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공원이 된 접경지 미군부대,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변신하다

[접경지역 바로알기] ⑧ 창조하고 도약하는 접경지역

접경지역이야 북한과 마주하고 있으니 군부대가 많은 것은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큰 도시 중의 하나인 의정부가 부대찌개로 유명하게 된 것이 미군부대와 연관이 있다는 것은 의외다. 동두천은 미군이 바로 떠오를 정도로 미군과의 연계가 강한 도시이지만, 의정부도 미군의 흔적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적다.

'미군반환공여지' 란 말이 익숙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에게 제공했다가 돌려받은 땅이란 뜻이다. 전국적으로 미군기지 반환대상 80곳 중 지금까지 58곳이 반환되었고 아직 22곳은 미반환 상태다.

주한미군 재배치는 2003년에서 2004년까지 총 12차례에 걸친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DTA)를 통해 결정됐다. 서울에 있는 유엔사와 연합사, 주한미군사 및 관련 부대는 평택으로 이전하고, 전국에 산재한 군소 미군 기지는 2단계에 걸쳐 중부(평택,오산)과 남부(대구, 부산)등 2개 권력으로 통폐합한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기지 재배치 사업은 당초 2017년 완료를 목표로 추진했으나 아직까지 진행 중이다. 경기도 10곳, 서울 8곳, 강원 4곳 중 경기도가 미반환 기지 면적의 91%를 차지하고 있다.

1951년부터 주한미군이 주둔한 동두천은 전국에서 미군공여지 비율이 가장 높다. 전국 공여지의 23%에 달하며 시 면적의 절반에 가까운 42%를 미군이 차지하고 있다. 미군 의존적 산업구조가 고착화되었고, 미군이 이전하자 지역경제는 휘청였다.

과거 불야성을 이뤘던 미2사단이 있었던 보산동 외국인관광특구는 아직도 남아있다. 동두천시는 한국 록의 전설인 신중현, 조용필, 나미 등 많은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들이 활동했던 문화적 전통을 계승하고자 두드림 뮤직센터를 만들었다. 2020년 6월에는 세계음식거리를 조성하여 세계 각국의 문화가 어울리는 관광특구로 번창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최용덕 동두천 시장은 미군이 동두천시를 군사기지로 쓰면서 재정 피해가 심하다고 역설한다. 제1회 턱거리마을 순자문화제가 열린 2020년 11월에 "지난해 어느날, 미군캠프에서 식사를 하고 신용카드를 사용했는데, 미국 캘리포니아주 소속의 어느 가게 이름으로 결제가 됐다"며 동두천이 처한 현실을 개탄했다.

경기도는 2020년 11월 행정안전부로 주한미군 공여구역 재정 손실 보전 방안을 건의하는 공문을 보내, 정부가 일본처럼 미군기지교부세를 도입해 미군 공여지로 피해를 본 자치단체의 재정 손실을 100% 보전해달라고 요구했다.

턱거리마을로 알려진 동두천 광암동에 2019년 11월 턱거리마을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과거 미군 상대 술집이었던 곳이었다가 카페 '샹제리에'로 바뀐 건물에 들어섰다. 턱거리마을 주민들의 삶을 기록하고, 주민과 활동가, 예술가, 지역연구자가 모여 소통하고 교류하는 공간이다. 동두천(東頭川) 너머로 미군기지 캠프 호비가 보인다.

▲ 2019년 턱거리마을박물관 개관식(위) ⓒ김효은, 보산동 세계음식거리(아) ⓒ 동두천시청

미군반환공여지의 새로운 탄생과 미완의 과제

반환된 공여지는 새로운 역할을 찾았다. 개발사례를 살펴보면, 의정부시 경우 캠프 시어즈에 경기북부광역행정타운이 조성되었다. 전망 좋은 곳에 경기북부경찰청과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등 13개 기관이 입주해있다. 캠프 에세이욘에는 을지대병원과 부속대학이 올 3월 개관 예정으로 있다.

동두천시의 경우 캠프 캐슬에 2016년 동양대학교 북서울캠퍼스가 들어왔다. 우뚝 솟은 물탱크가 그대로 있고 거기에 쓰인 학교 이름은 훌륭한 광고탑의 역할을 한다. 군인 막사는 학생식당 등 학교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 2018년 10월 18일, 경기도민의 날 행사가 열린 동양대학교 캠퍼스 ⓒ 경기도청

파주시 군내면의 민통선 안에 있는 캠프 그리브스는 반환 후 평화를 체험하는 역사공원으로 기능하고 있다. 미군 장교 숙소를 리모델링한 유스호스텔은 단체 교육이 가능한 강의실과 숙소를 갖추고 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이름이 알려지기도 했다.

▲ 드라마 <태양의 후예> 포스터가 붙은 캠프 그리브스 ⓒ 김효은

경기북부의 주한미군 기지들 대부분은 평택의 험프리스 기지로 이전했다. 그런데 폐쇄된 시설들이 다 반환된 것은 아니다. 미2사단 사령부가 있던 의정부의 캠프 레드 클라우드는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2019년 폐쇄됐다.

