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플래닛' 지구의 새로운 가능성, 바다에서 찾는다

[DEEP FUTURE] 마린이노베이션 차완영 대표 인터뷰①

1. 플라스틱 플래닛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역사가 갈린다는 주장이 있다. 그럴 수도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꼭 그러리라고 단정하기도 힘들다. 번뜩이는 저널리스트 특유의 과장이 섞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경영자(CEO) 사티아 나델라의 진단이 더 실상에 가깝다고 여긴다. 2년에 걸쳐 전개될 변화가 2달 만에 진행되었다. 가정부터 학교와 직장은 물론이요, 나라의 경영과 글로벌 거버넌스까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초가속으로 단행된 것이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산업적 전환을 앞당긴 것이지, 문명적 전환이라고 평가하기에는 미흡하다. 산업문명의 네 번째 국면도 아니요, 농업문명으로의 복고적 회귀도 아닌 생명문명으로의 창발적 도약이 가능할지 주시하게 된다.

굳이 2020년을 지구사의 한 변곡점으로 획정한다면, 그것은 2020년이 인공물의 무게가 자연물의 무게를 넘어선 첫 번째 해라는 점일 것이다. 인류가 생산하거나 건설한 인공물의 무게가 1.1테라 톤에 이르렀다고 한다. 듣도 보도 못한 '1테라 톤'은 1조 톤을 일컫는다. 그간 인류가 만들어낸 사물의 무게가 1조 1천억 톤에 육박한 것이다. 자연적 진화의 소산으로 지구에 번성하고 있는 생물의 총 무게는 1테라 톤에 그친다. 물론 인공물과 자연물의 규정에 따라서 다소간 오차가 있는 모양이다. 특히 인공물에 폐기물을 뺐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크다. 그러함에도 장기적 대세에는 큰 변동이 없지 싶다.

인공물의 무게는 21세기, 지난 20년 동안 두 배로 증가했다. 백 년 전, 20세기 초반에는 인공물의 무게가 자연 생명체의 고작 3%에 그칠 뿐이었다. 불과 한 세기만에 사물과 생물의 비중이 역전된 것이다. 인공물의 증가가 생물의 감소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도 하다. 6번째 대멸종이 진행 중이라는 무시무시한 예까지 들 필요도 없겠다. 백년 사이 식물의 무게만 해도 2조 톤에서 1조 톤으로 반 토막이 났다. 오로지 인간들이 식량으로 사용하는 몇몇 작물과 과일만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을 뿐이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앞으로도 매년 인공물은 300억 톤씩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다시 20년이 흐른 2040년 무렵에는 3테라 톤에 도달하게 된다. 인공물의 상징이라 할 플라스틱만 하더라도 지구상 모든 육지와 해양의 생물 무게를 합한 것보다 무거워질 것이다. 그야말로 인간이 주조한 인공지구, '플라스틱 플래닛'(plastic planet)이 되는 것이다. 고로 여느 생태주의자들이 고답적으로 되풀이하는 것처럼 인류는 지구상의 수많은 생물 가운데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결코 미미하고 작은 존재가 아니다. 지구의 46억 년 진화사를 통하여 이러한 생물은 등장한 적이 없었다. 한 시절 공룡이 지구를 호령했다 한들, 인공물까지 만들어 지구 표면을 온통 뒤덮지는 않았다. 전대미문의 사태이고, 전무후무한 환경이며, 전인미답의 지구이다. '인류세'라는 일각의 지질학적 호명이 결코 과장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의 생활이 늘 자연과 밀접했던 것처럼 동시대 인류의 삶은 인공물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련을 갖는다. 플라스틱이 대표적이다. 1981년 내가 세 살 때 먹은 요구르트 병이 아직도 지상의 어딘가에 묻혀 있거나 해상의 어드메를 떠돌고 있을 것이다. 내가 태어난 해로부터 500년이 되는 2478년 무렵에야 지구상에서 영영 사라질 것이다. 내 아들이 먹고 버린 아이스크림 뚜껑도 2500년은 되어야 없어질 것이다. 500년 지속하는 생물은 극히 드물다. 동물은 거의 없고, 식물 가운데서도 극히 일부의 장수 종에만 해당한다. 고작 100여 년 전에 등장한 신종 물질인 플라스틱은 변이를 거듭하여 지구 만물 가운데 유난히 폭발적으로 확산하는 인공물이다.

