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은 휴머니즘인가, 포퓰리즘인가?

[박병일의 Flash Talk]

지난 6월 초 김종인 국민의힘(구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기본소득' 논쟁에 불을 붙인 이래, 석 달여가 흘렀다. 그가 당 초선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기본소득' 의제를 꺼낼 때만 하더라도, 이 제도의 도입을 둘러싼 논쟁이 '포스트 코로나' 국면에서 정치권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는 듯했으나, 요즘은 다소 잠잠해진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재난지원금'을 '재난기본소득'이라고 명명하며 의제의 선점을 도모하고 있고, 또한 한국식 기본소득 담론이 추후 대선에서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것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의 실현 가능성을 짚어보고 한국이 가야 할 복지국가의 모습을 생각해 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우선 기본소득의 정의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기본소득이란, 사회구성원 누구에게나 매달 지속적으로 최소한의 기본적 생계가 가능할 만큼 지급되는 현금을 의미한다. 즉, '보편성', '실질적 생계 기여성, '지속성'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본소득은 1848년 조제프 샤를리에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그리고 석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영토배당금(기본소득)을 지불하자고 제안하면서 출발하였다. 한편 핀란드 정부는 무작위 실험을 통해 다양한 사회정책을 입안한다는 새로운 정책 방향을 설정해 두고 이 실험을 시작한 바 있다. 그러나 핀란드 정부의 기본소득 실험이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주장과 더불어, 행복감을 높여주는 복지효과가 있었다는 상반된 주장까지, 실험 결과를 통한 성공 여부에 대해 일관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핀란드는 정권교체 이후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을 접었으며, 핀란드 외에도 캐나다 온타리오주, 스페인 바르셀로나, 스코틀랜드에 이르기까지 여러 곳에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어 왔으나, 주목할 점은 기본소득을 실현한 국가나 지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만 예외적으로, 미국의 알래스카 주가 주민들에게 일정액씩 매년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으나, 석유가 풍부하다는 지역 특수성을 바탕으로 천연자원 수출로 조성된 금액 중 일부를 알래스카 영구 기금에 적립하고, 이 기금의 운용수익을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문제는 알래스카와 달리, 우리나라는 기본소득을 지급할 충분한 재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예컨대, 5200만 전 국민에게 매달 월 50만 원씩 지급하기 위해서는 약 312조 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 이 엄청난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은 1) 기존에 지출하던 복지의 일부를 전용하고, 2) 고소득층에게 추가로 걷게 되는 세금이다. 이와 같은 판단 하에 기본소득에 대한 담론은 우리나라에서 시기상조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첫째, 2018년 중앙정부의 재정은 약 438조 원이었다. 중앙정부의 1년 재정규모가 438조 원인데 국민 개개인에게 50만 원을 주기 위해 312 조원이 필요하다면 삼척동자가 봐도 실현 가능성이 불가능에 가까움을 알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려할 수 있는 수단은 수혜자에서 고소득층을 배제하는 방법이 있겠다. 그러나 고소득자를 배제한다면 이는 기본소득의 대전제인 보편성에 위배되고, 재원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이들을 제외함으로써 조세저항과 소모적인 사회적 갈등만을 야기할 수 있다. 또한 만일 보편성을 가급적 해치지 않기 위해 기존 복지의 구조조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결국 사회적 위험에 처한 사회적 약자들의 지갑으로부터 공공복지를 회수해 부자를 포함한 모두에게 균등 배분하는 것이므로 역진적 재분배를 초래할 수 있다.

둘째, 지급액을 줄이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월 50만 원을 지급하는 대신 지급액을 20만원으로 줄인다면 필요 재원은 약 125조 원으로 경감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기본소득이란 '최소한의 기본적 생계가 가능할 만큼 지급되는 현금'을 의미하는 바, 이 경우 기본소득이 아니라 '기본용돈'이라고 칭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 만큼의 미미한 용돈을 지급하기 위해 국가재정에 부담만 준다면 기본소득제도의 사회경제적 저효율성만 증명하는 꼴이 되어 빈곤 개선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셋째, 재원 조달을 위해 국민 전체에 대한 보편적 증세를 수단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이는 이 주머니에서 회수하여 다른 주머니를 채워준 것에 불과할 것이고, 따라서 부유층에 대한 누진적 조세를 통해 정부 재정을 충분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17년 기준 통합소득(근로소득과 종합소득 등을 합한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6.8%였다. 하지만 이들은 전체 소득세의 78.5%를 부담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70.6%), 영국(59.8%), 캐나다(53.8%) 등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는 현 시점에서 한국 사회의 증세 여력이 크지 않다는 것을 뜻하고, 가구 단위의 일시적인 지원은 구현할 수 있더라도,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지급은 난망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인해 고(故) 박원순 시장은 한국 사회에 기본소득보다는 고용보험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기존 고용보험에서 제도적으로 배제되어 있던 이들, 즉 영세자영업자·특수고용 노동자·플랫폼 노동자 등을 고용보험의 테두리 안으로 포괄하면서 현행 제도를 보완하고자 하는 방안이다. 고용보험은 기본소득보다 훨씬 적은 재정을 투입하면서도 실업 시 모든 국민들의 기본생활을 보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노동 이력이 전혀 없는 실업자나 정해진 수급 기간을 경과한 장기실업자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상의 논의를 토대로, 정치인들은 가능하지 않은 기본소득으로, 혹은 무늬만 기본소득으로 국민들을 현혹하기보다는, 우선 실현 가능한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되, 우려되는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고민하는 걸 당부하고 싶다. 이를 통해 복지효과 극대화와 합리적인 한국적 휴머니즘 복지를 추구하는 게 우리 여건에서 보다 현실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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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

한국외대 경영학과에서 국제경영을 가르치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연구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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