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의 미국, 트럼프의 미국과 다르지 않을 것"

[인터뷰]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①

조 바이든이 지난 7일(현지시간) 대선 승리 선언을 했다. 이틀 뒤 바이든은 대통령직 인수 절차에 돌입했다. 1호 지시로 코로나 대응팀을 창설하고 코로나 대응과 함께 경기 회복, 인종 평등, 기후변화를 4대 국정 과제로 발표했다. '방역 실패, 경기하강, 인종불평등, 기후변화'를 부정한 트럼프의 주장을 뒤집는 행보다.

도널드 트럼프의 몰락과 바이든의 집권이 확실해 보이는 이 때 그 다음을 걱정하는 이들은 몇 가지 의문을 꺼내든다. 코로나로 미국이 겪은 어려움은 온전히 트럼프의 탓이었을까. 바이든의 미국과 트럼프의 미국은 다를까.

미 대선을 일주일여 앞두고 출간한 책 <아메리칸 엔드 게임>(현암사 펴냄)의 저자인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도 그 중 한 명이다.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해 김 교수의 책에서 읽어낼 수 있는 답은 다음과 같다.

트럼프가 방역에 실패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이 코로나로 겪은 어려움의 기저에는 민간 중심 의료체계와 불평등을 켜켜이 누적시켜온 대기업, 월가, 사모펀드 중심 경제체계가 있다.

2주간 격리된 환자에게 병원비 7300만 원을 청구하는 나라에 제대로 된 팬데믹 대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소상공인을 위한 코로나 구제금융마저 대기업이 채가는 나라에서 서민을 위한 경제위기 대응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정치가 미국 의료나 경제의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제한 없는 슈퍼팩(SUPER PAC)을 통해 거액의 정치후원금을 낼 수 있는 부자들이 미국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억만장자를 공격하는 버니 샌더스가 미 민주당 경선에서 번번이 떨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바이든도 대기업, 월가, 사모펀드와 같은 기득권 세력의 낙점을 받은 후보일 뿐이다. 실제로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고 바이든이 부통령이던 2012년 미 연방주택기업감독청은 사모펀드의 압류 단독주택 대량매집을 허용하며 부동산이 돈 놓고 돈 먹기의 장이 되는 길을 열었다.

따라서 아주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바이든 당선 이후 미국 사회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미 대선 개표가 한창이던 지난 6일, <프레시안>이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의 나라 미국에서 '아메리칸 나이트메어(American Nightmare)'가 펼쳐져 있다고 탄식하며 미국 사회에 필요한 건 표면적 정권 교체가 아닌 불평등을 타파하기 위한 근본적 개혁이라고 주장하는 김 교수를 만났다. 그에게 미국사회의 문제점과 앞으로의 전망, 이에 대한 한국의 대응 방향을 물었다.

김 교수와의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이 진행했다. 인터뷰는 두 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바로가기 : 김광기 교수 인터뷰 2편 "돈을 숭상하고 돈이 지배하는 미국, 언제까지 따라할 건가"

프레시안 : 책 제목이 '아메리칸 엔드 게임'이다. 미국 정치에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김광기 : 끝났다기보다는 '막장'이라는 뜻이다.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이 나와서 붙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민주당도 공화당도 금권 엘리트 위해 일하긴 마찬가지"

프레시안 : 책에서 '트럼프냐 바이든이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적었다.

김광기 : 의미가 없다. '예측 가능한 막장이냐 예측 불가능한 막장이냐'의 차이다. 국민이 아닌 미국 기득권이 볼 때 바이든은 예측가능하고 트럼프는 예측불가능하다.

미국 기득권인 대기업과 월가, 위성(衛星) 월가인 사모펀드는 바이든을 원한다. 예측가능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도 자기들한테 콩고물을 주지만 독자적인 사익도 추구한다. 트럼프는 그들로서는 예측가능하지 않다. 바이든은 전적으로 꼭두각시다.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부릴 수 있다. 한 마디로 기득권 세력이 주체가 되겠다는 거다. 그러니 미국 기득권세력(월가, IT기업 등이)과 대중매체가 전폭적으로 바이든 편을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대선 전에 주류 언론이 얘기하는 대로 바이든이 큰 표차로 압승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근소한 차로 트럼프가 이길 거라고 봤다. 첫째, 현직 대통령 프리미엄이 엄청 크다. 둘째, 미국이 그 어느 때보다 두 쪽으로 첨예하게 분열되어 있는데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은 기존 대중매체를 믿지 않는다.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정도로 큰 차이가 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리나라 언론에서 떠들어 대던 '샤이 트럼프', '트럼프의 뒷심' 이런 말 듣고 실소했다. 왜냐하면 미국엔 애초에 그런 게 없었기 때문이다.

