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자본주의'가 밀고 들어온다

[서리풀 논평] "정부 관심은 'K-방역' 성과가 사라질까 그 한 가지뿐"

"현행 의료법상 원칙적으로 금지된 의사·환자 간 비대면 진료가 전국 4개 대형병원에서 재외국민에 한해 2년간 허용된다....산업통상자원부는 25일 2020년도 제2차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위원회를 열고 인하대병원과 라이프시맨틱스의 협력기관(분당서울대병원·서울성모병원·서울아산병원)이 재외국민 대상 비대면 진료·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2년간의 임시허가를 부여했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 <경향비즈> 6월 26일 자 '의료법상 금지된 '비대면 진료' 재외국민에 한해 2년간 허용')

'재외국민'이라면 한국의 의료법이 적용되는 대상이 아닌데 무엇을 '허용'한다는 뜻인지? 게다가 임시허가라니, 왜 이렇게 황당한 정책을 내놓는지 모르겠다. 법률적으로 재외국민은 외국인과 같고, 재외국민 진료란 외국 사람이 한국에 와서 성형수술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허가고 뭐고 병원이 그냥 해온 것인데, 일부러 판을 키울 기세다.

논리도 품위도 없는 이런 정책을 무슨 위원회를 열고 심의하고, 그걸 허용했다고 보도자료를 내는 것은 그 정책이 (역설적으로) '국내용'이기 때문이리라. 해당 부처의 실적 때문이든 앞으로 '큰일'을 도모하려는 것이든, 초점은 재외국민이 아니라 국내에 있다는 것. 정책이라기보다 이 또한 정치다.

우리는 두 가지 목적이 다 있다고 해석한다. '윗선'(또는 대중)에 우리 부처가 뭐라도 열심히 한다고 알리는 목적, 그리고 비슷한 이해관계를 가진 당사자를 격려(?)하는 차원. 후자도 꽤 중요한 목적이지 않을까 짐작한다. 이번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국내 환자에 대한 비대면(원격) 진료를 금지하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할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원격의료와 의료수출 등 의료산업 '진흥'은 산업통상자원부를 비롯한 경제 부처의 숙원 사업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무슨 명확한 산업과 경제 논리는 들어본 적 없지만, 그건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거의 20년 동안 모든 기회를 활용해 노력했으니, 서비스 산업 육성, 의료관광, 영리병원, 경제특구, 원격의료, 규제혁신, 제4차 산업혁명 등 참으로 다양하다.

이번에는 원격의료. 코로나19 유행에서 잠시 허용했던 비대면 진료를 이번 기회에 '주류화'하려고 하더니, 논리에서 밀린다고 생각했는지 뜬금없이 재외국민을 들고나왔다. 의료 산업화를 밀어붙일 기회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예정을 바꿔 귀국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고 취약한 방역 체계 때문에 재외국민이 불안해한다는 언론 기사가 넘쳐났다. 열심히 홍보한 'K-방역'이면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원리는 익숙하다. 코로나 대응을 핑계 삼아(여당의 해당 위원회 이름에는 '국난극복'이라는 표현이 들어있다) 모든 시도가 '기-승-전-코로나'이다. 따로 무슨 설명이나 논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분위기에 편승해 숙원 과제를 밀어붙이려는 선정적 정책에 정치다. 전형적인 '재난 자본주의'.

한경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생산 차질을 겪는 사업장에서 파업이 발생해 장기화되면 기업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며 대체근로 허용을 주장했다. 또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적 감염병이 발생한 경우 특정 업무에 한해 특별 연장근로를 자동으로 허용해서 추가 근무가 불가피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연합뉴스> 6월 25일 자 '한경연, 대체근로 허용·화학물질 등록기준 완화 등 입법제안')

재난 자본주의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적 영역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정치경제'라는 개념이 이 이상 잘 어울릴 수 없다. 다음은 코로나를 동원한 노골적이고 뻔뻔한 정치경제.

