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선생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여기저기 바쁘게 쫓아다녀 보지만 구멍 난 가슴은 여전히 휑하니 구멍 난 채로 남아있습니다. 그립다는 말도 보고 싶다는 목소리도 김종철 선생님을 향한 제 마음을 표현할 순 없습니다. 이런 마음이 어찌 저 하나만의 마음이겠습니까. 선생님께서 걸어오신 길 그 발자욱마다 남아있는 삶의 향기가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명진 스님)
"선생은 여러 글과 강연에서 늘 '근본적'이거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설명과 성찰, 또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해답과 대책을 찾고자 했다. 설사 많은 이들이 "비현실적"이라거나 "이상적"이란 딱지를 붙여도 선생은 오히려 그런 현실주의적 태도야말로 (파멸을 향해 치닫는 현실을 도외시하니) '비현실적'이라 맞받아쳤다." (강수돌 전 고려대 교수)
생태사상가 고 김종철 선생이 떠난 지 1년이 되는 날, 그의 삶과 사상을 짚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김종철 선생 1주기 준비모임'은 2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우리의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명칭으로 김종철 선생 1주기 추모 행사를 열었다.
추모 행사는 생전 김 선생과 인연이 있던 이들이 김 선생과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1부와 김 선생의 사상과 문학을 들여다보는 2부로 나눠 진행됐다.
불가능한 꿈을 꾸고, '우정'과 '환대'를 중시한 사람 김종철
1부에서 명진 스님은 <녹색평론> 창간 직전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위악(僞惡)을 섞어가며 김 선생과 나눈 대화를 꺼내며 불가능한 꿈을 꾸던 사람, 김종철에 대해 이야기했다.
명진 스님은 또 "선생님은 극락을 꿈꿨다. 사람이 사람답게, 생명이 생명답게 사는 극락을 꿈꿨다"며 "극락이 멀겠나. 먹을 게 모자라도 서로에게 떠먹여주면 극락이고 넘쳐도 서로 다투면 지옥"이라고 말했다.
명진 스님은 "선생님은 불가능함으로 알면서도 꿈을 놓지 않았다"며 "기억하며 또 기억하며 부끄럽게 살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을 맺었다.
한때 김 선생의 직장 동료였던 이승렬 영남대 교수는 현재 인하대에서 재직 중인 박혜영 교수와 '삼총사'를 이뤄 영남대에서 김 선생과 생태주의적 활동을 벌이던 기억을 꺼냈다.
이 교수는 "매일 저녁을 같이 먹고 맥주도 한 잔 같이 하고 하면서 생긴 친밀감과 우정을 토대로 일을 많이 벌였고 저희(이 교수와 박 교수)는 선생의 손발이 돼서 번역하라면 하고 준비하라면 하고 했다"며 "돌아보면 그때 선생님이 가장 행복했지 않았나 싶고 제 개인으로도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교수는 "그때 우리가 나눈 우정과 우애, 친밀감이 희망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생전 "우정"과 "환대"라는 말을 좋아했던 김 선생의 뜻을 받아 안고 힘닿는 한 불의와 싸우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비관 속 낙관의 사상가, 전환의 문학인 김종철
2부에서는 녹색평론의 자문편집위원인 강수돌 전 고려대 교수와 시인인 이문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각각 김 선생의 사상과 문학을 들여다봤다.
강 전 교수는 <김종철 사상의 핵심 : 현실과 비현실의 변증법>이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김 선생의 사상을 7개의 키워드로 요약해 설명했다.
7개의 키워드는 근대 자본주의 산업문명, 자유 경쟁 시장, 무한 경제성장, 농민·민중 자치, 공생공락의 우애 공동체, 순환적 생활방식, 풀뿌리 민주주의다.
이 중 근대 자본주의 산업문명, 자유 경쟁 시장, 무한 경제성장은 김 선생이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삶의 고통의 근본 뿌리로 지목한 것들이다. 농민·민중 자치, 공생공락의 우애 공동체, 순환적 생활방식은 김 선생이 생각한 근원적인 대안이다. 마지막 풀뿌리 민주주의는 대안을 실현하기 위한 "강력한 엔진"이다.
김 전 교수는 김 선생에 대해 "거시적인 비관 속에서도 미시적인 낙관을 하고 있었다"며 "현실을 비판하고 직시하면서도 비현실적이고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실험하고 상상하는 '현실과 비현실의 변증법'을 작동시키는 방법론을 갖고 있었"던 사상가로 평했다.
이 교수는 <김종철 문학의 '큰 마음' : 샤먼의 영혼, 땅(農)의 노래>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김 선생의 문학을 살폈다.
이 교수는 김 선생 문학의 모태가 된 성장기의 경험으로 1960년 3·15 부정선거 당시 정부 편을 들며 거짓말을 하는 교사를 봤던 일과 학교에서 농촌봉사 활동을 갔다 군인에게 맞는 교사를 본 일을 지목했다. 이 두 경험이 불의(不義)와 불인(不仁)이 뒤엉킨 기성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김 선생의 "깐깐한 정신"의 뿌리가 됐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어 김 선생의 문학세계가 백석, 신동엽, 김수영 등 1930년대 한국문학과 영국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를 만나며 크고 깊어졌다고 진단했다. 이 중 블레이크는 김 선생이 "억압적 부르주아 체제에 대하여 가장 근본적인 비판에 도달한 근대 최초의 지식인이자 사상가", "있는 그대로를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이라고 평한 시인이다. 흑인의 권리를 주장한 미국 작가 리처드 라이트, 탈식민론으로 유명한 프란츠 파농, 김 선생이 미국 유학 시절 조우한 생태사상가 루돌프 바로 등도 김 선생의 문학에 큰 영향을 줬다.
이 교수는 또 김 선생의 문학과 실천이 <녹색평론> 발간 이후 새로운 차원을 맞이했다며 김 선생의 문학을 "전환의 문학". "근대문명을 넘어 생태문명으로 전환하는 모든 과정과 모든 부문에 적극 개입하는 모든 형태의 문학"이라고 평했다.
김 전 교수와 이 교수의 발제문 전문은 다음 호 <녹색평론>에 게재될 예정이다.
한편, 이날 현장에는 김정현 <녹색평론> 발행인, 나희덕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염무웅, 임재경 전 <한겨레신문> 부사장, 조성옥 수녀,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등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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