언론과 여론조사기관이 거대기업이나 월가와 한통속이고 공생관계이다 보니 바이든 쪽으로 기울어진 보도와 조사가 나왔다고 본다. 억만장자를 공격했던 버니 샌더스는 민주당 경선에서 일찌감치 떨어졌다.

프레시안 : 미국의 고질적인 문제를 정치가 해결하려면 '샌더스 대 누군가'가 되는 게 맞는데 샌더스는 기득권 세력의 뜻에 따라 민주당 경선에서 떨어졌고, 이후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압승이라는 조사가 나온 건 학자들이나 기득권의 소망이 발현된 결과였다는 해석이다.

김광기 :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진보적 학자로 알려진 폴 크루그먼도 지난 대선과 이번 대선 때 보면 샌더스를 완전히 깔아뭉갰다. 심지어 <워싱턴포스트>에 코로나로 모두가 피해를 보는데 유일하게 이익을 본 사람이 샌더스라고 썼다.

코로나로 이익 본 사람은 따로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양적 완화해서 돈 풀고 초저금리 정책 써서 경제에 거품이 끼었다. 보통 사람은 가격이 올라서 집을 못 사는데 돈 있는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 상승 같은 걸 이용해 이익을 봤다. 거품이 꺼지고 경제가 안 좋아지면 그걸로 이익을 본 사람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갈 거다. 이런 사람들에게 코로나는 책임을 전가할 호재다.

경제에 거품이 끼게 하고 이익을 본 사람들이 따로 있는데 진보적인 학자로 알려진 사람(폴 크루그먼)도 샌더스를 공격한다. 이런 걸 보면 미국이 정말 막장이라고 느낀다.

프레시안 : 미국 언론은 바이든이 압승하고 민주당이 양원 선거도 이길 거라고 봤다. 결과를 보면, 바이든은 이겼는데 민주당은 양원 선거를 못 이겼다. 이 때문에 '트럼프는 떨어졌지만 트럼피즘(Trumpism)은 남아있을 거다'라거나 '하원에서 민주당 의석이 많지만 상원에서 공화당 의석이 많아 비토크라시(Vetocracy, 상대 정파의 정책과 주장을 모두 거부하는 극단적 파당 정치)는 계속될 거다'라는 예측도 나온다. 바이든이 당선돼도 미국의 분열은 오래 갈까?

김광기 : 오래 갈 것 같다. 그렇다고 정치권이 분열한다는 건 아니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다 금권 엘리트에 의해 구워삶아져 있다. 겉으로는 싸우는 척 하지만 진짜로 하고 싶은 건 기득권 세력을 위해 규제를 풀고 봉사하는 거다.

▲ <아메리칸 엔드게임> (김광기 지음, 현암사 펴냄) ⓒ현암사

"트럼프도, 오바마도 금권 정치의 포로였다"

프레시안 : 먼저 과거를 짚어보자.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고 해서 중산층 이하 보통 사람을 위한 정책을 하겠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1조 5천억 달러 감세 같이 기득권 세력을 위한 일을 했다. 사실 중산층을 위해 한 일이 없다. 그렇게 된 이유는 뭔가?

김광기 : 트럼프는 상인이다. 그도 기득권 세력이다. 비록 주류에서 비껴나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 또한 넓게 보면 기득권에 속한다. 중산층을 위한다고 해놓고 결국 사익 추구를 위해 일했다. 자기와 자기 동맹을 위한 정치를 했다. 트럼프는 양당 모두에서 아웃사이더였다. 한국식으로 이야기하면 기존 정치의 적폐를 청산하고, 미국을 기득권 세력만 잘 사는 불평등한 사회가 아닌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로 바꾸려는 생각이 일말이나마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결국 자기 욕심이 앞섰다.

