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몰려 한진중공업서 해고당한 노동자 김진숙의 '복직 투쟁'

부산 영도조선소서 입사 5년 만에 유인물 한 장에 징계해고 당해...35년 만에 복직 요구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의 마지막 해고 노동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복직 투쟁이 시작됐다.

전국금속노조, 민주노총 부산본부는 23일 오전 11시 한진중공업 정문 앞에서 35년 전 해고 당한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 촉구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지난 1981년 10월 1일 대한조선공사주식회사(현 한진중공업)에 대한민국 최초 여성 용접사로 입사해 1986년 2월 18일 노조 대의원에 당선됐다. 대의원 당선 직후인 그해 2월 20일 노조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유인물을 제작·배포했다는 이유로 3차례에 걸쳐 부산직할시 경찰국 대공분실에 연행돼 고문을 당했고 같은 해 7월 14일 징계해고됐다.

당시 배포한 유인물은 A4용지 한 장도 되지 않는 분량의 소회를 적은 것이었지만 정부와 회사는 그를 '빨갱이'와 '해고자'로 만들었다.

지난 2009년 11월 2일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 위원회'는 김진숙 지도위원에 대해 '한진중공업에서의 노조민주화 활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함과 동시에 부당해고임'을 분명히 하면서 복직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사측은 이를 수용하지는 않았다.

이후 자신의 복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던 김진숙 지도위원은 지난 2011년 한진중공업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85호 크레인에 올라 무려 309일간 고공농성을 펼쳤고 SNS를 통해 이를 본 시민 수만 명이 희망버스를 타고 여러 차례 부산 영도조선소를 찾는 등 여론이 급물쌀을 타면서 노사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 23일 오전 11시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정문 앞에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가운데)이 사측의 부당 해고에 대한 복직을 촉구하고 있다. ⓒ프레시안(박호경)

노조는 "2011년 김진숙 지도위원은 309일간 고공농성을 하면서 늘 깨치고, 다치고, 죽기만 하던 우리 노동자들이 얼마나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뿔뿔이 흩어져 각개격파 당하던 이들이 희망이라는 이름의 버스를 타고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시대의 순환은 계절처럼 어김없이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 사회는 '인간이 되고자 하는 노예의 꿈'을 꾸고 있다. 지나간 일도 아니고 끝난 일도 아니고 이제는 더 이상 꿈도 아니다"며 "김 지도위원의 복직은 지난 35년간 빨갱이와 해고자로 덧칠된 삶을 다시 사는 길이자 우리가 앞으로 희망의 꿈을 꿀 수 있는 사회로 함께 나가고자 하는 바람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해마다 다른 사안에 밀리고 번번이 임금인상과 저울질 되면서 상심하고 소외된 세월이 35년이지만 저는 꿈을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다"며 "이제 그 꿈에 다가갈 마지막 시간 앞에 서 있다. 제 목표는 정년이 아니라 복직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이어 검은 보자기를 덮어씌운 채 낯선 남자들에게 끌려갔던 대공분실의 붉은 방, 노란 방에서 '니 같은 뺄개이를 잡아 조지는 데'라는 그들의 말을 듣고 제가 처음 뱉은 말은 "저는 선각공사부 선대조립과 용접1직 사번 23733 김진숙입니다"며 "사람을 잘 못 보고 잡아 왔으니 내일이라도 돌아갈 줄 알았던 세월이 35년이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억압이 안정으로 미화되고 탄압이 질서로 포장된 불행했던 시대에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빨갱이가 되고 자유의 외침은 불순분자가 되곤 했다"며 "무수한 목숨들의 피와 눈물로 세상은 변했지만 한진중공업은 하나도 변한 게 없다.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좋아 본적이 없이 늘 어렵기만 하다는 회사는 매각을 이유로 또다시 구조조정의 칼을 갈고 있다"고 한진중공업을 겨냥했다.

특히 "스물여섯 살에 해고되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어용노조 간부들, 회사 관리자들, 경들에게 그렇게 맞고 짓밟히면서도 저 좀 들어가게 해 달라"며 "울며 매달리던 저곳으로 이제는 돌아가고 싶다. 민주노조와 우리 조합원들이 있는 곳 그곳으로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다"고 호소했다.

전국금속노조 김호규 위원장은 "9년 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싸움할 때 이곳에서 두 달 가까이 함께 있었다. 그 당시에 우리가 놓친 점이 있다면 김진숙 선배를 복직할 수 있는 내용을 만들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다"며 "감속에 담아둔 원직복직 4글자를 선배한테 내놓지 못한 아쉬움이 많은 35년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복직하는 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김재하 부산본부장은 "김진숙 동지의 복직은 지극히 정당한 권리다. 35년간 노동할 권리를 빼앗고 생존권을 빼앗은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며 "노동자들에게 현장은 퇴직해서도 쳐다보는 게 현장이다. 힘들더라도 진짜배기 노동자는 돌아가야 한다"고 지지를 보냈다.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김진호 한진중공업지회장은 "3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올해가 지나면 김진숙 조합원은 영원한 해고자로 남는다"며 "김진숙이라는 사람은 억울하게 당한 빨갱이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국민이다. 이제 한진중공업 조립파트 용접사 김진숙 노동자로 돌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노조는 출근 선전전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투쟁과 함께 사측에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촉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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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경

부산울산취재본부 박호경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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