검찰의 먼지털이식 수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의 위기상황을 겪고 있는 삼성을 옥죄었다. 특히 삼성은 지난 2016년 국정농단 의혹을 기점으로 햇수로 5년째 수사와 재판을 받으며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관련 기사 : <서울경제> 6월 27일 자 '이재용 '뉴삼성' 힘 받았지만…검찰, 끝내 무리수 던질까')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위기로 인해 기업은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한 최악의 경영 환경에 내몰려 있다...ILO 핵심협약 비준을 명분으로 기업이 가장 민감하고 곤혹스럽게 느끼고 있고, 노사 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는 내용의 노조법 개정을 정부가 추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관련 기사 : <중앙일보> 6월 23일 자 '정부 '해고자도 노조 가입' 재추진…"기업 떠나라는 얘기냐"')

사정이 이런데도 저절로 '뉴노멀'이 온다고? 턱도 없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상황을 활용해 '올드 노멀'로, 아니 올드 노멀보다 더한 뉴노멀을 의도하는 힘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또 그게 그렇게 노멀이 되면 코로나는 그야말로 이중의 재난이다.

재난 자본주의는 이러한데, 막상 코로나 대책 그 본질과 핵심은 점점 더 개인에 의존하는 모양새다. 개인화와 개별화, 그리고 윤리화와 규범화. 점점 더 위험하다는 '경고'만 무성하고 대책이란 각 개인이 잘하라는 요구뿐이다. 준수, 주의, 자제, 협조 등 벌써 몇 달째 이번 주말이 고비이고 분수령이라며 시민의식과 윤리를 요구하는 것인가.

이미 모두 알고 있는바, 개인 차원의 예방 수칙과 사회적 거리 두기는 분명 의미가 있지만 그 한계도 분명하다. 자영업, 기업, 민간 조직에 요구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개인과 조직은 사회에 긴밀하게 결합해 있고 그 틀에 구속되어 있다. 최선을 다해도 구조가 허용하는 한계를 뛰어넘기 어렵다.

구조를 돌파하려면 새로운 조건과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테면 상병 수당이나 임금 보전 없이 노동으로부터 거리 두기는 불가능하다. 국가와 정부는 이런 조건을 바꾸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대로는 대규모 유행이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설마 운에 맡기는 것은 아닐 텐데, 각 개인이 각자도생으로 한계를 뛰어넘자고 요구하는 꼴이다.

의료 준비는 더 답답하다. 지금껏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명확한 데도 질병관리청 한 가지로 모든 일을 다 했다는 분위기다. 단기 대책도 장기 계획도 아무 논의가 없고 정부 안에서는 말을 꺼내는 사람도 없다. 'K-방역'의 성과(?)가 사라질까 그 한 가지 관심뿐인 듯하다.

당장 상황은 대책이나 계획이란 말조차 한가하게 들릴 만큼 급하고 아슬아슬하다. 무슨 성과를 내세우기 바쁜 사람들은 수도권의 의료가 겨우 견디는 현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확진자가 더 늘고 중환자가 넘칠 때 어떤 비상 대책이 있는가? 바로 작동할 임시 체계는 있는가?

"현재 빈 병실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미 일반 중환자들도 갈 곳이 없는 상황에서 코로나19 환자로 인해 병상을 비울 수 있는 여력이 없다"며 "코로나19 환자를 받으려면 기존 인력에 2~3배를 투입해야 하고 기존 일반 환자용 병상을 줄일 수밖에 없는데 병원 입장에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다"고 전했다.(관련 기사 : <메디게이트> 6월 27일 자 '"방역당국 중환자 입원 가능 117병상 발표부터 오류…가용 병상 없다"')

낙관할 상황이 아니다. 일이 있을 때 '참여'나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국가와 공공의 책임을 나누자고 할 것인가? 이 재난이야말로 공공의 역할과 책임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중이 아닌가, '코로나 자본주의' 대신 '코로나 공공보건'부터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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