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접경지역에서 평화를 기억하는 방법

[접경지역 바로알기] ⑨ 기리고 새기고 함께하고

사람들은 소중한 것은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하기 위해 노력한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등 기쁜 일을 축하하거나 망자나 전사자들을 그리워하고 슬퍼한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기억하는 것은 그 의미를 되새기면서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3.1운동을 기념하고, 만세운동을 재현하는 이유는 그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잊지 말자는 것이며, 함께 기억하고 함께 나아가자는 집단적 다짐이다.

현대사에서도 기억하고 기념할 일은 많다. 분단에서부터 전쟁과 정전, 그 후 냉전시대의 충돌과 갈등, 화해하고 협력하려는 힘겨운 노력들을 사람들은 되새긴다. 세월이 흘렀어도 분단은 해소되지 않았고 남과 북은 가까워졌다가도 멀어지기에 과거를 더욱 붙잡아두고 싶기 때문이다.

작년 2020년은 남과 북의 정상이 처음 만나 남북관계 발전을 합의한 남북공동선언이 있은 지 20주년이 되는 해였다. 2007년 제2차 정상회담 이후 11년 만인 2018년에 다시 만난 남북 정상이 합의한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은 6.15와 10.4의 변치 않은 생명력의 확인으로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15만 관중 앞에서 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연설은 감동 그 자체였다. 남북 화해협력과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기념할 의미있는 사건이 더 추가된 셈이다.

6.15 공동선언과 10.4 남북정상선언을 기리는 것은

남북 정상이 만나서 한 대표적인 합의로는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남북정상선언이 있다. 6.15 행사는 '김대중 평화센터' 주관으로, 10.4 행사는 '노무현재단' 주관으로 열린다. 학술행사와 기념식, 부대행사 등으로 구성된다.

2004년 개최된 6.15 4주년 기념 국제토론회는 연세대 김대중도서관과 북측의 통일문제연구소가 공동 주최했는데 남북학자들이 남측에서 갖는 첫 토론회라는 의미를 가졌다. 여기에는 미, 중, 일, 러, EU, 독일 등 한반도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남북 합의 사항을 국제사회와 함께 논의하는 것은 남북 합의 이행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도 주체임을 확인하고 협력해달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6.15행사는 2012년부터 서울시장이 행사준비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함으로써 안정적으로 추진해 왔다.

▲ 6·15 남북공동선언 4주년 국제토론회(왼쪽) ⓒ김대중평화센터 / 10·4 남북정상선언 12주년 기념식(오른쪽) ⓒ통일부

남북정상회담 기념식은 남북관계 상황은 물론이고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에 있은 10.4 선언은 합의를 실천하기도 전에 정부가 바뀌면서 추진동력을 잃어버렸다. 특히 2009년 2주년 기념식은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2012년도의 기념식은 대선을 앞두고 정권교체에 대한 희망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고리가 되었다.

기념식에서는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한다. 2009년 10.4 선언 2주년 기념식에서는 10·4남북정상선언기념위원회,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와 제 정당 등은 '10·4남북정상선언 기념 결의문'을 내고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이 화해와 협력,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한반도 시대를 위한 역사적 선언임을 재확인하고 이행을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 당국자 간 조속한 대화 재개를 촉구했다.

2017년의 6.15 기념식은 어느 때보다도 밝고 힘찼다.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축사를 했다. 12년 만에 현직 대통령의 참석이었다. 문 대통령은 남북 합의에 대한 이행 의지를 재확인하고, 남북관계 복원 의지를 피력했다.

공식 기념식은 통상 서울에서 열렸는데 2011년 10.4 선언 4주년 기념식은 특별했다. 인천시청 1층 중앙홀에서 열렸다. 당시 송영길 시장은 10.4 선언을 '인천선언' 이라 하였는데,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가 10.4 선언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기념식에는 이희호 여사, 권양숙 여사, 노무현재단의 문재인 이사장을 비롯한 6.15와 10.4선언의 주역이 대거 참석했다.

