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에서 38선을 넘어본 적이 있는가

[접경지역 바로알기] ② 접경지역에만 있다?

'38선'을 떠올리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임시 군사분계선이었던 38선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하며 넘은 무시무시한 선이었다. 정전협정 후 세월이 흘러 38선 휴게소가 세워졌고, 국도변을 달리다 38선 휴게소를 지나가거나 잠시 쉬어간 적이 있으리라.

38선 휴게소는 아직도 포천, 인제, 양양에 있다. 38선을 나타내는 표지석은 연천, 가평, 포천, 화천, 인제, 양양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지금은 그 경계선 위를 살짝 넘을 수 있지만 조금만 가면 분단의 선에 가로막힌다.

▲ 왼쪽 위 인제군 남면 38선 휴게소. 아래 왼쪽 포천시 영중면, 오른쪽은 연천군 청산면 38선 표지석 ⓒ김효은

'평화'의 구호를 외치는 접경지역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접경지역 만큼 '평화'가 절실한 지역이 있을까. 접경지역은 '평화'를 내세울 수밖에 없는 곳이다. 광역이든 기초든 접경지자체는 평화의 선봉장이다.

▲ 접경지역 지자체들의 구호. 위에서부터 고양시, 동두천시, 연천시 ⓒ김효은

▲ 접경지역 지자체 구호. 왼쪽은 파주시, 오른쪽은 포천시 ⓒ김효은

이처럼 접경지자체는 시(군)정 구호와 비전에 평화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구호에 표현하지 않더라도 평화는 핵심과제로 포함되어 있다. 철원(평화 생명 생태의 국토중심), 고성(희망찬 미래 평화중심 고성), 김포(평화생태문화도시), 양구(미래로 도약하는 평화도시) 등이 그렇다.

광역지자체의 구호에도 평화가 포함돼있다. 강원도는 '평화와 번영 강원시대'를 도정 구호로 내세웠다. 경기도는 '새로운 경기 공정한 세상' 아래 '공정, 평화, 복지' 3대 가치 중 두 번째가 평화다. 인천광역시는 '살고 싶은 도시 함께 만드는 인천'의 하위 5대 시정목표에 '동북아 평화번영의 중심'이 들어있다.

북한에도 동일명칭이 있는 세계 유일의 분단도인 강원도는 '접경지역' 을 전쟁, 분단, 소외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평화와 번영을 상징하는 곳으로 발전시키고자 '평화지역'으로 선언했다.

남북교류협력과 평화조성에 대한 의지는 지자체의 행정조직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서울시, 경기도, 강원도는 국 단위의 전담조직이 있고, 인천시는 과에서 담당한다. (서울시 남북협력추진단 내 4개과, 경기도 평화협력국 내 4개과, 강원도 평화지역발전본부 내 5개과, 인천시 남북교류협력담당관) 지자체 남북교류 역사가 20년이나 되는 만큼 평화는 도(시)정에서도 주요 의제로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접경지역으로 부르지만 각 시군이 처한 환경은 매우 다르다. 주민들 인식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같은 경기도 내에서도 고양시처럼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가 있는 반면, 연천군은 인구가 점점 줄어 5만 명이 안 된다.

서울 출퇴근 생활권인 김포 시민들이 도시를 철조망이 두르고 있다는 걸 실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양시에 군부대가 그리 많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광개토대왕의 뜻을 받든 1군단 사령부가 있고, 국군병원이 있으며, 백마부대, 올림픽부대, 독립문부대 등 이름이 알려진 부대들도 많다.

광역지자체인 인천, 경기, 강원 또한 사정이 제각각이다. 강원도 접경지역은 대부분이 군사지역이다. 강원도 접경지역 5개 시군은 행정구역 면적의 53.8%가 군사시설 보호구역이고 주민의 71.8%가 군인이다. 지역경제가 군부대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방개혁 2.0으로 군부대 해체와 이전의 영향을 받는 지역주민의 위기감은 지역소멸과 함께 생존의 위기다. 3개 사단 해체와 1개 사단 재배치에 장병 2만 9천 명이 감소하고 GRDP(지역 내 총생산)에도 30% 정도 손해를 예측하고 있다(김범수 강원연구원, 2020 접경지역 균형발전 정책포럼). 강원도는 지역경제 및 관광활성화 지원 등 국방개혁에 따른 평화지역 종합지원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인천은 바다에 보이지 않는 선으로 북한과 대치하고 있다. 연평해전,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등 남북충돌의 현장이고 분단의 피해를 직접 받으면서도 분단이 덜 느껴지는 역설의 현장이다. 2007년 제2차 남북정상선언의 핵심인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의 주무대이며, 세계적인 공항, 항만, 경제자유구역을 갖고 있어 국제도시, 동북아 평화도시를 지향한다.

경기도는 최대 광역지자체로 땅덩어리, 인구만큼이나 경기 남·북부의 현실이 매우 다르다. 31개 시·군 중 한강을 중심으로 북쪽에 있는 10개 시군을 경기북부라 칭한다. 서부의 고양부터 동북부의 구리, 남양주, 가평까지다. 이중 3개 시군(접경지역지원특별법상은 7개)이 접경지역이다. 경기북부는 수도권정비권역, 군사시설 보호구역, 팔당특별대책 등 중첩 규제의 피해를 호소한다. 국가안보와 식수·환경보전을 위해 개발이 제한되며 경기도라는 이유로 각종 수도권규제 대상이다.