인구증가에 비할 데도 아니다. 1950년 인류는 25억 남짓이었다. 2020년 현재는 80억을 헤아린다. 인구가 세배 증가하는 동안 플라스틱은 150만 톤에서 4억 톤으로 늘어났다. 무려 27배나 증가한 것이다. 자연수명도 백세 인생 인간을 훨씬 능가한다. 평균수명이 500년인 고로 국가의 흥망성쇠, 조선왕조의 일대기에 맞먹는다. 지구의 꼴을 이미 극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저 멀리 태평양 한복판에는 거대한 인공 쓰레기 섬, GPGP(Great Pacific Garbage Patch, 태평양 거대 쓰레기 섬)가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면적의 7배가 넘는다 하는데, 앞으로 더욱 '성장'할 것이다. 여기서 파도에 쓸리고 햇볕에 쪼개지면서 5밀리미터 미만의 미세플라스틱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먹은 물고기들이 우리의 식탁까지 올라와 우리는 일주일에 신용카드 한 장의 무게인 5g을 섭취하고 있다. "5G"가 만들어가는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사이의 초연결망 사회만큼이나, "5g"이 상징하는 자연물과 인공물과 인물 사이의 연결망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겠다. 아니, 후자는 생로병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생사를 가를 수도 있는 죽고 사는 문제인지라 더더욱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다.

▲인류가 누린 플라스틱 문명은 지구를 심각한 수준으로 위협하게 됐다. ⓒwikimedia

살고자 함은 생명의 본질이고 본능인바, 인간 또한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지 않다. 부지불식간 '비건' 만큼이나 '제로웨이스트'가 뜨고 있다. '플라스틱 프리', '에코 프랜들리'가 유행어가 되었다. 에코백에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그린그린한' 라이프스타일도 주목받고 있다. 심플 라이프, 미니멀 라이프, 축소주의자, 무해한 일상도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많이 전시/과시되는 이미지 가운데 하나다. 망원동의 알맹마켓, 성수동의 더피커, 제주도의 책방무사에 방문해 인증 샷을 올리는 이가 늘어나고, 논밭상점이나 터치포굿 같은 사이트 방문자수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MZ세대의 가치소비"라고 한껏 추켜세울 수 있겠지만, 불편한 진실 또한 없지 않다. 가령 일회용 컵 하나 생산하고 처리하는 것보다 텀블러 하나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량이 훨씬 많다고 한다. 세척하는데 드는 물까지 고려한다면 텀블러 하나당 1000번은 넘게 써야 환경적 효과를 거둔다고 한다. '물욕 없는 세계'가 새로운 물욕을 일으키는 역설도 기막히다. 이제는 친환경 제품을 경쟁적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기업도 재빨리 트렌드에 편승하여 구별짓기 욕망을 증폭시키고 가열찬 가치소비를 가차 없이 부추긴다.

결정타는 다시금 코로나 팬데믹이다. 위생에 대한 강박으로 우리는 일회용품 사용을 더욱 선호하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여파로 홈 이코노미도 대세가 되었다. 온택트 사회, 홈코노미와 집콕이 뉴노멀이 되자 쿠팡부터 마켓컬리까지 온라인 쇼핑의 거래액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 이상으로 성장한 사업이 있으니 바로 배달업이다. 혼밥, 혼술, 혼족, 1인 가구의 증가로 쓰레기양은 더욱 늘어만 간다. 셰프가 선망의 직업이 되고 요리 프로그램도 유행하고 있다지만, 정작 집에서 직접 요리해서 먹는 시간은 줄고 있다. 한국인 평균 요리시간은 일주일에 3시간가량이다. 반면 1인 가구는 월 평균 5.8회, 2인 가구는 4.3회, 3인 이상 가구는 3.9회 배달 음식을 주문해 먹는다. 평균 배달 시간 20분을 위해 사용되는 비닐용지는 그 용도를 다하고 버려진 후 장장 26세기까지 지구 어딘가를 떠돌게 될 것이다.