▲ 2011년 10.4 남북정상선언 4주년 기념식 ⓒ송영길 블로그

2010년 3월의 천안함 침몰과 11월의 연평도 포격은 서해가 얼마나 위험한 화약고인지 알려주었고, 서해평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5.24 조치로 모든 남북교류가 단절된 상태에서 인천이 10.4 공식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10.4선언을 인천선언으로 계승 발전시켜 서해상에서 분쟁을 끝내고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의 길에 앞장서겠다는 평화도시 인천의 의지와 구상을 전국적으로 표방하고 확산할 수 있었다.

권양숙 여사는 '북한 수재민을 위한 인천쌀 보내기 시민운동본부'에 봉화쌀을 기증하기도 했다. <한반도 평화체제와 서해 평화의 섬>을 주제로 국제학술회의가 열렸고, 부대행사로 기념미술전 <분쟁의 바다, 평화의 바다 展>과 전국의 대학생이 참가하는 <3on3 통일농구대회>가 진행됐다.

그다음 해인 2012년 인천시의 10.4 선언 5주년 기념식은 더욱 도전적이었다. 행사장이 강화 교동도였다. 기념식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장소의 상징성이 주는 의미가 더 크다. 인천시가 교동도에 남과 북이 함께하는 평화산업단지를 조성할 구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동을 인천~개성~해주 3각 클러스터의 중심지로 만들어 남북경제협력으로 서해의 긴장을 해소하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 공동번영의 길을 열기 위해서다. 2012년 10월 4일, 다리로 연결되지 않은 교동도를 200여 명의 사람들이 배를 타고 들어갔다.

DMZ를 걷고 달리고 즐기며 평화축제의 장으로

인천시의 주제가 '서해 평화'라면 경기도와 강원도는 'DMZ'다. 경기도는 2019년 남북 정상의 '9·19 평양 공동선언' 1주년을 기념해 DMZ를 누구나 보고, 듣고, 체험하며 평화의 상징으로 바꿔나가자는 취지로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 DMZ 포럼(국제학술회의), DMZ 페스타(전시·체험행사), Live DMZ(음악공연), ART DMZ(체험형 문화예술행사) 등 주요 4개 행사를 통칭하는 공동 브랜드 '렛츠 디엠지'(Let's DMZ)를 만들었다. 2020년의 렛츠 디엠지는 디엠지(DMZ) 포럼, 라이브 인 디엠지(Live in DMZ), 디엠지 런(DMZ RUN), 디엠지(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 4개 행사로 구성되었다.

▲ 경기도 2019년 DMZ 포럼(왼쪽) 경기도 2019년 6.15 평화콘서트(오른쪽) ⓒ경기도청

DMZ를 비롯한 접경지역은 공식적인 기념행사 외에도 언제나 자유롭게 와서 체험하고 활동하는 열린 공간이다. DMZ에서는 다양한 대중 행사가 많이 열린다. 국제학술회의, 포럼, 영화제, 마라톤, 자전거대회, 음악축제 등 다양하다.

DMZ 축제화는 강원도에서도 활발하다. DMZ를 평화와 생태의 지대로 새롭게 인식시키기 위한 국제문화행사인 'PLZ(Peace&Life Zone) 페스티벌'을 2019년부터 시작했다. 강원도 내 평화지역(접경지역) 5개 시군인 고성, 인제, 양구, 화천, 철원에서 펼쳐진다. 생태계를 위한 PLZ 포럼을 비롯해 평화 연주회, 찾아가는 PLZ 음악회, PLZ Youth 오케스트라 교육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7월부터 12월까지 이어진다.