또 하나는 인사 정책이다. 미국 정부 인사가 회전문 인사다. 한 사람이 사기업 갔다 고위직 공무원 갔다 한다. 그런 사람들은 공직에 있을 때 사기업을 위해 일한다. 그런 인사 안 한다고 했는데 했다. 사람을 그렇게 쓰면 기득권을 위한 정책을 펴게 된다.

대표적인 게 코로나 치료제 램데시비르의 희귀약품 지정이다. 희귀약품 지정은 환자 수 20만 명 미만인 희귀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제약회사의 투자비용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그런데 미국에만 확진자가 1000만 명이 넘는 코로나의 치료제를 희귀약품으로 지정했다. 이때 백악관 보건 정책 고문인 조 그로건이 램데시비르를 개발한 제약회사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로비스트였다.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인 알렉스 아자르도 제약회사 일라이 릴리의 로비스트였다.

이 둘의 영향이 또 있다. 트럼프가 2016년 대선 때 약값 인하를 공약했다. 2019년 민주당이 약값 인하 법안을 발의하자 트윗으로 지지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약값 인하 법안이 통과되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그로건과 아자르가 그 때도 고문이고 장관이었는데 약값 인하에 반대했다. 이런 사람들을 쓰면 개혁은 할 수 없다.

프레시안 :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당선된 버락 오바마도 1조 달러대 구제금융을 투입하면서 문제 일으킨 기업을 살려놓고 피해자는 안 살렸다. 금융제도 개혁도 못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뭔가?

김광기 : 오바마도 바이든처럼 금권 엘리트에 의해 발탁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말 잘 하고 잘 생겼고 흑인이라는 것도 이점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미국이 망하는 상황에 가 있었으니까 구세주(Savior)를 떠올리게 하며 오바마가 당선됐지만 보통 사람들을 위해서는 한 게 없다.

오바마케어도 대단한 개혁이 아니다. 한국처럼 공공보험을 만든 게 아니다. 전 국민을 민간의료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시킨 거다. 민간의료보험의 보장 수준과 범위는 천차만별이다. 모든 병원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바마케어에 가입한 환자를 안 받는 병원도 있다. 민간의료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병에 걸리거나 병원을 잘못 가면 국민 입장에서는 보험료만 나가는 거다. 일종의 세금인 셈이다.

프레시안 : 위기가 왔으니 금융 시스템을 살리는 건 좋은데 사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피해 본 보통 사람을 살리는 데는 그만큼 돈이 안 든다. 왜 못했나.

김광기 : 피해를 본 서민에게는 신경 안 썼다. 금융위기 주범은 월가 대형 금융회사를 위시한 금권 엘리트였는데, 당시 재무부 장관이었던 티머시 가이트너가 월가와 결탁해 혈세를 떼려넣어 금융위기에 책임 있는 기업은 다 살려줬다.

물론 금권 엘리트들이 비난받기는 했다. 그러니 이들이 위성(衛星) 월가인 사모펀드를 만들었다. 월가 대형 금융회사에는 겉치레로나마 규제가 있다. 사모펀드는 그 정도 규제도 없다. 그러니 돈 버는 일이라면 아무거나 마음대로 다 한다.

▲ 급격히 오르는 미국의 약값을 잡겠다던 트럼프의 공약은 거대 제약회사의 로비스트로 일했던 이들을 보건복지부 장관과 백악관 고문에 앉히며 허언이 됐다. ⓒ현암사

사모펀드에 먹힌 미국 경제

프레시안 : <아메리칸 엔드 게임>에서 사모펀드 문제를 비중 있게 다뤘다.

김광기 : 사모펀드가 미국에서 어떤 일을 했나. 2008년 금융위기 때 빚을 못 갚은 사람들 집에 차압이 들어오니 집값이 폭락했다. 사모펀드는 돈이 있으니 그 집을 헐값에 대량으로 사들여 임대 사업을 했다.

2008년 금융위기 전에 사모펀드는 부동산에 손 안 댔다. 큰 상업용 건물은 샀어도 단독주택은 안 샀다. 그런데 2011년에 사모펀드 '블랙스톤'이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더니 2012년 7월까지 86억 달러를 들여서 미국 14개 지역에 주택 4만 4000채를 샀다. 2019년 6월 통계를 보면, 미국 17개 지역에서 8만 채를 보유하고 있다. 사모펀드가 제1의 부동산 재벌이 된 거다.