카투사 훈련학교가 있던 캠프 잭슨도 빈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어마어마한 규모인 캠프 스탠리도 병력이 모두 철수했으나 헬기 중간 급유지로 사용되고 있어 반환받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캠프 잭슨은 2020년 12월에 정부가 반환을 공식 발표하였다. 의정부시에서는 대형 e-커머스 물류단지 조성과 국제아트센터 건립사업 등 활용계획을 수립했으나 개발이 지연되고 주변지역이 슬럼화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주한미군 기지는 반환받기도 어렵지만 그 이후가 더 문제다. 유류, 중금속 등으로 인한 환경오염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부평의 캠프 마켓과 용산 기지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두 곳 모두 시민 공원으로 조성될 계획이라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의정부시가 매입해 시민공원을 조성한 캠프 홀링워터에서도 THP(총 석유계 탄화수소)와 BTEX(벤젠·톨루엔·에틸벤젠) 등 토양 오염이 발견되었다고 한 시민사회가 공원 폐쇄를 요구했다. 오염된 토양을 국방부가 정화한 후 반환했는데도 문제가 그치지 않는다.

한미 간 오염 정화 비용 분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환경부와 주한미군 간의 SOFA 환경분과위원회 협상에서 논의되는데, 우리 정부는 오염 유발자인 미군이 정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미국은 협정 조항을 들어 원상회복과 보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환 기지를 활용하는데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된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용산미군기지는 '용산기지 조성 특별법'에 의거 공원부지를 지자체에 무상제공하고 공사비 100%를 국가가 부담했다. 토지매입비 10조, 조성비 1조 5000억 등 11조 5000억 원의 국비가 투입된 것이다. 평택기지 또한 '주한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시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기반시설비까지 지원했다.

그러나 2006년 제정된 '주한미군 공여구역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은 미군 주둔으로 인해 낙후된 지역의 경제를 진흥시켜 지역 간의 균형발전과 주민의 복리증진 도모를 규정하고 있음에도 그 지원규모가 턱없이 작다. 국가의 지원은 도로·공원·하천 토지비로만 한정하고 그 외의 토지매입비와 조성비는 지자체가 부담하여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는 사업추진이 어려운 실정이다.

지자체에서 미군반환공여지의 국가주도 개발을 강력히 촉구하는 이유다. 민간이 개발할 경우 공공성 확보도 어렵고 개발 직전 잦은 계획 변경과 재수립으로 예산 낭비와 혼선을 초래한다. 국가가 적극 나서서 안보를 위해 희생했던 지역 주민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인프라 지원을 넘어 지역 경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국가안보로 인한 접경지역의 특별한 희생들

접경지역의 피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있어 지역개발이 어렵고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는다. 민통선 지역은 통행이 불편하고 어부들은 어로활동에 제한을 받는다. 군부대지역 주민들은 부대주둔이나 군사훈련으로 인한 소음·교통불편 등의 피해를 겪는다. 파주시 법원리에 무건리훈련장이 조성되면서 오현리 주민들은 삶의 터전에서 떠나야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70년인데도 아직도 지뢰사고가 발생한다. 특히 수해 때는 하천 등이 범람하여 접경지역에 지뢰나 불발탄 등의 폭발물 유입 가능성이 있어 지역주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경기도는 2020년에 도내 접경지역 지뢰·불발탄 피해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피해자 637명을 찾아냈는데 사고 당시 10대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이 약 51%를 차지했다. 사고 가정 절반 이상이 생계가 곤란하고 피해자의 99%(628명)가 사고를 당했음에도 관련 절차를 몰라 보상청구 또는 소송을 하지 못했다.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으니 한 분의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국가가 찾아나서야 한다.

경기도 포천에는 동양최대 미군사격장인 미8군 로드리게스 훈련장(영평사격장)이 있다. 1954년부터 사용한 영평사격장은 1322만㎡ 규모로 여의도 면적의 4.5배에 달한다. 훈련장 조성 후 주민들은 소음과 진동에 일상생활이 불편하고 도비탄 사고 등으로 불안과 피해를 입었다.

국가 안보를 위한 희생을 당연시했던 과거와 달리 국방부는 '갈등관리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민관 갈등관리에 나섰다. 영평사격장과 관련해서는 관계부처, 포천시, 지역주민들과 '영평사격장 갈등관리 협의회'를 구성하고 2017년 7월 첫 회의를 가졌다.

국방부는 주민안전 및 기본생활권 보장과 피해보상·지원방안을 마련하는 것과 동시에 미군의 전투준비태세 유지를 위한 훈련 여건 보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0년 7월에도 협의회가 열려 사격장 주변 지역 주민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60여년의 갈등이 하루아침에 해소되지는 않겠지만 민관군이 조금씩 양보하며 상생의 길을 찾는 것 자체가 문제해결의 출발이다.

