, 법무부 특정경제사법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거주지, 해외 출국 제한도 적용된다. 가석방은 형을 면제하는 사면과 달리 구금만 풀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역율 60%, 두 개 재판 받고 있는 상황에서 가석방 결정
이 부회장의 가석방에 대해서는 '심사 자체가 특혜'라는 논란이 있었다. 법무부가 광복절 가석방 심사를 앞두고 심사 기준을 낮춘 데 따른 것이었다.
형법에 따르면, 형기의 3분의 1이 지나야 가석방이 가능하다. 하지만 법무부는 실무상 주로 형기 80% 이상을 복역한 수형자에 대해 가석방을 허가해왔다.
지난 5월 법무부는 복역율 60~70%인 수형자도 가석방자에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복역율은 지난 7월 말 60%를 넘겼다. 지난 1월 파기환송심 이후 수감기간에 2017년 8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353일을 더해서였다.
이 부회장이 프로포폴 불법 투약,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등 다른 범죄 혐의와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가석방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시민사회 "뉘우침 없고 재범 가능성 높은 재벌 총수 가석방 안 돼"
시민사회에서는 이날 '이 부회장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재범 가능성이 커 가석방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1056개 시민사회단체는 가석방 심사가 시작되기 직전 정부 과천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부회장은 법무부의 취업제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등기 임원직을 유지하며 죄를 뉘우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며 "가석방 제도의 취지와 조건에 맞지 않는 인물을 국민 공감 운운하며 가석방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사망을 선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 부회장은 현재 진행 중인 재판(프로포폴 투약,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며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범죄 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중대한 경제범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가 가석방되면 경제권력을 이용한 정경유착과 국정농단의 역사는 되풀이될 것"이라며 "만약 문재인 정부가 가석방위를 앞세워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승인하는 꼼수를 저지른다면 국민의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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