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현 사태, 한국 사회 '1등주의'를 고발하다

[박병일의 Flash Talk] '중소기업 육성' 목청껏 외치면서도 실상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고(故) 최숙현 철인3종 선수에게 가해진 폭행 가혹행위 사건을 두고 "어떤 말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구시대 유산이자 후진적 행태"라고 성토했다. 또한 "설령 메달을 땄더라도 폭행이 뒤따른 것이었다면 값지지 않다"면서 철저한 조사와 처벌을 촉구했으며, "인식과 문화부터 달라져야 하고, 메달이 최고의 가치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대통령께서 좋은 말씀을 하셨으나, 그의 말처럼 운동선수의 메달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문화가 달라지려면, 무엇보다 1등만 기억하는 한국 사회의 오래된 습관과 관행부터 고쳐야 한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국가 간 순위를 설명하는 국내 방송이나 언론기사를 떠올린다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1등을 중요시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4년 전 있었던 브라질 리우올림픽에서 각국이 획득한 메달과 이를 기준으로 집계한 국내 언론의 최종 순위표를 찾아보면, 전체 메달 합계가 3개 적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금메달 27개를 획득하여 26개를 딴 중국을 제치고 2위에 자리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영국과 중국의 총 메달 합계는 영국이 67개, 중국이 70개). 한편 한국은 이탈리아와 호주대비, 메달 합계가 각각 7개, 8개 적음에도, 두 국가보다 금메달을 1개를 더 취득하였다는 이유로 8위에 위치시켰다(한국, 이탈리아, 호주의 메달 합계는 각각 21, 28, 29개). 그렇다면 과연 동일한 성적이 서구국가였다면 어떻게 보도되었을까? 추측하는 바와 같이, 서구국가의 대부분 언론에서는 금메달 수 대신 획득한 메달합계를 기준으로 순위를 안내함으로써 메달 색깔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비단 언론에서 보도한 메달 순위 외에도, 우리나라는 예컨대 아시안게임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취득하여야 병역의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 바 1등을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국가이고, 이 때문에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웃지 못 할 말이 인구(人口)에 회자되는 사회이다.

그래서 일까? 어느 정권이든 '중소기업 육성'을 목청껏 외치면서도 실상 국가 내 대부분의 자원은 1등 기업, 그리고 대기업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문어발식 무분별한 사업 확장에 몰두하는 재벌을 개혁하려고 하면, 보수정당에서는 '대기업 탄압이다' 혹은 '마치 기업을 죄인 시 한다'며 오직 자신들만 나라 경제를 오롯이 걱정하는 듯한 연기를 한다. 이 때문에 온갖 부적절하고 방만한 운영과 비윤리적인 경영관으로 인해 대기업의 존립이 흔들리면 국가의 재정을 투입해서까지 생명을 연장시키고자 노력하곤 한다.

하지만 국가경제가 탄탄하게 건강하려면 강한 중소기업을 기반으로 성장해야 한다. 한국은 대기업 위주의 수출구조 및 수직계열화 구조가 계속 유지되면서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상생관계가 심화되지 못한 반면, 중국의 위협과 좁은 내수시장에도 불구하고 예컨대 대만이 지금과 같은 국가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소기업들 사이의 철저하고 촘촘한 분업과 협력구조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은 생태계의 정점에 있는 대기업이 무너지면 가치사슬관계에 있는 중소기업도 함께 도산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대기업에 대한 자원공급을 멈출 수 없게 한다). 또한 스웨덴과 핀란드와 같은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대기업이 혁신생태계 내 핵심 플레이어로서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 성장지원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며 이들과의 상생과 공존을 적극적으로 실천한다.

반면, 상기에 언급하였듯이, 한국 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협력으로 정의되기 보다는 수직적 하도급 거래와 대기업으로부터의 낙수효과로 대변되는 바, 언급한 낙수(落水)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들 간 격차가 확대되고 중소기업의 성장이 늦어지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국가경제의 유지가 삼성과 같은 1등기업과 대기업의 성과에 의존하다보니 이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전횡으로 이어지는 매개체가 되곤 한다. 한편 우리 모두는 1등만 기억하는 체육계 분위기 속에서 고(故) 최숙현 선수가 받았을 고통에 분노하고 이러한 악습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와 마찬가지로 1등기업과 대기업의 횡포 근절, 그리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산업 생태계 개선에도 노력해야 할 것이며, 중소기업의 근원적인 경쟁력 향상 및 이들 간 상생협력을 증진시킬 방안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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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

한국외대 경영학과에서 국제경영을 가르치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연구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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