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지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20대, 30대, 40대 택배노동자가 연달아 사망했다. 세 죽음의 원인은 과로사로 추정된다.
8일에는 48살 CJ대한통운 택배기사 김원종 씨가 배송 중 숨졌다. 사망 당일 오전 7시쯤 출근한 김 씨는 오후 3시쯤 분류 작업을 마치고 배송 작업에 나섰다. 1시간 30분여가 흐른 뒤 김 씨는 호흡곤란과 가슴통증을 호소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는 택배차량에서 의식을 잃은 그를 발견했다. 김 씨는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심정지가 발생해 오후 7시 30분쯤 사망했다.
이어 12일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장덕준 씨가 퇴근 후 한 시간 만에 숨졌다. 사망 당일 장 씨의 만보기에는 5만 보가 기록되어 있었다. 하루 동안 30km가 넘는 거리를 걸은 것이다. 유족에 따르면, 장 씨는 평소 술, 담배를 하지 않았다. 지병도 없었다. 그랬던 장 씨는 쿠팡에서 일을 시작하고 1년여 만에 몸무게 15kg이 빠졌다.
역시 12일 36살 한진택배 택배기사 김동휘 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4일 전인 8일 새벽 4시 28분, 김 씨는 동료에게 '오늘 택배 물량 420개를 들고 나와 이제 집에 가고 있다. 5시에 다시 출근하면 곧바로 분류작업을 해야 하는데 너무 힘들다'는 내용의 SNS 메시지를 보냈다. 김 씨의 유족도 김 씨에게 별다른 지병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이들의 죽음이 더 안타까운 점은 택배 노동자의 과로가 심각하다는 경고가 이미 수차에 걸쳐 나왔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택배사도 정부도 이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한진택배 측은 김동휘 씨 사망 원인이 과로사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정부도 쉽사리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택배업계 활황이 불러온 택배노동자 노동강도 강화
코로나19 이후 택배 물량은 급격히 늘어났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올해 2~7월 택배 물량은 약 16억 5314만 건이다. 작년 같은 기간 택배 물량은 13억 4280만 건이었다. 비율로는 23% 가량 늘어난 것이다.
택배사 영업이익도 치솟았다. 빅3 택배사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을 보면, CJ대한통운은 21.3% 증가한 1420억 원, 한진택배는 34.7% 증가한 534억 원, 롯데글로벌로지스는 30% 증가한 130억 원이다.
택배업계의 활황은 물류센터 노동자, 택배기사 등 택배노동자의 과로사와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졌다. 특히 따로 법적 제한이 없는 택배기사의 노동시간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택배기사는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다. 건당 배달 수수료를 받는 개인 사업자다. 이 때문에 '주 52시간 상한'과 같은 노동시간 규제를 받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택배물량 증가는 택배기사 인력 충원이 아닌 개개인의 노동시간 증가로 이어지기 쉽다.
택배기사가 개인사업자라고 해서 자기 뜻대로 배달물량을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택배기사는 택배사로부터 구역을 배정받고 당일배송 등 정해진 규칙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다. 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계약 연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배달 수수료가 그대로 급여가 되는 수익구조상 택배기사 스스로 노동강도를 낮출 유인도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일반적으로 자영업자의 노동시간이 노동자보다 긴 것과 비슷한 원리다.
추석 전, 택배사와 정부에 택배노동자 과로 대책 요구했지만
지난달 10일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택배과로사대책위)는 택배기사의 주 평균 노동시간이 71.3시간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과로사 인정 기준은 '직전 3개월 주 60시간 이상 노동' 혹은 '직전 1개월 주 64시간 이상 노동'이다. 2019년말 한국인의 주 평균 노동시간은 41.5시간이었다.
이런 가운데 추석 전까지 7명의 택배 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과로사를 인정받았다. 2012년부터 2019년까지 8년 간 택배업 산재 사망자는 18명으로 한해 2.25명꼴이었다. 한해가 다 가지도 않았는데 예년의 3배가 넘는 택배노동자가 과로사로 이미 사망한 것이었다.
견디다 못한 택배기사들은 지난달 17일 택배사와 정부에 추석 연휴 기간 '분류 작업'에 추가 인원을 투입해줄 것을 요구하며 파업을 선언했다. 다음날인 18일 정부와 택배사는 택배노동자가 일하는 서브터미널에 2067명의 분류작업 인력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택배노동자들도 파업 선언을 철회했다.
하지만 택배사와 정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택배과로사대책위에 따르면, 분류작업에 추가 투입된 인력은 애초 발표의 20%도 되지 않는 362명에 그쳤다.
추석 이후에는 연휴기간 쌓인 택배 물량 때문에 보통 추석 이전보다 5% 가량 택배 물량이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택배과로사대책위에 따르면 애초 정부와 택배사가 정한 추가 인력 투입 시한인 16일 이후 추가 투입 인력은 상당수 빠졌다.
그 사이 3명의 택배 노동자가 장시간 노동과 격한 업무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과로사 막기 위해 다시 발 벗고 나선 택배노동자와 시민사회
19일 택배노동자와 유족, 시민사회단체는 다시 한 번 정부와 택배사에 택배노동자의 과로사에 대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는 19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김동휘 씨 유가족과 함께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한진택배에 공식적인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했다.
같은 날 광화문광장에서는 참여연대, '택배기사님들을 응원하는 시민모임' 등 시민사회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 노동부의 택배노동자 과로사에 대한 진상조사 △ 국토부의 택배회사 분류작업 인력 투입 사회적 합의 이행 실태 조사 △ 택배사의 유족에 대한 사과와 보상 및 과로사 예방을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 참여 △ 국회의 전국민산재보험법 제정 등을 요구했다.
진경호 택배과로사대책위 집행위원장은 "20대, 30대, 40대 택배노동자의 죽음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대통령도 세 번이나 과로사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고 국회도 관련 입법을 이야기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며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자와 시민의 힘을 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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