군사지역인 접경지역, 민·관·군이 함께 사는 곳

접경지역은 군사지역이고 남북관계에 큰 영향을 받는 곳이다. 2010년 연평도 포격은 정전협정 이후 남한 내 영토가 공격받은 사건으로, 주민들은 뭍(인천)으로 나와 피난민 신세가 됐다. 김포시 애기봉 전망대의 성탄트리는 남북간 민감한 사안으로 2014년에는 북이 조준사격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2015년엔 대북전단 살포용 풍선에 고사포를 발사하여 연천군에 탄피가 떨어졌다. 장마철에 북에서 떠내려 온 목함지뢰가 강화 교동도, 경기 연천에서 발견되었다는 뉴스는 종종 나온다.

군대가 많으니 군과 민이 따로가 아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ASF)로 2019년 가을부터 평화관광과 축제가 중단되고 코로나로 군장병 외출, 외박이 금지되자 지역 상인들은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숙박업소, PC방, 치킨집은 개점휴업상태다, 양구읍의 한 식당 주인은 "군인이 휴가 안 나와서 어려우시겠어요"라는 필자의 질문에 "작년부터 죽겠어요. 죽지 못해 살고 있어요, 허허허", 라며 허탈웃음을 짓는다.

그래서 접경지역은 민·군·관 협력이 필수다. 군관협력 전담부서를 두고 주민과 군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한다. 경기도의 경우 지상작전사령부와 정례적인 정책협의회를 통해 지역발전사업 추진을 위한 고도제한 등 군의 협조를 요청한다. 군에서도 군 장병 관련 정책 지원이나 도로개설, 하천 정비사업 등을 요청한다.

▲ 2019년 상반기 경기도-지상작전사령부 정책협의회, 뒷줄 맨 왼쪽 필자 ©경기도청

영농철과 집중호우 피해지역 복구 대민지원은 물론이고 ASF와 코로나 대응에서 군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국방부가 비무장지대에 헬기를 띄우고 소독약을 살포하고 야생멧돼지 포획에 나섰다. 의료진과 의료시설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군의료진이 코로나 선별진료를 지원하기도 했다. 강원 철원군은 작년 가을에, 농경지와 주택 침수 피해 복구에 나선 대민지원 군장병 고향집에 철원오대쌀 보내기 운동을 했다

시·군청 홈페이지에는 면회 안내나 군장병 할인업소 등 군 관련 정보제공란이 있다. 연천군은 초기 화면에 군부대 훈련일정을 게시하고 있으며 타 시·군도 훈련 소식을 보도자료로 내서 주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한다.

군인지역이라는 것은 신년사에서도 실감한다. 화천군수 2021년 신년사는 경우 '사랑하는 군민 여러분! 국군장병 여러분! 그리고 공직자 여러분!'이라고 해서 장병이 군민 다음에 나온다. 군장병과 가족을 위한 각종 지원책도 아끼지 않는다. 양구군은 신병훈련수료 장병에게 지역상품권 1만원을 지급하고, 군복입고 농어촌버스 탑승시 무료혜택을 준다. 제대군인이 전역 후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교육과 지원책을 제공하고 있다.

접경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남과 북이 갈라져 있으나 연결돼 있듯이 접경지역은 처한 현실은 달라도 떨어져 있지 않다. 코로나19로 온 국민이 고통받고 있는 지금 접경지역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사수의 최전방이다. 2019년 9월 돼지에서 첫 발생한 이후 여전히 야생멧돼지에서 바이러스가 나오고 있다.

감염 돼지가 나온 인천 강화, 경기 김포, 파주, 연천의 돼지사육농가는 모든 돼지를 살처분했다. 이후 바이러스의 남하를 막기 위해 전쟁 아닌 전쟁이 시작됐다. 경기북부 최대 돼지사육지 포천이 뚫리면 남하는 시간문제다. 최근엔 경기와 강원 접경지역 250km에 이르는 광역울타리를 뚫고 남하한 멧돼지가 발견돼 걱정이 더욱 크다. 다음 편에서는 접경지역이 세력과 사람이 만나 부딪치는 한반도 중심지였던 역사를 살펴보겠다.

▲ 훼손방지 안내문이 붙은 ASF 차단 광역울타리 (왼쪽 화천군, 오른쪽 양구군). ©김효은

▲ 연천 군남면 DMZ사과 영농조합(위), 철원 갈말읍 민통선 한우촌(아래 왼쪽), 인제 남면 삼팔회집 ©김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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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은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를, 인제대에서 통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새정치국민회의 공채 1기로 정치권에 발을 디딘 후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을 지냈다. 접경지자체인 인천광역시 남북교류협력팀장, 경기도 평화대변인을 역임하며 남북관계 이론과 실무를 두루 갖춘 남북관계·통일전문가로, 현재 대진대학교 DMZ연구원 객원교수로 있으며 <인천일보> 평화연구원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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