'#플라스틱어택' 등 디지털 공간의 그 수많은 해시태그에도 불구하고, 현실계에서 작년에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가 전년에 비해 16% 더 증가한 까닭이다. 'K-방역'의 성취를 자화자찬하는 반면으로, '배달의 민족' 한국은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에서도 세계 으뜸을 차지했다. 티끌 모아 태산, 삼시세끼의 위력으로 배달강국 한국은 드높은 쓰레기 산을 총알처럼 빠른 속도로 쌓아가고 있고, 드넓은 쓰레기 섬을 로켓처럼 만들어내고 있다. Made in Korea, 플라스틱 플래닛의 선도국가, 기후악당국가가 된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비닐봉지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나무를 쓰지 않아 친환경적이라며 인류가 열광했었다는 점이다. 지금은 당연한 듯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으로 간주되지만, 애초 비닐봉지는 가볍고 오래 쓸 수 있는 봉투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개발된 신소재 혁신 상품이었다. 플라스틱 역시도 조숙한 '동물권 보호'라는 고귀한 소명에서 출발했다. 당구공을 만들 때 사용되었던 코끼리 상아를 대체하기 위해 발명된 인공물이었기 때문이다. 동물과 식물을 보호하고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플라스틱이 이제는 동식물은 물론이요, 사람에게도 치명적인 위해를 가하고 있는 역설이 일어난 것이다. 새삼 소재의 역사, 재료의 역사, 물질문명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곱씹어보게 되는 연유이다. 석유문명, 탄소문명, 플라스틱문명 이후의 신문명을 전망하는 데에도 필수불가결한 복기 작업이라고 하겠다.

2. 플라스틱 라이프

새로운 사상이 새로운 세상의 씨앗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생각이야말로 생활의 변화와 생산 혁신의 출발이라고 여겼다. 세상을 조금 더 살아보니, 도리어 거꾸로인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서 누군가는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말씀하셨던 모양이다. 물질이 정신을 규정한다는 말이 아니다. 물질이 정신의 근간이 된다는 뜻이렷다. 실제로 시대를 구분 짓는 단위에서 약여(躍如)하게 드러난다.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라는 명칭 모두에 소재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최초의 인류는 석기나 목재처럼 자연에서 채집한 재료를 그대로 사용했다. 불의 발견 이후로는 철을 가공해서 주조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고 익혔다. 청동은 검은 나무나 돌로 만든 조악한 무기를 가뿐하게 제압해 버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혔다. 땅 속 깊이 파고들어 씨앗을 심을 수 있는 철기 괭이는 농업혁명을 촉발하여 인구가 증가하고 국가를 형성하는 흐름을 자극했다. 만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과 토테미즘은 만물을 주관하는 신을 따르거나 만물을 관통하는 이치를 따져묻는 종교와 철학으로 진화해갔다. 즉 생각만으로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지 않는다. 아니, 새로운 세상을 정리하는 사후 작업이 생각일지 모른다. 생활부터 바뀌어야 하고 생산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그 생활의 터닝포인트와 생산의 티핑포인트에 공히 재료의 혁신이 자리하는 것이다. 고로 문명 전환의 알파이자 오메가, 게임 체인저는 소재 혁명이라 하겠다. 재료부터 공들여 제련하고 나서야, 사상도 세련되게 가공할 수 있는 법이다.

실제로 원료는 만물의 기초다. 정치와 경제는 물론이요, 종교와 문화까지 온갖 삼라만상이 소재의 바탕 위에 세워진다. 줄곧 새로운 재료를 먼저 손에 넣은 자가 새로운 시대를 선도해왔다. 전쟁의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인 바, 전쟁의 승부를 가른 결정타 역시도 전략과 전술의 근간에 있는 무기였다 할 것이다. 고대의 거의 모든 국가들의 개창자가 무인(武人)이요, 근대의 거의 모든 나라들의 국부가 군인인 까닭이다. 이들은 공히 더 나은 소재를 만들기 위하여 당대 최고의 기술과 뛰어난 인재를 투입했다. 냉전기 미국이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설립하고 우주 개발을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 부은 까닭이기도 하겠다. 그리하여 화학, 물리학, 야금학, 공학 등 다양한 영역을 가로지르는 '재료과학'(material science)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까지 생겨났다. 다시금 물질이 정신을, 재료가 제도를 선도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인류의 3대 발명품이라 일컫는 것들도 모두 소재산업이라 할 수 있다. 종이는 셀룰로오스에 근간한다. 식물이 그린 어스(green earth), 지구 표면을 뒤덮어버릴 만큼 번성하는 데도 셀룰로오스가 있었다. 건축 자재나 연료가 되어 안온한 생활의 바탕이 되어주었고, 모시나 무명 같은 의류의 원천이 되어주었다. 종이가 초래한 파장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대하다. 종이 발명으로 인류는 지식과 문화를 기록하고 전파할 수 있는 최초의 정보혁명을 경험한다. 중국의 수나라에서 시작된 이래로 현재까지 1500년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는 관료제의 근간에도 종이가 자리한다. 종이를 먼저 발명했기에 과거제도가 시행될 수 있었고, 과거제가 지속되었기에 대규모 인재를 교육하는 고등 학문이 발달할 수 있었다.

