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이 가져올 분노정치와 비토정치, 둘이 결합한다면?

[최창렬 칼럼] 부동산 문제, 신뢰 회복 못한다면

자본주의에서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정치적 해결이라는 것은 빈약한 정부정책이나 의회민주주의의 틀속에서 행해져왔다. 시민사회 내부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지배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것은 시민들의 이익이 전적으로 배제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자산 분포의 불균형과 양극화의 정도는 심화되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와 군사력, 정보통신과 제조업 강국 등 여러 분야에서 선진국 수준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별개로 시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는 하락하고 있다. 정치에서 헤게모니적 정당성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공정한 선거를 통해 다수의 지지를 확보했다는 사실만으로 실질적 정통성을 확보할 수 없고, 정당성이 부재한 정치는 본령을 다 할 수 없다. 정당성에 긴요한 토대는 신뢰와 도덕성이며 신뢰와 도덕성의 위기는 정치의 위기로 이어진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을 안정시키기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이 정책의 결과는 속단할 수 없으나 남한 전체의 12%에 불과한 면적에 인구의 반 이상이 산다는 사실은 부동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촘촘하게 대책을 내어놓아도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수도 없다. 규제를 풀고 시장논리에 따르면 부동산 문제가 잡힐 것이라는 말도 무책임한 말이다.

서울 강남 지역에 고가의 아파트를 지닌 계층은 정부가 징벌적 과세로 부당하게 세금을 많이 징수한다고 불만이고, 2030과 4050간에는 세대갈등이 심각하다. 부동산 관련 정책수단은 차고 넘친다. 정책은 시장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고 역효과를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배 엘리트들이 정부의 정책방향을 정면으로 거스른다면 이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며 정부나 자신이 선출한 대표에 대한 직접적 비토로 이어질 수 있다.

부동산 투기가 사회적 의제가 되고 정부가 부동산 투기 하지말라고 하는 사이 정부와 국회의 고위공직자들은 집을 사모으고 부동산 폭등을 방치하고 수혜를 만끽했다. 국민들에게 신조화되어 있는 부동산 불패 신화는 단순히 경제원리에 의해 고착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묵시적 연대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다.

경제성의실천연합에 따르면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다주택자는 87명(29%)에 달한다. 민주당을 포함한 범여권은 42명(23%)이다. 통합당은 103명 가운데 41명(40%)이 집을 두 채이상 보유하고 있다. 민주당보다 다주택자 비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보유 부동산 규모는 심각한 정도다. 통합당 의원 103명이 보유한 부동산은 2139억원에 달함으로써 1인당 20억 7669만원이다. 민주당(9억 7777만원)의 두 배를 넘고 국민 평균(3억원)의 두 배를 넘는다. 국회의원 부동산 보유 상위 10명 중 통합당이 7명이다. 부동산 부자당이 부동산 세금인상을 비판한다면 설득력이 없다. 부동산 정책을 직접 다루는 국토교통위원회와 기획재정위 소속 국회의원 56명 가운데 17명(30%)이 다주택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청와대 참모 41명 가운데 12명이, 국토부와 기재부 고위공직자 16명 가운데 5명이 다주택자다. (내일신문 7월7일-8일자)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주도해온 김현미 국토부장관이 2017년 8·2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국민을 향해 “자기가 사는 집이 아닌 집들은 좀 파시라”고 요청했으나 정작 청와대와 정부, 국회의 파워있는 공직자의 상당수가 수 년째 안 팔거나 새로 구입하면서 부동산 상승을 부채질하거나 즐긴 것이다.

이해당사자가 정책결정이나 수사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제척사유는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부동산 정책을 펴는 것과 별개로 정부와 국회는 우선 이들부터 정책라인에서 배제해야 한다.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관장해온 전문가 중 다주택자에 대한 인적교체를 통해 부동산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국회에서도 관련 상임위에서 다주택자는 물론이고 일정 금액 이상의 고가주택 소유자는 교체해야 한다. 어떠한 정책을 내어놓아도 자신들의 이해와 연관되어 있다고 시민들은 생각할 것이고 실제 이해되지 않는 정책도 허다하다. 양도세와 거래세는 줄이고 보유세를 늘려야 한다는 것은 시민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다. 그러나 정부는 다주택보유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1주택자라해서 20-30억원 넘는 고가주태 보유자에 대해 보유세는 왜 거론하지 않는가.

다주택자들에 대한 과세강화가 마치 문제의 해결책인양 광고하고 호도하는 것은 허위의식에 의한 헤게모니를 통해 지배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자산의 불평등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서 불가피하다. 더구나 압축성장과 1980년대 강남 투기를 경험한 한국사회에서 이에 대한 동의도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진보정권들의 집권기간동안 벌어지고 있는 극단적인 부동산 상승, 특히 서울 강남 등 특정지역의 상황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연상하게 한다. 부동산에 대해 별다른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못하던 계층에게마저 분노와 좌절을 경험하게 한다.

역사는 분노의 정치로 발전과 진보를 거듭해왔다. '역사의 종말'이란 논문으로 유명한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말한 비토크라시(vetocracy)는 문자 그대로 거부정치다. 분노정치와 비토크라시가 결합한다면 지금의 민주당 정권은 다음 대선에서 예기치 못한 일격을 당할 수 있다. 다수의 확보라는 무기를 탑재한 정권이 지금 알아야 할 것은 자제의 규범과 신뢰 회복이다.

당장 고위공직자중 다주택자는 관련 업무에서 직무배제해야 한다. 특히 청와대 참모 중 다주택자에 대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가 없으면 정부와 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지금의 부동산 상황을 일상적 문제로 치부하는 순간 정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의 인식수준과 실천력이 이를 담보할 것 같지 않다. 이 정부는 그람시의 헤게모니를 점차 상실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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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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