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장관 겸직, '거수기 집권당' 멈춰라

[최창렬 칼럼] 검찰개혁에 가려진 정치개혁

대통령제의 운영 원리는 입법·행정·사법부 사이의 상호 견제와 균형이다. 의회내각제 또는 의원내각제는 의회가 내각을 구성함으로써 의회와 내각의 융합을 기본원리로 한다.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입법부와 행정부와의 관계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대통령제를 실시한다고 하면서 여당의 의원이 내각에 참여하는 건 대통령제의 기본원리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대통령제에 내각제를 가미한다는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사회 개혁은 불가능하다. 입법을 통하지 않으면 기본 얼개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의 주류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친문 세력의 정치적 표징인 검찰개혁은 일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설치됐고 검경 수사권 조정도 이루어졌으므로 기본구조는 완성된 것이다. 궁극적으로 검찰의 수사 기능을 배제하는 문제는 좀 더 많은 논의를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의 완전한 박탈)'을 통해 검찰개혁을 완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친문이 집권 측 내부에서 주도권을 상실하지 않고 자신들의 정치적 정체성을 위하여 동원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이는 강성 친문 지지층을 제외하곤 공감하는 대목일 것이다.

사회경제 개혁을 임기 내에 이룰 수는 없다. 성장시대와 개발독재를 거치면서 구조화된 사회변화와 인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치개혁은 사회경제적 혁신의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정치개혁은 검찰개혁에 가려 의제로 부각되지 않았다.

정치개혁의 중요한 부분인 선거개혁은 국민의힘과 담합하여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국적 불명의 꼼수를 씀으로써 정당체제를 더욱 왜곡시켰다. 또한 당 소속 단체장이 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했을 때 공천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어겼고 결과는 참패였다. 여타의 사회경제적 개혁인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인상, 임대차법 개정 등의 개혁 조치들도 정밀하게 부작용을 점검하지 않음으로써 선의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정권교체와 세대교체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것은 정치교체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조건들부터 바꿔야 한다. 노무현은 임기 4년차의 지지율이 초라하기 짝이 없었지만 1인 2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지구당 폐지, 당권‧대권 분리 등의 정치개혁을 부단히 추구했다. 한나라당 박근혜에 의해 "나쁜 대통령"이란 비난을 받았지만, 2007년 1월의 '원 포인트' 개헌 제안도 대통령제의 폐단을 지적한 것이었다. 결선투표제 도입은 대표성 확보란 면에서 중요한 개헌 과제이기도 했다.

정치개혁의 가장 초보적인 조치는 내각제적 요소로 포장되어 있는 국회의원과 장관의 겸직 가능 조항인 국회법 제29조의 개정이다. 입법부가 원천적으로 입법부이기를 포기해야 하는 국회의원과 국무위원의 겸직 가능 조항은 고쳐야 한다. 이는 과거 새누리당도 시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여야 의원 모두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 장관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지 않으려는 정치적 이기주의 때문에 관심 밖으로 밀려나곤 했다.

국회의원 출신이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한 명도 낙마하지 않아서 나온 이른바 '국회의원 불패 신화'는 부끄러운 것이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현역 국회의원을 장관으로 많이 기용한 민주당 정부이지만 180석이라는 거대 정당으로서 이 부분만은 21대 국회 동안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의 180석의 의석은 야당과의 협치를 통해 개혁을 이루라는 시민의 요구이다.

민주주의에서 대통령은 한 정당의 리더일 뿐만 아니라 국가원수로서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이중적 위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요구와 전체 사회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 사이에는 모순이 존재할 수 있지만 이의 균형을 찾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대통령의 리더십이다.

따라서 집권당과 청와대, 정부와의 협조 못지않게 집권당이 자율성을 가지고 청와대와 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진보나 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집권당이 대통령을 공천하고 당선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당은 자율성을 상실하고 청와대의 요구에 거의 맹목적으로 따르는 거수기로 전락하는 것이 권력 운용 현실이다.

국회의원과 국무위원의 겸직 금지, 집권 측 내부에서 견제와 협력의 선순환이 가능해질 때 개혁의 단초가 열린다. 권력구조 변화는 그 다음이다. 집권세력이 이를 제도화 한다면 검찰개혁보다 훨씬 더 광범한 시민의 지지와 동의를 얻을 수 있다. 검찰개혁만이 개혁이 아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