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지재권 면제', 혁신보다 사람의 생명이 우선

[박병일의 Flash Talk]

글로벌 제약사 입장에서 치료제·백신 등과 같은 신약 개발은 상당한 자금과 시간이 요구되는 부담스러운 과정을 수반한다. 가령 하나의 약품을 개발해서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는 무려 평균 8억 불(한화 약 8900억 원)에서 13억 불(한화 약 1조 4000억 원)의 비용이 투입되고, 통상 10년에서 15년의 연구 개발 기간이 소요되며, 임상에 돌입한 5개 중 잘해야 하나 정도의 약품만이 시판된다. 또한 10개의 신약이 시장에 출시되면 이중 대략 평균 3개 정도만이 제약사에게 실제 수익을 안겨다 준다. 이 때문에 흔히 제약사들은 혁신에 대한 장려책의 일환으로 그들의 지적재산권이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성공적인 신약에 대해 값비싼 약가(藥價)를 부과할 수 없다면 신약 개발에 대한 동기 자체가 사라지는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킬 것이라고, 그들은 경고한다.

그러나 만약 그 신약이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으로부터 인간을 구해줄 수 있는 필수재의 성격을 갖는다면? 지적재산권의 보호와 가격은 딜레마가 된다. 예를 들어, 물론 제약사와 처방약의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부유한 국가 내 에이즈(AIDS) 치료에 사용되는 칵테일 요법 약품에 대해 특허권자들이 부여한 가격은 환자 당 한 해 10000달러 가량이다. 그런데 과거 글로벌 제약사들이 가난한 국가에 거주하는 AIDS 환자에게까지 동일한 가격을 부과한다고 고집하고 복제약의 제조를 불허했다면, 오늘날 다수의 아프리카 국가를 포함한 후진국의 혼란은 어떤 상황에 처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부유한 국가에 거주하는 인구의 대부분은 개인적인 실비보험이나 공적 의료보험을 통해서 지적재산권에 의해 보호되는 고가(高價)의 신약을 지불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고, 이 때문에 글로벌 제약사들이 요구하는 비싼 약가가 국가적 보건 위기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민간 건강보험에 대한 제도가 미비하거나, 있더라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가입할 수 있는 여유가 없거나, 공적인 의료보험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가난한 나라에서는 의약품에 대한 특허 보호와 이로 인한 비싼 의약품 가격은 삶과 죽음의 문제가 된다.

안타깝게도 지난해부터 전 지구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대유행은 이런 문제가 현실이 됐다. 다수의 가난한 국가들은 일부 선진국에 소재한 글로벌 제약사들이 개발한 백신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부담스러운 백신의 가격은 빈곤국의 백신 접근성을 가로막았다. 이에 지난 6개월간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대표되는 상대적인 저개발국들은 백신 특허의 효력을 일시 중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이들 국가의 설명에 의하면, 백신에 대한 특허와 기타 형태의 지적재산권 보호를 요구하는 규제들이 전염병과의 싸움에 필요한 백신의 생산을 늘리는 데 장애물이 돼왔다고 주장한다. 반면 글로벌 제약사들은 특허가 백신 보급을 지연시킨 주범이 아니라고 반발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자금과 많은 시간, 그리고 노력이 투입된 백신에 대한 지적재산권 보호는 응당 행해져야 한다. 동시에 글로벌 제약사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인류가 승리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시간을 앞당길 수 있도록 지원할 의무도 갖는다. 개도국과 후진국에게 만이라도 지적재산권의 면제 또는 유예를 허용해주고, 상용화되는 백신을 오로지 그들 국가에서만 유통하게끔 제한한다면, 인류애를 실천하는 윤리 경영과 기업 성과를 동시에 담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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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

한국외대 경영학과에서 국제경영을 가르치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연구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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