군부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강원도에는 국방개혁의 위기를 접경지역지원특별법 개정으로 극복하자는 현수막과 사격장 소음피해에 대책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 강원도 양구군청(위), 화천군 도로변(아래) 현수막 ⓒ김효은

지역 주민의 손으로 다시 태어나는 접경지역

수도권을 벗어나 지방을 다니다 보면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빈집이 눈에 띈다. 사람이 살지 않은 집은 금방 망가지고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중앙부처에서는 농촌빈집정비사업, 도시재생, 주거재생사업 등의 명칭으로 빈집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양주 남면 봉암리가 최근 빈집 정비의 모범사례로 떠오르고 있다. 28사단 본부가 양주시와 동두천시에 걸쳐있고, 딱 봐도 군인아파트인 '베스트그린 28'아파트가 보인다. 군부대와 산업단지로 둘러싸인 봉암리는 빈집이 늘어나 마을 공동화가 문제가 되었다. 경기도 빈집활용사업의 일환으로 공모를 통해 양주시가 사업을 진행했다.

수익창출시설로 3층의 마을회관을 개조한 '봉암월드프라자'와 농협창고를 리모델링한 '카페 봉암창고'가 탄생했다. 봉암월드프라자 1층에는 인근 군부대 장병들이 외출·외박 시 이용할 수 있도록 게임전용 PC 43대가 설치된 PC 존을 조성했다. 2층과 3층에는 인근 산업단지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를 위한 전용 숙박시설(셰어하우스)을 갖추었다.

카페 봉암창고는 최근 지상파 방송에 나와서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반짝 분주함이 아니길 바란다. 경기도와 양주시가 시설을 만드는데 예산과 노력을 많이 들였다. 시설 운영은 '봉암나눔협동조합'이 맡고 있는데 버거워 보인다. 봉암리 이장을 지내신 최인복조합장과 회원들이 수익모델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최인복조합장은 “운영에 봉사하는 조합원들이 사회적 기업 교육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시설 운영에 경기도와 양주시의 적극적인 지원을 당부했다. 카페에는 빔 프로젝트를 활용한 강연이나 회의가 가능하니 지역의 다양한 분들의 만남의 장으로 충분하다. PC존은 군인들이 사용하지 않은 평일 낮 시간에는 주민들 정보교육 공간으로 활용하면 좋겠다.

▲ 양주시 남면 봉암월드프라자(위), 카페 봉암창고(아래) ⓒ 김효은

연천군 전곡읍 은대리에 위치한 벽돌공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탄생했다. 신중앙요업(주) 벽돌공장은 1980년대 후반부터 10여년간 운영되다가 운영난 등으로 20여 년간 방치되었던 곳이다. 연천군이 문화체육관광부, 경기도 등과 함께 2019년 '한반도 생태평화벨트 광역연계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DMZ문화예술 삼매경사업의 거점으로 추진하고 있다. 2020년 11월 경기문화재단이 경기북부 DMZ 에코뮤지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2020 Ziggurat Art Festival' 전시회를 개최했다.

1500평의 건물 안에는 벽돌을 실어 나른 레일과 벙커 C유를 태웠다는 연통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앞으로 이곳이 지역 주민과 예술인들의 예술 공간, DMZ 평화관광의 거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한탄강 관광의 거점으로 다시 주목받게 될 날을 고대한다.

▲ 연천 폐벽돌공장 외부(위), 내부(아래) ⓒ김효은

지역민들이 주민들과 함께 자신의 마을과 이웃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찾고 만들어가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펼쳐지고 있다. 마을 공동체사업이 그 중 하나다. 파주시의 경우 '에코휴 DMZ'라는 통일촌, 해마루촌, 마정리 등 DMZ 일원 지역 주민들의 공동체 모임이 있다. 자신의 삶의 터전을 더 잘 알고 널리 알리려는 시도들이다.

DMZ 일원의 생태환경을 제대로 알고, 생물자원의 가치와 중요성을 공유하여 세계적인 보전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주민들과 소통하고 교류한다. 민통선 주민들이 스스로 지역의 랜드마크를 발굴하고 지역브랜드를 만들어나가는 작업에 큰 기대를 해 본다.

포천시에는 2015년 폐교된 보장초등학교 건물에 포천 공동체지원센터가 들어서있다. 시민이 주축이 되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체를 육성하고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해 함께하는 곳이다. 주민들이 지역 발전의 주역이 될 때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진정한 공동체가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남북 평화를 기리고 새기고 함께하는 노력들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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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은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를, 인제대에서 통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새정치국민회의 공채 1기로 정치권에 발을 디딘 후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을 지냈다. 접경지자체인 인천광역시 남북교류협력팀장, 경기도 평화대변인을 역임하며 남북관계 이론과 실무를 두루 갖춘 남북관계·통일전문가로, 현재 대진대학교 DMZ연구원 객원교수로 있으며 <인천일보> 평화연구원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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