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얼굴이 얇으면 못한다는 말이 있다. 뻔뻔해야 정치를 잘 한다는 이야기다. 정치인의 뻔뻔함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나쁜 뻔뻔함은 권력을 갖고도 부끄러움이나 수치심 같은 걸 못 느끼는 거다. 좋은 뻔뻔함은 약자를 지켜주려는데 잘 안 되고 그걸 뚫기 위해 아쉬운 소리도 하게 되는 데서 오는 굴욕과 좌절. 이런 걸 이겨내는 대담함이다.
좋은 뻔뻔함이 어디서 길러질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좋은 친구를 만나 좋은 일을 도모하고 결속하는데서 길러질 수 있는 것 같다. 사람은 모이면 더 용감해진다. 수강생 여러분을 보며 노회찬정치학교가 그런 좋은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곳, 좋은 정치의 토양이 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난 4월 시작한 노회찬정치학교가 6주간의 장정을 마치고 첫 심화과정 졸업생을 배출했다. 29일 노회찬재단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김윤철 노회찬 정치학교 교장은 수강생들에게 위와 같은 말을 전했다.
지난 6주, 2030 세대 10명의 수강생은 노회찬의 정치, 정책과 전략기획, 의제설정 등에 대해 토론하고 강의를 들었다. 박창규 전 노회찬 의원 보좌관, 오건호 전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위원장 등 전문가들이 이 과정을 함께 했다.
'좋은 친구를 만나 좋은 일을 도모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정치학교 심화과정 1기의 조별활동은 수강생들이 세 개의 팀을 만들고 정치, 사회, 경제 분야의 정책을 상상하고 기획하는 것이었다. 김혜련 전 고양시 의원, 김희서 구로구 의원, 이동영 전 관악구 의원 등 세 명의 전, 현직 지방의원이 '길잡이'로 활동하며 이를 도왔다.
정치학교 심화과정 1기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주로 줌을 통해 이뤄져왔다. 이날 졸업식은 수강생 전원이 처음으로 직접 만난 자리였다.
시민교육에서 기후위기 대응까지...노회찬 정치학교 수강생들의 정책 제안
졸업장을 받기 전 수강생들이 통과한 마지막 관문은 조별 활동을 통해 준비한 정책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시민교육에서 기후위기 대응까지 다양한 정책 제안이 나왔다.
정치 정책을 기획한 '꿈꾸리('꿈꾸는 리얼리스트'의 약자)'팀은 '기후위기 활동가 툰베리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을 주제로 한 상황극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극의 주인공은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고 시민활동가로 살고 싶어 하는 청소년 '주디'였다. 극 속에서 주디는 교사와 부모 모두에게서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라'는 쓴 소리만 들었다.
꿈꾸리팀은 상황극에서 드러낸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진학을 강조하는 한국의 공교육 체제를 비판하며 정치나 시민사회 영역에서 활동하려는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시민활동 및 시민교육지원법' 제정을 제안했다.
시민교육법의 주 내용은 △ 민주시민교육 정규 교과 편성 및 입시에 논술 교과로 채택 △ 시민활동가를 존경받는 직업으로 만들기 위한 시민사관학교 설립 △ 청소년 보편복지를 통한 민주시민 육성 기본 환경 마련 등이었다.
경제 정책을 준비한 '업사이클럽'팀은 기후위기가 고용위기로 이어질 미래를 우려했다. 재생에너지 전환과 전기차 보급이 기존 화석연료 발전 산업, 내연기관 산업 등의 일자리 감소를 불러올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업사이클럽팀은 기후위기로 인한 산업 전환에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한 정책으로 '노동영향평가제' 도입을 제안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산업 전환을 설계할 때 지역사회 영향과 탄소배출량 감소는 물론 일자리 증감, 소득 변동, 전환 재배치 방안 등을 평가해 이를 전환 과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아이디어였다.
정부에 노동영향평가를 전담할 '노동영향평가원'을 신설하고, 평가를 바탕으로 실제 전환 과정을 논의할 사회적 합의기구 '정의로운 전환 위원회'를 설치하자고 하기도 했다.
사회 정책을 준비한 뱃지팀은 기후위기로 인한 고통이 빈곤층부터 덮치는 현실을 지적했다. 예컨대, 한국사회에는 소득이 낮아 냉방장치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이들이 에너지 효율이 낮은 노후주택에 살며 폭염으로 고통 받는 현실이 있다는 것이다.
