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 잃은 검찰개혁, 콘크리트 지지층은 없다

[최창렬 칼럼] 민주주의 생략한 공수처법, 오만한 권력 데자뷰

한국정치는 경제에서의 분배 문제와 자본-노동 갈등, 안보영역에서의 보수-진보의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서구와 달리 정당 역사가 일천하기 때문에 확고한 정당정체성에 기반하지 않지만, 민주화 이후 보수적이고 허약한 정당체제에도 불구하고 일정 수준의 이념적 구분이 가능해진 것은 의미 있는 변화라고 하겠다.

그러나 작금의 집권세력과 야당의 갈등은 전통적 갈등 축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특정 정국 이슈가 현안으로 떠오르고 여야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긴장 관계가 전개되다가 또 다른 이슈가 블랙홀이 되는 한국정치의 문법과는 다른 형태다. 다름 아닌 추미애 장관이 총대를 멘 여권의 윤석열 검찰총장 퇴진 압박이다. 이를 둘러 싼 이슈가 지난 해 조국 사태 이후 1년 이상 지속되면서 향후 선거는 물론 정권의 향배와 결정적 인과관계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 상황에 대한 일반적 표기는 '추-윤 갈등'이다. 그러나 이 네이밍은 사건의 행간을 생략하고 있다. 발단은 지난 해 조국 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된 조국 후보에 대한 의혹이 연일 쏟아지는 상황에서 조국 후보는 검찰에 고발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은 여권에 의해 대통령의 인사권에 도전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문제는 그 이후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과, 유재수 감찰 무마 등 권력과 연동되어 있는 의혹 사건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결정적으로 정권이 윤석열을 배제하게 되는 핵심적 동기로 작용했다. 원전 관련 수사는 검찰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 정책마저도 폐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무소불위의 거대권력이며 그 중심에 윤석열이 있다는 논리로 진화하는 빌미가 되었다.

문재인 정권의 핵심들은 그들이 파격적으로 발탁하여 박근혜의 권력 사유화와 국정농단 수사를 주도한 윤석열 총장을 검찰 기득권에 집착하는 반개혁적 인사로 단정했다. 친여 성향 인사들에 의해 검찰주의자로 낙인찍힌 윤 총장은 급기야 재판부까지 불법으로 사찰하며 권위주의 정권의 악습을 버리지 못하는 "전두환 급 대역죄인"이라고 까지 몰리게 되었다.

무리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법무장관에 의한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청구와 직무배제 과정에 절차적 흠결이 드러났고, 문 대통령은 징계에서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 사태에 대해 국민에 사과했다.

검찰개혁의 대의는 정권의 이익을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전락했다. 윤석열 사퇴를 검찰개혁과 등치시키는 방식, 개혁 대 반개혁의 프레임, 정치검찰 대 민주적 통제의 이분법적 대비는 상대를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맹목적 지지자들의 결속을 도모하는 선거지상주의와 권력정치를 확장 시키는 데 동원되고 있다.

자제의 규범과 관용이 부재한 권력은 오만해지기 마련이고 오만한 권력은 시민들에 의해 추방되는 구조가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기본원리다. 콘크리트 지지층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박근혜 탄핵을 주도한 정치세력이 어제의 역사적 교훈에 눈감으려 하는가. 박근혜 정권은 친박·진박 세력을 중심으로 특정 지역의 지지에 기대 정권을 연장하려 했으나 결국 그들이 믿었던 보수조차 등을 돌렸다.

당시 지금의 집권당인 야당에게 집권의 기회는 영원히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은 그러한 야당에게 기회를 줬다. 야당이 유능해서가 아니라 박근혜 정권의 절제되지 않은 권력의 오만함에 대한 심판이었다. 진영에 묻혀 영원히 집권할 것 같은 착각은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파면으로 결과됐다.

검찰개혁은 움직일 수 없는 대세이고, 개혁의 양대 축인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도 기정사실이다. 검찰이 그동안 누렸던 특권과 정치검찰로 기능했던 구태는 당연히 개혁되어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추미애 장관과 민주당의 행태는 민주주의의 절차적 측면을 간과하는 오류에 기초하고 있다. 멈춰서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수처법 개정 과정에서 나타났던 절차의 생략과 합의제 민주주의를 간과하는 오류에 대해 최소한의 유감 표명도 하지 않는다.

특정 집단과 개인을 내부의 적으로 대상화하여 지지를 결집하는 행위는 권위주의 정권이 냉전논리를 동원하여 정권의 불법성을 호도하려 한 것과 같은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행정부 권력은 물론 의회권력과 지방권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세력답게 절제를 바탕으로 합의를 모색하는 정치의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여전히 박근혜 탄핵에 반성하지 못하는 제1야당의 구태를 반사이익으로 삼는 정치에 유혹을 느낀다면 어떠한 개혁도 입에 담을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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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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