정치권의 비호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 오바마 정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가 길을 터줬다. 2012년 연방주택기업감독청이 압류된 단독주택을 대량 매집해 임대 사업을 할 수 있게 하는 시험용 프로그램을 사모펀드에 허용했다.

블랙스톤 사장인 스티브 슈워츠먼은 트럼프 친구이기도 하다. 정치 후원금을 엄청나게 많이 냈다. 자기 생일 파티를 한다면서 트럼프가 소유한 리조트에서 2000만 달러를 쓰기도 했다. 사모펀드는 파생금융상품도 많이 판다. 트럼프는 오바마 때 이미 유명무실화된 파생금융상품 관련 규제를 더 많이 풀어줬다.

프레시안 : <아메리칸 엔드 게임>에서 사모 펀드가 헐값에 몇 백만 채의 집을 샀다는 걸 보며 나오미 클라인이 말한 '재난 자본주의'가 떠올랐다. 경제적 위기라는 재난이 와서 서민들은 고생했는데 돈 있는 사람들은 집을 싸게 사서 이득을 봤다.

김광기 : 금권 엘리트가 금융위기를 불러와 놓고 위기로 탈탈 털린 시민을 돈의 노예로 만들었다. 사모펀드가 단독주택을 사서 임대시장에 내놓으니 금융위기 때 집을 빼앗긴 사람들이 그 집에 임차인으로 들어갔다.

사모펀드가 집을 대량으로 사들이니 집값도 터무니없이 올랐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2012년 이래 집값 중간값이 두 배 올랐다. 또 사모펀드가 집을 사서 살짝 고친 다음에 임대료도 전보다 올려 받았다. 월가의 사모펀드가 집도 빼앗고 그것도 모자라 악덕 집주인으로 등극한 거다.

2018년에 <포츈>이 방 2개 월세 임대아파트를 얻으려면 최저시급을 얼마 받아야 하는지 계상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32달러, 샌프란시스코에서는 60달러였다. 그때 미 연방정부가 정한 최저시급이 7.25달러였다. 이러면 집에서 살 수가 없다. 임차인이 노숙자가 된다. 월가가 집을 다 거머쥔 결과다.

이런 일을 해도 규제가 없다. 정부가 해야 하는데 안 한다. 트럼프도 그랬고 바이든도 그럴 거다.

프레시안 : <아메리칸 엔드 게임>에서는 '기업 장의사'라는 표현을 쓰며 사모펀드가 기업에 준 악영향도 다뤘다.

김광기 : 사모펀드가 원래 기업을 사서 구조조정 한 다음에 팔아버리고 이익을 챙기는 일을 많이 한다. 주식 배당을 왕창 뜯어가기도 한다. 중저가신발업체 페이리스(Payless)도 사모펀드에 넘어가더니 3억 2200만 달러 이익 보는 동안 3억 5200만 달러를 주주에게 배당했다.

이런 식이면 정상적인 기업은 살 수가 없다. 돈이 몰려 사모펀드는 이익을 보는데 정작 기업은 망한다. 부동산 시장도 마찬가지다. 돈이 몰려 사모펀드는 이익을 보는데 집값이 올라서 정작 집이 필요한 사람들은 살지를 못한다.

앞에서 욕하긴 했지만 폴 크루그먼이 "주식시장은 경제가 아니다(Stock market is not economy)"라고 했다. 그 말이 정말 맞다. 특히 사모펀드가 활개 치면 금융과 실물 간 비동조화(Decoupling)가 너무 심해진다. 미국 최대 렌터카회사 허츠(Hertz)가 파산했는데 주식은 오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허츠도 파산보호신청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사모펀드 때문이었다. 사모펀드가 회사 지분을 많이 확보한 뒤부터 맥을 못 추는 좀비 기업이 되었다.

▲ 미국에서는 사모펀드가 2008년 금융위기 때 헐값이 된 주택을 대량으로 구입해 임대사업을 시작한 뒤 주택 가격과 임대료가 크게 올랐다. ⓒ현암사

"코로나, 미국 경제의 진상을 드러냈다"

프레시안 :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오바마 때부터 미국 경제는 호황이다. 유럽보다는 낫다'고 한다.