DMZ를 분쟁과 대결의 장이 아닌 평화와 생명의 땅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뚜렷하다. 접경지역은 산업이나 인프라 등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문화생활에서도 소외되는데 이 행사는 문화공연 취약지역 주민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확대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 2019년 양구에서 열린 PLZ(Peace&Life Zone) 페스티벌 ⓒplzfe.com

2018년 철원에서 시작한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도 눈여겨 볼만하다. 2018년 4월 말 남·북 정상회담 이후 '음악을 통해 국가, 정치, 경제, 이념, 인종을 초월하고 자유와 평화를 경험하자'라는 취지로 시작했다.

DMZ를 '평화'의 페달을 밟으며 비경을 만끽하는 국제자전거대회로 '뚜르 드 디엠지(Tour de DMZ)가 있다. 2016년 시작한 대회는 행정안전부, 인천시, 경기도, 강원도가 공동 주최하고 대한자전거연맹이 주관하여 인천 강화부터 강원 고성까지 DMZ와 접경지역을 따라 달린다. 대회는 '국제 청소년 도로 사이클 대회', '마스터스 도로 사이클 대회', '일반 동호인 도로 사이클 대회'로 열린다.

같은 이름의 '뚜르 드 디엠지(Tour de DMZ)'는 2013년 정전 60주년을 기념해 경기도가 시작했다. 2015년부터는 강원도가 참가하여 공동 개최함으로써 DMZ를 대표하는 관광 콘텐츠로 자리잡았다. 2019년 대회의 경우 연천공설운동장을 출발해 연천교차로 ~ 신탄리역 ~ 백마고지역 ~ DMZ평화문화광장 ~ 고석정 사거리 ~ 철원 공설운동장에 도착하는 총 54km 코스를 달렸다. DMZ 남방한계선을 따라 이어지는 2차 구간은 평소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지역이라 더 뜻깊은 주행이었을 것이다.

▲ 2019 뚜르 드 디엠지 국제자전거대회(왼쪽) ⓒ조직위원회 / 2019년 경기도·강원도 뚜르 드 디엠지 (오른쪽) ⓒ김효은

지자체에서도 뜻과 지역 특색을 살려 기념행사를 한다. DMZ를 끼고 있는 접경지역 시군에서는 DMZ의 의미를 전 국민에게 알리는 행사를 하면서 시군 홍보효과도 얻는다. DMZ에는 달리기와 걷기 행사가 많은데 248km의 긴 DMZ를 달리고 걸으면서 분단의 현실을 자각하고 평화가 어서 오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군사분계선을 넘을 수는 없지만 평소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지역에 들어가고 싶고 DMZ 남방한계선을 따라 자유롭게 걷고 달리고 싶은 욕구들이 분출되는 곳이다.

강원 화천군의 'DMZ 랠리 전국평화자전거대회'는 2008년 시작했다. 최전방 민간인 통제구간을 포함해 70km가 넘는 길을 달린다. 험난한 민간인통제선 이북지역과 해발 700m의 해산령과 6.5㎞ 길이의 한묵령을 오르내려야 하는 코스는 자전거 동호인들에게 인기다. 화천군은 약 5000명의 참가자에게 주어지는 기념품이 지역 특산품과 농산물 등이어서 지역 경기 활성화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철원에서는 2004년부터 DMZ 국제평화마라톤대회가 열리는데 풀코스인 42.195㎞, 하프코스 21㎞, 10㎞ 코스, 5㎞ 코스, 코스모스 십리길 걷기(4㎞) 등 5개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기도에서는 2019년 여름에 'DMZ 155마일 걷기- DMZ 155마일 평화의 길을 함께 걷다' 행사를 했다. 참가자들은 고성에서 출발하여 인제, 양구, 화천, 철원, 연천을 거쳐 파주에 이르기까지 경기·강원 접경지역을 걸었다.

▲ 철원 DMZ 국제평화마라톤대회 ⓒ조직위원회

DMZ하면 유명한 것이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DMZ International Documentary Film Festival)다. 2009년 시작한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로서 경기 고양시, 파주시 일원에서 열린다. 폭력과 비극이 시작된 DMZ가 평화와 공존, 그리고 생명의 메시지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세계인들과 함께 하는 소통과 축제의 장으로 다시 태어나길 소망한다.

