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예언자' 슘페터의 생애, 그리고 소명

[최재천의 책갈피] <혁신의 예언자> 토머스 매크로 글, 김형근·전석현 번역

1943년 조지프 슘페터의 부인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여보, 우리 부부는 아이를 함께 가실 수 없기 때문에 이 책을 함께 가져요".

"여보, 왜 우리가 아이를 가질 수 없겠어요? 많은 아이를 가질 수 있지 않아요? 우리엔 많은 책들이 있잖아?" 슘페터가 답했다.

1949년 슘페터가 먼저 세상을 떴고, 엘리자베스는 1953년에 따라갔다. 그녀의 죽음은 <경제 분석의 역사>가 출판되기 1년 전이었다. 슘페터 사후 그녀는 그가 남긴 원고를 정리해 <경제 분석의 역사>라는 거대한 책을 탄생시켰다.

토머스 매크로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슘페터의 생애를 당대의 정치사·경제사·사회문화사·지성사적 맥락에서 해부한 슘페터 평전 <혁신의 예언자>에서 이 일화를 마지막으로 슘페터의 생애를 정리한다.

평전 혹은 전기, 자서전은 가장 좋아하는 장르라 할 수 있다. 워낙 수식을 싫어했기에 경제학조차도 싫어했고, 그러다보니 경제학자의 평전을 읽은 적은 손꼽을 정도다. 어린시절 '창조적 파괴'를 기억하게 되면서부터, 그리고 사법시험과목의 하나로 '경제학 원론'을 공부하면서부터 언젠가 한 번 슘페터는 꼭 한번 정리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차에 2025년 노벨경제학상이 '창조적 파괴' 관련 연구자들에게 수여되길래 슘페터에 대한 공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안이 되었다. 함께 공부하는 한양대 이정환 교수에게 책을 골라달라고 부탁했다. 지난 겨울 구입해둔 책이 <혁신의 예언자>. 하지만 '벽돌책'이고 선뜻 손이 갈만한 주제가 아니라서 차일피일 미루다 미루고 미뤄둔 책을 읽는 시간인 항공편에서 비로소 읽게 되었다.

첫째 아이와 뉴욕에서 헤어졌다. 이별은 늘 쉽지 않다. 나는 서울로 되돌아오고 아이는 보스턴 실험실로 되돌아갔다. 돌아오는 비행기 편에서 <혁신의 예언자>를 읽었는데, 마지막 장의 리드 부분인 다음 문장이 가슴을 서정로 끌고 갔다.

"약간만이라도 과학자로 봐줄 만한 가치가 있는 자주적인 과학자는 온전히 자신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헌신을 보여준다. 그것은 극도의 자기희생이 요구될 수 있는 소명이다.(로버트 위너, <인간존재의 인간적 활용> 1950)"

자연과학이건 사회과학이건 정치건 문학이건 결국은 '소명'이어야만 한다.

▲<혁신의 예언자> 토머스 매크로 글, 김형근·전석현 번역 ⓒ글항아리

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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