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NYT 인터뷰
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5.21)을 한 달 앞두고 <뉴욕타임스>지와 인터뷰(4.21)를 통해 미국 신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실제적인 평화의 진전을 이루는 업적을 남기길 희망하며, 2018년 싱가포르 합의를 기초로 북·미대화가 조속히 열리길 바란다는 취지의 인터뷰였다. 바이든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앞둔 포석이자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메시지다.
미국도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실용적 접근과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방향에서 대북정책 검토를 끝냈다고 5월1일 공식 발표했다. 문 대통령의 인터뷰에 대한 화답이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초부터 정상간 전화통화(2월), 한·미 외교·국방장관 2+2회담(3월), 한·미·일 안보실장회의(4월) 등 꾸준한 외교적 조율을 해 온 노력이 보인다는 점에서 5월 정상회담에 기대를 걸게 한다. 하지만 '총론합의(總論合意) 각론이견(各論異見)'이라는 외교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남은 기간 구체적인 실무 조율에 더욱 힘써야 한다.
이번 회담은 미국의 신정부와 우리 정부가 정상 수준에서 손발을 처음으로 맞추면서 동맹 파트너십의 향배를 가늠한다는 점에서, 당사국은 물론 북한과 중국, 일본 등 한반도 유관국 모두의 주목을 끌고 있다.
동맹의 튼튼한 기반은 시차(視差)의 인정에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임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 가치를 훼손했다고 비판하며 동맹재건을 공약하고 당선되었다. 문 대통령도 <뉴욕타임스>지 인터뷰에서 방위비분담금협상이 최근 타결(3.7)된 것을 두고서 바이든 대통령이 동맹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증거라고 언급했다.
<뉴욕타임즈>지 인터뷰 기사는 제목에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을 실패한 것으로 표현했고 (After Trump failed, South Korean leader hopes Biden can salvage nuclear deal), 트럼프 정부의 방위비 증액 요구는 동맹의 기반을 손상시키는 수준이어서 문 대통령이 협상을 중단시켰다는 내용을 실었다.
이에 발끈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약한 협상가이며 김정은에게 존경받지 못했다는 비난성명을 냈다. 결코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나 동맹의 기반은 어떻게 해야 튼튼해지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이 관심을 끌기위해 도발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우리 파트너들과 긴밀히 조율하고 정확히 같은 입장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답했다.
맞는 말이다. 동맹 파트너들은 같은 곳에서(立場),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해야 한다. 문제는 같은 곳에 서있지 않거나, 같은 곳에 서 있다하더라도 서로 다른 곳을 보게 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고서는 이러한 시차(視差)가 동맹의 기반을 허무는 작은 구멍이 되기도 한다.
북한 핵은 우리에게 생존이 걸린 문제지만, 미국은 본토에 직접적 위협이 되지 않으면 외교 후순위로 밀어 두거나 전략적 인내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미국과 달리 우리는 북핵문제를 조속히 해소하여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남북교류협력을 본격 추진함으로써 평화를 공고히 하는 한편 통일이라는 목적을 향해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견제와 압박에 우선순위를 두고 한·미·일 동맹을 구축하려고 하나 한·일 갈등이 이를 어렵게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 우리가 미국에 대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미·중 관계개선을 촉구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고 생뚱맞은 일이 될 것이다.
미국이 동맹을 중시한다고 해서 한·일 갈등에 미국더러 한국을 편 들라고 하기도 어렵고, 미·중 갈등에 한국이 일방적으로 미국편을 들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한국과 미국의 국익이 일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것은 동맹관계가 아니다.
5월 한·미 정상회담의 각론협의 방향
결국 각자 입장의 공통기반을 찾아 목표를 조율하는 것이 동맹 기반을 튼튼히 하는 길이다. 국력차이가 큰 강대국과의 협의라도 동맹의 기반이 있다면 주눅 들지 말고 그 기반을 다지고 더욱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각론합의에 어려움을 겪지 않으려면 각자의 입장과 공통기반의 여부에 따라 협의 조율할 의제를 3개 범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쌍방이 공통기반을 가지고 목표 수준을 협의할 수 있는 범주로, 동맹 강화에 뿌리를 둔 양자 간의 현안문제나 북핵 협상개시의 조건, 단계적 합의의 수준과 내용 등이 포함될 것이다.
둘째는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사유로 각자 입장이 달라 공통기반이 협소한 분야로, 국제적 보편규칙이 없다면 공통기반이 폭넓게 마련될 때까지 상대의 입장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하는 범주이다. 미·중 갈등이나 한·일 갈등과 관련된 문제들이 해당될 것이다.
셋째는 사실상 조율 없이 각자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범주이다. 우리의 경우 이산가족 등 인도적 사안, 남북 간 사회문화 인적 교류가 해당될 것이다. 이것들은 기본적으로 내정에 속한다. 접경지역에서의 대북전단 살포규제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 없다 할 수는 없으나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 보호라는 정부책무를 방기할 수는 없다. 자국민 보호업무는 가장 중요한 내정이다.
하노이 노딜 이후 2년 이상 장기 표류 중인 한반도 대화국면을 남은 임기 내에 복원하려는 문재인 정부에게 이번 회담은 각별한 것이다.
최근 북·중이 정상간 구두친서를 교환(3.22)하며 바이든 정부의 행보에 대응하고 나선 점도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특히 중국 시진핑 주석은 "한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새로운 적극적인 공헌을 할 용의가 있다"며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할 뿐만 아니라 체제 안보도 책임지겠다는 입장을 시사했다.
북한도 미·중 전략경쟁의 틈을 타 중국의 우호국 결집 움직임에 편승할 태세다. 마치 70년 전 냉전과 진영다툼으로 이어진 샌프란시스코 체제로 되돌아가는 느낌마저 준다.
상황을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미·중 갈등이 심화되고 북·미 대화가 지연되면 북한이 경제는 물론 안보적 차원에서도 중국에 경사(傾斜)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북핵문제 해결은 물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타격을 받고 한국의 평화프로세스 가동도 어려워질 수 있다. 핵을 머리 위에 이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로서는 이 같은 상황의 도래를 어떻게든 막아야 할 것이며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중요성도 여기에 있다. 한·미 정상회담으로 한·미 동맹이 총론합의와 각론합의를 이루고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국면이 조속히 재개될 수 있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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