▲ 2019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식 ⓒ김효은

'꽃 피는 봄날, DMZ로 소풍가자' - 평화는 우리가 만든다.

인간사에서 변화를 향한 외침은 항상 아래로부터 나왔다. 평화운동 또한 민간이 먼저 나섰다. 2019년은 어느 해보다 의미 있게 시작했다. 3.1운동 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었다. 남북정상회담 판문점선언 1주년을 기념하여 민간의 자발적 평화운동으로 'DMZ평화인간띠잇기운동본부'가 결성됐다.

4.27 1주년 기념 인간 띠 잇기 행사인 'DMZ(民)+평화손잡기' 행사가 '꽃피는 봄날 DMZ로 소풍 가자'라는 구호로 4월 27일 14시 27분부터 강화 교동, 파주 임진각, 철원 노동당사, 양구 두타연 등 접경지역 일대와 전국에서 열렸다. 남녀노소가 함께 한 행사에서 참가자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 통일을 외치고 평화선언문을 낭독하며 평화를 기원했다.

▲ 평화손잡기 행사 포스터(왼쪽) ⓒDMZ 평화인간띠운동본부 / 한반도평화올레 스무번째 포스터 ⓒ한반도평화포럼

지방자치단체나 시민단체의 평화 관련 행사는 무척 많다. 평화 현장 방문과 체험 행사가 다수다. 사)한반도평화포럼은 '한반도평화올레'라는 이름의 도보 순례행사를 했다. 분단의 벽 휴전선을 무너뜨리고 평화와 통일의 날을 앞당기고자 휴전선 서쪽 끝 임진강에서 동쪽 끝 금강산까지 이어서 걸으려는 시도였다. 2013년 6월 파주 임진강역에서 출발한 평화올레는 현재 마지막 코스인 금강산만 남겨두고 있다. 20년 전에 가봤던 금강산이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이할지 궁금하고 설렌다.

기념행사는 보통 관 주도로 진행하는데 인천시의 기념행사는 시민사회와 조직위원회를 만들어 함께하는 행사로 정착됐다. 인천시는 2011년부터 민관이 함께하는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기념식부터 학술회의, 각종 부대행사를 지역사회와 함께 추진하고 있다. 시민참여행사가 활발한데, 2014년부터 해온 '인천평화창작가요제'는 다양한 주제로 만든 평화의 노래가 평화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인천시는 2019년부터는 남북정상선언 기념일 즈음 3주간을 서해평화 특별기간으로 정해 운영하고 있다. 지역사회와 시민들은 함께 평화를 말하는 공론화장을 마련하고, 북한영화 상영과 서해평화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등 각종 전시행사를 펼치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평화 공감대를 이루어나가려는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평화를 기억하고 염원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가슴에 단 배지에도, 힘차게 나부끼는 깃발에도 그 간절함을 담는다. 2018년 4.27 판문점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국은 한반도기 물결이었다. 관공서에도 길거리에도 한반도기가 펄럭였다. 서해평화를 기원하는 어선도 한반도기를 달고 출항했다. 지금도 한반도기는 남과 북 하나됨의 상징이다. 다음은 이 연재의 마지막 편이다. 평화를 위해 남과 북이 함께 할 수 있는 것들, 그 전에 우리부터 할 수 있는 것들을 함께 고민해보겠다.

▲ 안산시청에 걸린 한반도기 ⓒ안산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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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은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를, 인제대에서 통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새정치국민회의 공채 1기로 정치권에 발을 디딘 후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을 지냈다. 접경지자체인 인천광역시 남북교류협력팀장, 경기도 평화대변인을 역임하며 남북관계 이론과 실무를 두루 갖춘 남북관계·통일전문가로, 현재 대진대학교 DMZ연구원 객원교수로 있으며 <인천일보> 평화연구원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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