나침반의 발명에는 자석이 있었다. 광물 세계를 돌아보면 자석만큼 불가사의한 물질도 없다. 외부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고도 다른 물체를 끌어당기는 물체가 자석 외에 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은 지구 자체가 거대한 자석이다. 지구에 자기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생명이 번영하는 행성이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자석이 나침반으로 진화하여 대항해시대만 개창한 것이 아니다. 20세기 현대문명의 바탕에도 자석의 공헌은 혁혁하다. 종이를 대체한 신정보혁명의 출발에 자기 테이트, 디스크가 자리하기 때문이다. PC에 기초한 정보화시대가 모바일로 만개하는 디지털시대로 이행하는 데에도 전자기의 역할은 다대했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등으로 상징되는 데이터시대의 근저에도 여전히 자석들이 버티고 있다. 인류가 철을 끌어당기는 신묘한 마법의 돌을 발견한 이래로 달에서도 5G 통신이 터지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석은 늘 인류 문명 진화의 반려자였다.

▲5G 시대까지 이어지는, 인류의 전기 혁명 근간에는 '마법의 돌' 자석이 있었다. ⓒflickr

이 세계를 축소시킨 소재로는 고무를 꼽을 수 있겠다. 타이어를 만들어 마차에 장착시킴으로써 자동차가 탄생할 수 있었다. 20세기 시공간 혁명에 고무가 있었던 것이다. 이 세계를 확장한 소재로는 알루미늄을 뽑을 수 있다. 알루미늄은 항공기 시대에 이어 로켓시대를 개창하여 인간의 거주 범위를 지구 밖 화성까지 확장하는 다행성 우주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인간은 이제 자연에 없는 재료를 조합해내기도 한다. 탄소와 규소를 인공적으로 결합해 빚어낸 실리콘이 대표적이다. 반도체의 원료가 바로 실리콘이다. 규소 골짜기, '실리콘 밸리'에서 만들어낸 딥마인드는 이미 인공 프로그램이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는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를 예고했다. 다시금 앞으로 전개될 미래 또한 소재공학의 혁신으로부터 촉발될 것이라 예감하는 까닭이다. 글로벌 그린뉴딜이든, 그린스마트 K뉴딜이든, 전기차와 수소차의 배터리를 개발하는 일이든, 태양광의 유기박막 패널을 제작하는 일이든 이 모두는 재료산업에서부터 출발한다.

앞으로 만들어질 수많은 인공소재의 원조이자 인공지구의 왕중왕이 바로 플라스틱이라 하겠다. 플라스틱만큼 다른 재료의 영역을 빠르고 광범위하게 잠식해 간 재료도 없다. 목재와 도기과 철기와 유리까지 온갖 제품과 상품이 플라스틱으로 대체되어왔다. 가죽과 종이와 천도 마찬가지였다. 플라스틱(plastic)은 본래 명사가 아니었다. '가능성 있는', '유연한'이란 뜻의 형용사였다. 플라스틱은 말 그대로 어떤 형태로든 성형이 가능하고 변형이 자유롭다는 치명적인 장점을 보유하고 있다. 가볍고 튼튼한데다가 적은 비용으로도 대량생산할 수 있다. 투명하게 만들 수 있으며, 다양하게 색을 입힐 수도 있다. 순수한 인공 재료여서 설계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성질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자유자재 변화무쌍하고 전천후 신출귀몰하는 플라스틱은 자연적 재료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독자성과 독보성으로 그 존재감이 우뚝하다.

그래서 오늘날 인류는 플라스틱 섬유로 만든 옷을 입고,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플라스틱 식기로 음식을 먹으며 플라스틱 카드로 돈을 낸다. 플라스틱 매체로 기록된 영상을 플라스틱화면에 띄워서 플라스틱 렌즈를 통하여 감상한다. 플라스틱 플래닛의 비탄에는 이처럼 한없이 편리한 플라스틱 라이프가 있다.