김광기 : 주식시장 보고 이야기하는 거다. 돈 있는 사람들은 주식이 오르니 좋다. 집 가진 사람들도 집값이 오르니 좋다.

트럼프는 일자리가 늘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안 좋은 일자리다. 미국 상황이 완전고용에 가깝다고 했는데 코로나가 오고 2020년 5월에 실업률이 14.7%까지 치솟았다. 그동안 늘었다던 일자리가 다 없어졌다. 튼실한 일자리는 위기가 와도 일정 기간 버틸 여유가 있다. 그게 안 되는 일자리가 많았던 거다.

책에도 썼지만, 코로나라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오면서 미국 경제가 나 홀로 잘 나갔다는 건 허상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문제는 트럼프 지지자든 오바마 지지자든 보통 사람들의 삶이 피폐해졌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정확하게 분석하지 않고, 상대 진영 탓이라고만 한다는 거다.

프레시안 : 문제는 금권 엘리트를 비롯한 기득권 세력인데 서로 싸운다는 이야기다.

김광기 : 맞다. 그러니 기득권 세력은 위에서 보고 씨익 웃을 거다.

민주당이 이야기하는 대로 트럼프가 코로나 방어 못한 거 맞다. 그런데 트럼프만의 문제는 아니다. 켜켜이 쌓여온 미국 의료보험 시스템의 문제가 크다. 그런데도 코로나 탓만 하는 건 코로나를 자기 진영의 승리를 위한 정략적 수단으로 이용하는 거다.

"미국 코로나 소상공인 구제금융, 대기업이 가져갔다"

프레시안 : 출구조사만 보면 투표할 때 제일 중요한 게 경제였다고 하더라. 그런데 기득권 세력은 지금 경제가 안 좋은 이유를 코로나 때문인 걸로 몰아버렸다. 금융위기 이후 사모펀드의 활동 등으로 인한 자신들의 책임은 지워버렸다.

김광기 :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똑같다. 위기의 원인인 거품을 만들며 열매를 따먹고 거품이 빠지면 구제금융으로 열매를 또 따먹는다.

코로나 구제금융 때도 그랬다. 코로나가 오니 정부가 대기업에 구제금융 줬다. 세금도 감면했다. 그랬는데 정부가 소상공인을 돕겠다며 내놓은 6600억 달러 규모의 PPP(급여 보호 프로그램, Paycheck Protection Program) 대출금도 대기업이 다 가져갔다. 1차 PPP 때 5% 대기업이 전체의 절반을 빌렸다. 15만 달러 이하 대출은 15%였다. 2차 때는 좀 나아졌다는데도 1% 대기업이 1/4을 빌렸다. 15만 달러 이하 대출은 37%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나 보니 일단 트럼프 정부 인사와 기업 간 연줄이 작용했다. <가디언> 추산으로 트럼프 정부와 연계된 회사가 가져간 PPP가 2800만 달러다. 또 PPP 분배를 대행한 은행이 선착순 원칙을 세웠다. 대기업은 정보 습득이 빠르고 언제든 대출 신청 서류를 꾸밀 준비가 돼 있다. 구제금융을 선착순으로 분배하면 소상공인은 대기업과 게임이 안 된다.

정부가 코로나에 이런 식으로 대처하면 작은 기업이 많이 도산할 거다. 기업이 도산 위기에 처하면 현금을 들고 있는 사모펀드가 들어가서 또 장난친다. 헐값에 사들여 열매 따먹고 팔아치우거나 버리는 거다.

프레시안 : 2001년 9·11 테러나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코로나 때도 돈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살게 될 거란 이야기다.

김광기 : 극심한 불평등 뒤에는 파국이 왔다. 1928년에 상위 1%가 국가 소득의 24%를 차지했다. 1920년대 말에 공황이 왔다. 2007년에도 상위 1%가 국가 소득의 24%를 차지했다. 그 다음 금융위기가 왔다.

지금은 상위 1%가 차지하는 몫이 더 커졌다. 앞으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 트럼프가 코로나 터지고 재선이 안 될 거 같으니 돈을 퍼부어서 막아놨을 뿐이다.