뱃지팀은 기후위기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빈곤층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려면 에너지 불평등 해소, 온실가스 감축,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일자리 창출의 세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며 '국민 기초 에너지권 보장법'과 관련 지역 조례 제정을 제안했다.
법과 조례에는 △ 각 주택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설치할 수 없는 집에는 태양광 발전을 하는 '마을에너지관리소'를 통해 에너지 공급 △ 태양광 패널 유지보수 인력 고용을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을 담았다.
애정 담겼지만 날카로운 평 남긴 심사위원들
수강생들의 발표가 끝난 뒤에는 심사가 이어졌다. 심사위원들은 마지막까지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애정이 담겼지만 날카로운 평을 남겼다..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는 먼저 정책 설계의 일반론을 설명했다. 정책 제안에는 관련 법규와 예산의 검토, 해결하려는 문제를 이대로 두면 안 된다는 설득, 정책 실행 이후 변화할 미래상과 관련한 '희망'의 전달, 정책 실행 과정에서 예상되는 갈등의 해결 방안이 담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 이사의 평가도 이 같은 관점에서 이뤄졌다. 예컨대 '노동영향평가제' 발표에 대해서는 비슷한 제도인 고용영향평가제에 대한 검토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시민교육법' 발표에도 각 광역시도가 민주시민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법이 필요한 이유를 보다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장은 "전략적 관점의 보완"을 주문했다. 정책을 제안할 때는 대중의 관심 유도, 관료 설득, 차별화 등 정책의 목적이 무엇인지, 협상 과정에서 무엇을 내줄지와 같은 문제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사회운동적 활동의 적용 방안이 담겼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열띤 발표와 심사가 끝난 뒤에는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조 이사장은 수강생들에게 '직접 만나 반갑다'는 인사를 전한 뒤 "정말 멋진 발표를 했다. 심사위원들이 한 마디도 못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번에는 심사위원에게 발표를 시키고 여러분과 함께 평가하는 자리를 가지면 좋겠다"고 농담을 던졌다.
조 이사장은 "수강갱 여러분을 보며 제2, 3의 노회찬이 금방 나오겠다고 느꼈다"며 "그렇게 느끼게 된 데는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도와준 김윤철 교장과 오진아 교감, 길잡이 역할을 해준 세 분의 노력이 있었고 이에 대해서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제2, 제3의 노회찬이 금방 나올 것 같다"
발표와 심사, 조 이사장의 인사말이 끝난 뒤에는 재작년 9월과 작년 9월 각각 진행된 노회찬정치학교 1, 2기 졸업생들의 축사와 오재영추모사업회의 장학증서 수여, 길잡이 역할을 한 전‧현직 지방의원 세명에 대한 감사장 수여가 이어졌다.
이후 수강생들은 졸업장과 함께 <음식천국 노회찬>과 맛집 지도, 노회찬 사진집, 정진임 정보공개센터 소장이 선물한 책, '멋진 진보'의 상징인 선글라스 등이 에코백을 선물로 받았다. 에코백에는 6411버스가 그려져 있었다.
졸업식이 끝난 뒤에는 노회찬재단이 수강생들에게 6주 간의 교육 과정을 통해 느낀 바와 이후 정치학교에 입학하려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김가영 씨는 "정치가 멀리 보였고 정치인도 멀리 있는 사람 같았다"며 "정치학교에서 실제 지방의원을 멘토로 만나 친해지니 신기했고 (교육과정과 정책 제안 경험을 통해) 정치를 한발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된 점도 좋았다"고 말했다.
백상진 씨는 "사회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내고 정책을 만들고 표현하는 일이 굉장히 어려웠다"며 "노회찬 의원이 갖고 있던 평범한 견해를 비범하게 전하는 능력이 특별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백 씨는 "힘든 만큼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다"며 "좋은 정치를 발견하기 어려운 시대에 노회찬이라는 좋은 레퍼런스(reference)를 바탕으로 이를 고민하려는 사람들에게 정치학교 입학을 추천하고 싶다"고 당부했다.
정치학교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김 교장은 "정치학교는 향후 인간적 시민적 삶의 질 향상과 문명전환을 위한 인문사회, 예술, 과학기술적 소양 강화에 초점을 둔 기본교육과정, 그리고 사회극 교육모델에 기초한 현장실천형 심화교육과정의 경험 축적을 통해 예비 정치지도자 혹은 정치지도자 육성 전문과정 개설을 모색코자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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