▲바다가 곧 지구다. 인류의 새로운 소재 운동의 원천을 바다에서 찾을 수 있을 지 모른다. ⓒwikimedia

3. 바이오 플라스틱

플라스틱 프리, 제로웨이스트의 물결에도 플라스틱 없는 라이프는 단 하루도, 어쩌면 한나절도 가능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서 대체 플라스틱을 만들자는 방향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플라스틱 프리 운동을 비거니즘에 빗댈 수 있다면, 바이오 플라스틱 생산은 대체육 개발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적지 않은 스타트업과 대기업들이 바이오 신소재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주로 감자나 사탕수수, 옥수수, 밀, 쌀에서 전분이나 당분을 추출한다. 이 원료를 활용하여 완전히 생분해되는 바이오 플라스틱을 생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용과 단가가 높고 물리화학적인 성질이 기존 플라스틱에 비해 열악하여 사용 범위와 용도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한계도 여전하다.

지상의 식물이 아니라 해상의 해조류에 눈을 돌린 참신한 생물소재 스타트업이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면 지구에서 뭍보다 물의 면적이 훨씬 넓다. 육지보다 바다가 훨씬 크다. '창백한 푸른 점'(The Pale Blue Dot) 지구의 상징이 바다인 까닭이다. '지구'(地球)라는 단어부터가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발상이다. 지표면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은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3분의 2를 넘는 광활한 영역이 바다인고로 수구(水球)나 해구(海球)라는 명명이 실상에 더욱 가깝다. 그린그린한 녹색 지구의 면적은 15% 안팎이지만, 블루블루한 청색 해구(海球)의 면적은 70%에 달하기 때문이다.

고로 바다야말로 미래이고 프런티어일지 모른다. 신대륙이 아니라 신대양을 주목해야 한다. 바다의 표면을 가득 뒤덮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치우고 나면 수많은 해양식물들, 해조류와 해초류가 무궁무진 자라나고 있다. 농업혁명도 산업혁명도 정보혁명도 모두 지면에서 발견하거나 발명한 소재에 근간해 있었다면, 도래할 미래문명, 생명문명의 에센스/엑기스는 해양에서 끌어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저 푸른 바다에서 블루오션을 개척하고 있는 바이오소재 기업 '마린이노베이션'을 주목한 까닭이다. 플라스틱 오션을 플랜트 오션으로 되돌리고, 플라스틱 플래닛을 플랜트 플래닛으로 되살리는 대반전의 사명을 품고 있는 단단하고 견실한 중견 기업이었다.

본사가 공교롭게도 울산에 자리했다. 울산이 어떤 도시인가. 한국형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공업도시이다. 조선업과 자동차는 물론이요, 석유화학산업의 메카 같은 곳이다. 바로 그 울산의 자유무역 지역에서 바이오 플라스틱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신생 스타트업이 분투하고 있다. 새파란 하늘 아래 한낮에도 하얀 연기를 연거푸 내뿜고 있는 공단을 가로질러 경공업 2동 건물에 당도했다. 2층으로 올라가 사무실에 들어서려니 "다음 세대를 위한 올바른 생각과 행동"이라는 푸른색 기업 사명부터 눈에 박힌다. 실제로 차완영 대표는 반듯한 마음으로 번듯한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올바른 기업가의 전형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묵묵하고 꿋꿋하게 13년을 다지고 묵혀온 마린이노베이션의 일대기를 들어본다.

이병한 : 정말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차완영 : 아닙니다. 저희뿐만이 아니라 대체 플라스틱 산업에 나서고 있는 업체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경쟁사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협력하고 협업해야 할 파트너라고 생각합니다. 플라스틱 문제를 함께 해결해가는 동반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병한 : 그러함에도 차별점 또한 확실한 것 같습니다. 여타 기업들이 육상에 있는 원료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면, 마린이노베이션은 기업명 그대로 바다의 혁신, 해양 자원을 활용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착상 내지 발상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계속)

▲차완영 마린이노베이션 CEO. ⓒ마린이노베이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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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

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인간 이전의 자연적 진화는 물론이요, 인간 이후의 자율적 진화에, 인간만의 자각적 진화를 두루 아울러야, 지구의 진화에 일조할 수 있는 미래학자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물의 공진화,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깊은 미래(DEEP FUTURE)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Deep Self), 무궁아(無窮我)이고 싶다. www.byeongh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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