한국도 돈 퍼붓는 걸 흉내 내고 있다. 미국은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곳이니 돈 퍼붓는 게 가능하다. 한국은 미국처럼 하기 어렵다. 그렇게 돈 써서 서민을 살리면 모르겠는데 대기업만 살리고 문제다.

▲ 미국이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시행한 구제금융책인 급여 보호 프로그램(PPP)의 상당 비율은 대기업에 돌아갔다. ⓒ현암사

"트럼프와 바이든의 페이퍼컴퍼니는 같은 동네에 있다"

프레시안 : <아메리칸 엔드게임> 마지막 장을 보면, 바이든 지역구인 델라웨어주에 조세회피처가 있다고 했다. 인구가 97만여 명인 주에 회사가 140여만 개 등록돼 있고, '델라웨어주 윌밍턴시 노스 오렌지 스트리트 1209번지'에는 월마트, 코카콜라 등 30여만 개가 회사가 등록돼 있다고 썼다.

김광기 : 그 주소에 힐러리 클린턴 회사와 빌 클린턴 회사, 트럼프 회사도 등록돼있다. 바이든이 만든 회사도 같은 블록에 있는 다른 집에 등록돼있다. 앞 주소는 다 같고 번지만 1201번지다. 다 탈세하려고 만든 페이퍼 컴퍼니다. 전세계 독재자들도 델라웨어주 같은 데 돈을 갖다 놓는다. 한국도 누가 갔다 놨을지 모른다.

이렇게 된 이유가 있다. 일단 미국 법 자체가 회사 수익 소유자 공개를 요구하지 않는다. 게다가 델라웨어주는 회사가 주 안에서 사업하지 않으면 법인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페이퍼컴퍼니 설립도 쉽다. 수수료 조금만 내면 조건 없이 뚝딱 만들어준다. 델라웨어주 법을 이렇게 만드는데 오바마와 바이든도 역할을 했다.

재산이 많지 않아 '중산층 조'로 불리던 바이든이 부통령 임기 끝나고 부자가 됐다. 2017년 1월부터 2년 동안 재산이 1560만 달러 늘었다. 고액 강연과 저서 수입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속한 델라웨어주에 세금을 안 냈다.

힐러리와 트럼프가 붙을 때 이런 이야기 안 한다. 바이든과 트럼프가 붙을 때도 안 한다. 둘이 똑같으니까.

프레시안 : 퇴임 후 바이든이 돈을 벌었다는 말인데 많은 정치인이 권력 획득을 위해 정치자금을 모은다.

김광기 : 2010년 미 연방대법원이 정치후원금도 '표현의 자유'라며 정치후원금인 슈퍼팩(Super Pac) 한도를 없앴다. 오바마도 2012년에 친(親)오바마 슈퍼팩 모금을 지지했다.

델라웨어주에 있는 페이컴퍼니 같은 곳을 통해 정치후원금을 내면 누가 냈는지도 모른다. 받는 사람은 세금 안 내도 된다.

희망이 없다. 미국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안 본다.

프레시안 : '정치인이 권력 획득을 위해 부자들의 정치후원금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곳이 미국이고, 미국 정치인은 조세 회피처와 한도 없는 슈퍼팩이라는 제도로 정치 후원금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쉽게 말하면 유력 정치인이 금권 엘리트의 포로라는 건데 언제부터 이렇게 됐나?

김광기 : 예전에도 정경유착이 있었는데 갑이 정치인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부터 권력관계가 역전됐다. 기업이 갑이 되고 정치인이 을이 됐다. 금권 엘리트가 지지하지 않으면 정치인이 뭘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러니 정치인이 가진 자를 위한 시스템을 만든다. 이른바 금권정치(plutocracy)다.

프레시안 : 사실 미국에서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오래 됐다. 1992년 미 대선에서 로스 페로가 나오면서 불평등을 이야기했다. 1996년에도 팻 뷰캐넌이 대선에 나오면서 '1950, 60년대에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공장가면 애들 대학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안 된다' 는 이야기를 했다. 벌써 30년이 됐다. 그런데도 상황은 나빠진 것 같다.

김광기 : 더 나쁜 쪽으로 가고 있다. 미국의 중산층이 두터웠는데 지금은 아니다. 서민의 삶은 더 피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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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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